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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주의와 자의식 문학
主知主義-自意識文學 모더니즘의 시운동에 앞서 1934년경 평론가 최재서는 현대 주지주의 문학을 우리 문단에 소개했다. 주지주의파의 이론은 김기림 등의 <시론>도 있으나 체계적인 것은 최재서에 의해서였고, 현대시는 감성으로 씌어질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많은 비평활동을 통해 지성문학을 전개, 이러한 지성론(知性論)은 한때 문단에 많은 논의를 일으켰다.
그의 주지적인 비평은 김기림의 <기상도>, 이상의 심리주의 경향의 작품 <날개> <종생기(終生記)>, 최명익(崔明翊)의 소설 등 심리주의적 경향, 자의식의 문학을 현대의 주지적 문학의 영역으로 파악했다. 최재서 등의 주지적 문예비평은 종래의 경향문학의 관념성 또는 인상주의(印象主義)적 비평경향을 불식하고, 분석과 종합에 의한 과학적 비평 방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큰 공적을 남겼다. 주지주의 문학의 소개와 함께 대두된 이상(李箱), 최명익, 허준(許俊) 등의 심리주의적인 자의식의 문학은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내면(內面) 탐구의 문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1935년대라는 어둡고 불안한 시대현실에 대한 반응으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상(李箱)은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비롯해서 소설 <날개> <종생기>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와 심리주의에 연관되는 잠재의식과 자의식을 표현, 난해(難解)한 작품으로 문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허준의 <탁류(濁流)>는 이상의 <날개>에 앞서 발표된 작품으로 자의식과 함께 니힐리즘이 나타나 있고, <야한기(夜寒記)>(1938), <습작실(習作室)에서> 등은 모두 허무의식과 내면의 심연을 표현하였다. <단층>의 동인으로 문단에 나온 최명익(崔明翊)은 1936년 <비오는 길>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래 <무성격자(無性格者)>(1937), <심문(心紋)>(1939), <장삼이사(張三李四)>(1941) 등의 역작들을 통해 심리주의적인 자의식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김기림[편집]
金起林 (1908- ?) 함북 학성 출생. 호는 편석촌. '구인회' 회원. 일본대학 문예예술과와 도호쿠(東北)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대에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한 이론가이자, 실제 창작을 실험한 시인이기도 하다. 6·25 때 납북. 시집으로 <기상도>(1935),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행동주의와 휴머니즘 문학[편집]
行動主義-文學 1935년을 전후하여 우리 문단에는 서구의 행동주의 문학이 소개되고 휴머니즘이 논의된 일이 있었다. 이 사조 역시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한 저항과 프랑스에서 제1차 세계대전 후 유행한 다다이즘·쉬르레알리슴의 허무적인 경향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 회복을 목표로 A.지드, 페르낭데스, 앙드레 말로 등 서구 지식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었다. 특히 서구에서는 지식인의 행동주의가 요구되어 '지식계급인연맹(知識階級人聯盟)'이 결성되었고, 말로는 직접 에스파냐 내란·상해 폭동 등에 참가하였으며, <왕도(王道)> <정복자> <인간의 조건> 등의 작품을 통해 행동적인 인간성과 휴머니즘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리 문단에서는 1935년 초 이헌구, 함대훈, 홍효민, 김문집 등에 의해서 행동주의가 소개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문화 옹호, 지성 옹호의 운동이 한때 대두되었다.
특히 휴머니즘은 1935년대의 한국 지식인을 억누르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의미와 함께 침잠되고 있는 문학정신에 대한 활로를 개척하는 뜻에서 한때 성행을 본 것이다. 백철(白鐵)은 <인간 묘사의 시대>(1933), <인간 탐구론>(1934), <현대사조로서의 휴머니즘>(1937) 등의 논문을 통해 암흑기에 접어든 한국문학의 활로와 현실에 대한 문학자의 양심적인 태도를 강조하였다. 그 밖에 당시의 행동주의와 휴머니즘 논의를 보면 이헌구의 <행동정신의 탐구>(1935), 함대훈의 <지식계급의 불안과 조선문학의 장래>(1935), 홍효민의 <행동주의 문학의 검토>(1935), 김문집의 <일본문학과 행동주의>, 김오성(金午星)의 <네오 휴머니즘론>(1936), 윤규섭(尹圭涉)의 <지성문제와 휴머니즘>(1938), 임화의 <문예 이론으로서의 신(新)휴머니즘에 대하여>(1938) 등의 비평활동이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논의들은 이 시기의 문학사조를 대변한 것이며 불안과 위기의 시대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반응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풍자소설과 고뇌의 문학[편집]
諷刺小說-苦惱-文學 파시즘의 대두와 일제의 압력으로 국내 정세는 더욱 험악해져 우리 문학에 불안과 위기의 시대의식이 고조된 것은 전반적인 현상이거니와, 특히 프로문학시대에 동반적 입장에 섰던 작가들은 지식인의 양심·고민, 또는 시대적인 풍자소설을 발표하게 되었다.
1931년 이후는 취직난과 생활난이 극심해져 지식인의 실직(失職)과 비애는 이 시대 작가들의 현실적인 주제로 소설 속에 취급되었다. 그 중 지식인의 취직난과 실직을 취급하면서 풍자소설을 쓴 작가는 채만식이다. 그의 <인텔리와 빈대떡>(1934), <레디 메이드 인생>(1934) 등은 모두 지식계급의 실직과 불우한 운명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그 시대성을 드러내었다. 1935년 시대분위기가 점차 어두워 감에 따라 채만식은 본격적인 풍자소설을 발표한 바 즉 <소망(少妄)>(1936), <예수나 믿었더면>(1937) <치숙(痴叔)>(1938) 등은 모두 시대에 대한 작가의 민감한 마음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뒤에 이 작가는 장편 역작 <탁류(濁流)> <태평천하> 등의 대표작을 발표함으로써 문학사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확보했다.
프로작가인 이기영도 장편 <인간수업(人間修業)>(1936)에서 지식인의 우울을 제재로 풍자적인 경향을 보여 주었고, 자의식의 세계를 그린 이상의 <날개>도 풍자적인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실험작이다. 풍자소설이라 하면 시대·사회·인물 등의 결함·죄악·모순 등을 기지와 냉소로 은근히 풍자하는 경향을 말하는데 시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정신이 그 작품의 바탕을 이룬 이 시기의 소설은 지식인의 실직·고민·운명·비애 등을 취급한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이무영의 <창백한 얼굴>(1934) <B녀의 소묘>(1934) 등도 이 시대 지식인의 빈궁과 고난을 그린 작품들이다. 한편 실직과 생활난을 주제로 한 풍자적인 경향과 함께, 지식인의 양심과 자기 반성을 주제로 한 고뇌의 문학이 나타나니 초기의 동반작가이던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1938), 이효석의 <장미(薔薇) 병들다>(1935)는 그 대표적 작품이며, 한설야의 <임금(林檎)>(1936), 김남천의 <소년행(少年行)> 등도 이러한 경향을 나타낸 작품들이다.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는 작가가 시정(市井) 문학으로 기울게 된 전기(轉機)적인 작품으로, 학교 내의 추악한 현실과 경향적인 학생층과의 사이에서 갈등과 좌절을 겪는 젊은 지식인의 고심담(苦心譚)이며, 이효석의 <장미 병들 다>에서는 과거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남녀가 속된 현실에 타락되어 가는 가운데 인텔리로서의 양심과 가책을 보여주고 있다.
조용만[편집]
趙容萬 (1909-1995) 소설가. 영문학자.호는 아능(雅能). 서울 출생.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 1931년 희곡 <가보세>를 <동광>에 발표, 문단에 등장했으며, 이어 소설 <연말의 구직자> <희희(戱稀)> 등을 발표했다. 그의 초기작은 동학란과 학교 내의 비밀결사사건 등을 취급한 경향적인 작품들이며, 후기작에 속하는 1941년 <초생기(初生記)> <여정(旅情)> <만찬(晩餐)> 등에서는 인정 세태(人情世態)를 가볍게 풍자한 인생파적인 태도를 가졌다. 1938년 <매일신보> 학예부장, 광복 후에는 <국도신문> 주필을 거쳐 고려대학 영문과 교수 역임. 앞에 든 작품 외에 <삼막사(三幕寺)> <표정(表情)> 등이 있고, 저서에 <육당 최남선> <한국인의 멋> <문학개론> 등이 있다.
이무영[편집]
李無影 (1908-1960) 본명 용구(龍九), 소설가.충북 음성(陰城) 출생. 일본 도쿄에서 4년간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 밑에서 소설을 수업. 초기작으로는 <반역자>(1929) <두 훈시(訓示)> 등이 있고, 중편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1932), 단편 <B년의 소묘(素描)>(1934)가 <동아일보>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초기작 장편 <먼동이 틀 때>, <루바슈카> <명일(明日)의 포도(鋪道)> 등 일련의 작품은 아나키스틱한 경향을 띠었고, 1939년 이후 작품세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 농촌에 돌아가 흙의 문학을 지향, <흙의 노예>(1940), <제1과 제1장(第一課第一章)>은 당시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민작가로, 그 밖에 장편 <농민> <향가(鄕歌)> <젊은 사람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등이 있고, 단편집 <무영 단편집> <산가(山家)> 등과 저서에 <소설작법> 등이 있다. 1943년 조선 예술상, 1956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흙의 노예(-奴隸)[편집]
1940년에 이무영이 지은 단편소설. 농촌생활에서 취재한 그의 대표작. 내용은 기계 문명에 대치되는 순수한 인간성의 재탐구와 무지를 이해 못하는 지식층이 흙의 노예라 부를 수 있는 무지한 인간 속에서 참된 생의 철학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오일도[편집]
吳一島 (1904-1946) 본명은 희병(熙秉). 시인.경북 영양(英陽) 출생. 1931년을 전후하여 시단에 등장. 세련된 서정시를 발표했고, 1934-1935년에 시잡지 <시원>을 발간하여 서정시 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시원(詩苑)[편집]
1934년 창간된 시 전문지. 오일도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5호까지 나왔다. 주로 오일도, 김달진(金達鎭), 김기림 등과 시문학파 시인들의 작품이 발표되었고, 당시 순수 서정시 운동의 중요한 발표 기관으로 큰 역할을 했다.
신석정[편집]
辛夕訂(1907-1974) 본명은 석정(錫正). 시인.전북 부안(扶安) 출생. 중앙불교전문학교를 나와 1935년 <시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 동양적인 전원시인으로, 그의 시풍은 신비하고 그윽한 맛이 있으며, 시집에 <촛불> <슬픈 목가(牧歌)> <빙하(氷河)> 등이 있다.
김광균[편집]
金光均 (1913-1993) 시인.개성 출생.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도회적인 감각을 나타낸 모더니즘 시로 1934년경 문단에 등장,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6년경 신세대론(新世代論)이 유행할 때 오장환 등과 함께 신세대 시인으로 불리어졌고, 모더니즘의 시론을 실천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그의 시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회화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그는 정서를 영탄하기에 앞서 감각을 시각화(視覺化)하였다. 김광균의 회화적인 감각은 시 <외인촌>, <와사등> 등에 한층 철저하게 나타났다. 대표작으로 <기항지(寄港地)>(1939)가 있다. 광복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하였으며 시집 <황혼가(黃昏歌)>를 내었다.
장만영[편집]
張萬榮 (1914-1975) 시인. 호는 초애(草涯). 황해도 백천(白川) 출생. 1937년 시집 <양 (羊)>으로 문단에 등장.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감각적인 서정시의 세계를 이룩했다. 광복 후 종합지 <신천지>를 주재했고, 시집에 <양> <축제(祝祭)> <유년송(幼年頌)> 등이 있다.
함형수[편집]
咸亨洙 (1914-1946)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마음의 단편>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한 이래 다수의 시를 발표.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였다. 193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음>이 당선되기도 했으나 광복 직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한에서 사망하였다.
이영도[편집]
李永道 (1916-1975) 경북 청도 출생. 1945년 동인지 <죽순>에 <제야>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조집으로 <청저집(靑苧集)>(1954), <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 <춘근집(春芹集)>(1958), <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 <머나먼 사념의 길목>(1971) 등이 있다. 작고 후에 후배들에 의해 '정운 시조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시상되고 있다.
이용악[편집]
李庸岳 (1914-1971) 함북 경성 출생. 동경 상지대학 신문학과 졸업. 1935년 <신인문학>에 <애소유언(哀訴遺言)>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광복 전 <인문평론>지의 기자를 역임했으며 광복 후 시집 <오랑캐꽃>을 낸 뒤에 고향인 경서에 돌아간 후 생사를 알 길이 없다.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의 시집이 있다.
최재서[편집]
崔載瑞 (1908-1964) 평론가·영문학자.호는 석경우(石耕牛). 황해도 해주(海州) 출생. 경성제대 영문과졸업. 경성제대·법학 전문의 강사, 연세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1933년 이후 신문·잡지를 통해 영국의 주지파 문학을 소개하고, 1934년에서 1938년에 <비평과 과학> <비평의 형태와 기능> <풍자문학론> <취미론(趣味論)> 등을 발표하면서 비평활동을 통해 지성(知性) 문학론을 전개, T. E. 흄, T. S. 엘리어트, 허버트 리드, I. A. 리처드, 올더스 헉슬리 등 현대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고 지성적인 문학 평론가로 이론과 창작평 등을 썼다. 1938년 <인문평론(人文評論)>을 주재했고, 주지주의 문학의 소개와 함께 분석과 종합을 통한 그의 과학적인 비평의 방법은 한국 문예 비평사의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후기에는 특히 영문학자로 셰익스피어 연구에 공적을 남겼다. 저서에 평론집 <문학과 지성> <최재서 평론집> <문학원론> <영문학사>> <셰익스피어 연구> 등이 있고, 번역에 드라이저의 <아메리의 비극>, 호손의 <주홍글씨>,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이 있다.
이상[편집]
李箱 (1910-1937)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시인·소설가. 서울 출생. 1930년 경성고등공업을 졸업. 처음에는 시로 출발했다. 1934년 9월 <조선일보>에 시 <오감도>를 발표한 뒤 1936년 9월 <조광>지에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기재(奇才) 또는 난해한 작품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35년대를 전후해서 세계적으로 유행한 자의식 문학시대에 그는 우리 문단에 서구의 심리주의를 시험하고 근대 정신의 자아 분열에 이른 자의식 문학을 발표함으로써 그 대표적 작가가 되었다. 그의 시 <오감도>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적인 전위파의 이론을 우리 문단에 처음으로 실험한 것으로 전통적인 시관(詩觀)으로 볼 때는 이채로운 작품이다.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종생기>(1937)는 자의식을 한층 적나라하게 표현, 주관적인 심리묘사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실화(失花)>(1937), <실락원(失樂園)> 등의 작품도 있다. 본래 신경질인 성격에다 심한 폐결핵이었던 그는 시대적인 고민에다 의식적인 자학을 함으로써 사생활은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웠으며, 회복을 원하여 1937년 도쿄에 갔으나 그 곳에서 요절했다. 유고에 <이상 전집>이 있다.
오감도(烏瞰圖)[편집]
(1934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이상의 시. '조감도(鳥瞰圖)'의 '鳥'자를 '烏'자로 바꾼 것부터가 문제된다. 쉬르레알리슴의 영향 아래 서구 전위파의 이론을 처음으로 시단에 실험한 작품이다. 한국 시의 인습과 전통에 항거하여 새로운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당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날개[편집]
(1936년) <조광>지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 1930년대 심리주의 또는 주지주의 문학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근대적 불안과 자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절망과 자아(自我)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근대의식을 해체함으로써 순간이나마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철[편집]
白鐵 (1908-1985) 평론가.평북 의주(義州) 출생. 일본 도쿄 고등사범 영문과 졸업. 그 후 <개벽>사 기자, 각 신문사 기자를 거쳐 <매일신보> 문화부장 등을 지냈다. 경향문학기 초기에는 동반자적인 비평활동을 했고, 이후 1933년경부터 <인간 묘사의 시대> <인간 탐구론>(1934) 등 휴머니즘 문학을 제창했으며, 그 후에는 네오리얼리즘·네오휴머니즘 등을 내세워 진보적인 비평가로 활약했다. 중앙대학교 교수, 펜클럽 한국지부 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 <신문학사조사>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 <문학개론> 등이 있고, 1968년 <백철 전집>(4권)을 내었다.
김광주[편집]
金光洲 (1910-1973) 경기도 수원 출생. 중국 상하이 남양의대 수학. 1933년 단편 <밤이 깊어 갈 때>를 <신동아>에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포도의 우울> <석방인> <춘상> <장미의 침실>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중국 대륙에서의 오랜 방랑 생활에서 길러진 호방한 기질로, 폭이 넓고 선이 굵은 작품 세계를 보인 작가였다.
김영수[편집]
金英壽 (1911-1977) 서울 출생. 배재 고보, 중동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수학. 학생 연극 단체인 '동경 학생 예술좌' 창립. 1934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희곡 <광풍> 입선, <동아일보>에 <동맥>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조선일보> 기자 역임. 주로 극작가로 활동. 주요 작품으로 <방랑기>, <생리>, <파도> 등 발표. 그는 소설의 '재미'를 통한 통속성을 지닌 작품을 추구한 일면을 지닌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허윤석[편집]
許允碩 (1915-1995) 경기도 김포 출생. 1935년 <사라지는 무지개와 오뉘>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실락원>, <옛 마을>, <해녀>, <조사(釣師)와 기러기>, <초인> 등 발표. 그는 시대적 사건이나 상황을 서정적인 문체로 형상화하는 작품을 많이 창작했다.
허준[편집]
許俊 (1910- ? ) 평북 용천 출생. 중앙 고보, 일본 호세이(法政) 대학 졸업. <조선일보> 기자 역임. 1935년 시 <모 체>를, 1936년에 단편 <탁류(濁流)>를 <조광(朝光)>에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만주를 거쳐 광복 후 북한에 거주. 주요 작품으로 <야한기(夜寒記)>, <습작실에서>, <잔등(殘燈)>, <한식일기(寒食日記)> 등 발표. 작품집 <잔등>(을유문화사, 1946)이 있다. 그는 해방기의 현실과 인간의 내면 세계를 깊이있게 탐구한 작가였다.
김이석[편집]
金利錫 (1914-1964) 평양 출생. 연희 전문학교 수학. 1938년 <동아일보>에 <부어(腐漁)>가 입선하여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실비명>, <뻐꾸기>, <허민 선생> 등 발표. 그는 소박하고 선의에 찬 잔상을 통하여 휴머니즘적인 세계를 추구한 작가였다.
이봉구[편집]
李鳳九 (1916-1983) 경기도 안성 출생.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수학. 1938년 김광균·오장환·서정주 등과 <시인부락(詩人部落)> <풍림(風林)>, <자오선(子午線)> 등의 동인으로 활동. 주요 작품으로 <언덕>, <브라운과 시계>, <북청 가는 길> <방가로(放歌路)>, <잡초> 등 발표. 그는 주로 자전적인 작품 세계를 보이면서 문단 교류에 얽힌 일화를 소재로 다루었다.
최상규[편집]
崔翔圭 (1934-1994) 충남 보령 출생.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56년 <포인트>가 <문학예술>지에 추천되어 등단. 주요 작품으로 <사탑(斜塔)>, <형성기>, <겨울 잠행>, <자라나는 탑> 등 발표. 번역서로 <현대소설이론> <소설의 수사학> 등이 있다. 공주 교대 교수 역임. 그의 소설은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위한, 상상력과 환상을 그려내는 작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김문집[편집]
金文輯 (1907- ? ) 평론가.호는 화돈(花豚). 마쓰야마(松山)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소설 공부를 했다. 1935년 귀국하여 주로 패기에 넘치는 문예평론을 발표했고, 유미적(唯美的)인 예술지상의 입장을 주장했다.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였으며 저서에 평론집 <비평문학>이 있다.
탁류(濁流)[편집]
(194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채만식의 장편소설. 그의 대표작으로 내용은 여주인공 초봉의 유전하는 기구한 운명을 통하여, 풍자적인 수법으로 세속적인 인정 세태를 그린 작품. 시대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려는 데 주제를 두고 시정(市井)적인 풍속 세태의 분해 과정을 그려 박태원의 장편 <천변풍경>과 함께 대표적인 세태소설을 이루며 그 비판적인 리얼리즘은 문학사적으로 크게 평가되고 있다.
김강사와 T교수(金講師―敎授)[편집]
(1935년) <신동아>에 발표된 유진오의 단편소설. 속되고 추악한 현실 속에서 지식인의 양심과 고민을 그린 작품으로 심리묘사가 뛰어난 사실주의풍의 소설이다. 주인공 김만필이 전문학교 강사로 취임은 했으나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세속적인 교무담당자와 한 동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그 직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 유진오의 대표작이며, 1935년대의 평판작이다.
암흑기의 문학[편집]
暗黑期-文學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지자 일제의 정세는 더욱 급박한 위기의식의 고조와 함께 암흑기적 양상(樣相)을 띠게 되었다.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과 동시에 1939년에 미·일 전쟁이 다시 점화(點火)되었다. 마침내 전 세계 연합국을 상대로 한 파시즘과의 세기적 대결인 제2차대전으로 확대되었다. 일제의 세력이 물심 양면으로 약화됨에 따라서 일제의 침략주의적인 탄압은 극도로 노골화되어 그들의 군국정책에 대한 협력이 강요되었다. 1938년 지원병 제도의 실시와 함께 이른바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이 날조, 대두되었고 1940년 이후에는 징병(徵兵)·징용(徵用)의 강제 실시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법제화(法制化)하여 민족 의식을 말살하려는 이른바 황민화(皇民化) 운동이 문화시책으로 구체화되었다. 1939년 이른바 '조선문인협회'가 결성, 일본 국책(國策)에 협력하는 문학기관으로 많은 문학인들을 동원, 자기네 전쟁정책에의 협력이 강요되었다. 더욱이 '국어(일어)상용(常用)'의 운동과 함께 민족어인 한글을 말살하기 위해 문학에서는 일어(日語)로 작품을 쓰도록 강요되었다. 소학교·중학교의 조선어 시간은 전폐되고, 1940년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양대 민족지가 폐간되었고, 1941년 <문장(文章)> <인문평론(人文評論)> 등의 문예지가 폐간되었다.
<인문평론>은 곧 <국민문학(國民文學)>으로 개제, 일문으로 속간되었고, 변절(變節) 문학인들이 속출하여 이들은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 산하로 들어가 일문으로 작품을 쓰며 일제의 황민화 운동에 형식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동조하니 이 시기는 민족문화의 수난기이며, 문학사적으로 보아 치욕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시기였다. 한편 이러한 암흑기적 현실에서 눈을 돌려 산방(山房)과 자연을 찾아 은둔(隱遁)하여 붓을 꺾거나 개탄과 울분에 몸부림친 문학인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 극도에 달한 민족적 수난은 문학작품의 생산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하였으며 기실 민족어 말살 이전에도 문학에 있어서 사상적·비판성은 띨 수 없었고, 오직 문학 형식, 문장 수사 등에 치중하는 경향으로 전이(轉移)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급박한 정세가 오기 전인 1936년을 전후해서는 우리 문학도 양적으로 풍성한 시기를 맞아, 문장·작품 기교 등에서 높은 수준의 작품을 생산한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 많은 신인들이 등장했다. 즉 1934년 박영준(朴榮濬), 1935년 김유정(金裕貞)·김동리(金東理), 1936년 김정한(金廷漢), 1937년 정비석(鄭飛石), 1938년 현덕(玄德), 1939년 김영수(金永壽), 1940년 최인욱(崔仁旭) 등 유능한 소설가들과, 처음 시에서 출발하여 소설로 전환한 황순원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한 김동명(金東明), 임학수(林學洙), 김상용(金尙鎔), 김광섭, 모윤숙(毛允淑) 등의 시인 및 이무영, 계용묵(桂鎔默), 강경애(姜敬愛), 최정희(崔貞熙) 등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이 시대에 등장한 시인들은 이육사(李陸史), 김달진(金達鎭), 서정주(徐廷柱), 유치환(柳致環), 윤곤강(尹崑崗), 백석(白石), 노천명(盧天命) 그리고 이 민족적인 수난기를 전후해서는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김종한(金鍾漢), 박남수(朴南秀), 이한직(李漢稷) 등의 시인과 최태응(崔泰應), 임옥인(林玉仁) 등의 작가가 신인으로 등장했다. 특히 암흑기를 통해 순절(殉節)로 일제에 저항한 윤동주(尹東柱)와 이육사는 민족어가 말살된 뒤에도 문학사의 공백기를 증언한 유일한 시인이었다. 특히 1935년경부터 1941년경까지,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에서부터 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에 이르기까지 50여 종의 시집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농촌과 전원문학[편집]
農村-田園文學 외부 정세가 극단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이 시기의 문학은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 중의 한 경향이 전원 농촌문학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는 불안과 위기의식이 심각하게 대두되었으므로 암담한 도시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전원이나 농촌현실을 중시한 기운이 현저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1935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박영준, 최인준(崔仁俊) 등의 신인들은 모두 농촌 현실에서 취재하여 소설을 쓴 농촌작가였다. 박영준은 1934년 <모범경작생(模範耕作生)>이 <조선일보>에 당선된 이래 농촌소설을 통하여 농촌의 생활과 그 곳에 사는 가난하고 무지(無知)한,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작품의 제재로 다룬 것이 그의 특징이며, 최인준도 <양돼지>(1935) <황소>(1935) <안해>(1935) <통곡하는 대지(大地)>(1936) 등 일련의 농촌소설을 통해 진지한 태도로 시골 사람들의 성격을 묘사했다. 이무영도 그의 대표작품인 <농우(農牛)>(1935)를 비롯하여 <금송아지>(1935) <당산제(堂山祭)>(1939) <고향 사람들>(1941) 등의 작품을 통해 농민의 생활감정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가였다. 특히 이무영은 1939년경부터 반도시적(反都市的)인 현실관을 가지고 농촌소설에 전념한 대표적인 작가였다.
그는 동아일보사의 기자 생활을 버리고 농촌으로 낙향(落鄕)하여 1935년에 발표한 <흙을 그리는 마음>에 이어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1940) 등의 전형적인 농촌 소설을 발표하여 '흙의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흙의 노예>는 그의 대표작이며, 이 작가가 뒤에 <도전(挑戰)>(1939) <승부(勝負)> 등의 소설에서 창백한 지식인에 대한 야성적인 힘의 문학을 강조한 것도 이 농촌문학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에 있어 시인들은 전원과 산방(山房)을 찾아 은거생활을 하면서 동양적인 관조와 자연을 예찬하니 이것 또한 복잡하고 어두운 도시적 현실에 대한 기피(忌避)의 한 징후(徵候)였다. 인생파의 시인 김상용은 관조적인 태도로 인생과 전원생활에 대해 담담하게 노래했다. 또한 김동명은 난세(亂世)를 피해서 자연 속에 파묻혀 한거(閑居)하는 동양 시인의 면모를 1938년의 시집 <파초(芭蕉)>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미 1923년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면>(<개벽>)이라는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로써 문단에 등장했던 그는 1935년대를 전후해서 <구름> <바닷가에서> <황혼(黃昏)>등의 시편에서 전원과 자연 예찬으로 일관한 변신을 보여주었다. 1935년 <시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한 신석정도 동양적인 전원시인으로 1939년 시집 <촛불>과 <돌> <난초> 등의 시편을 통해 자연에 친근한 사상을 보여주었다. 1932년 <조선일보>를 통해 시단에 등장한 김달진(金達鎭)은 허무적(虛無的)인 인생관에서 출발한 동양적인 관조의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박영준[편집]
朴榮濬 (1911-1976) 소설가.평남 강서(江西) 출생. 연희전문 문과 졸업. 1934년 단편소설 <모범경작 생>이 <조선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후, <어머니> <목화씨 뿌릴 때> 등 주로 농촌소설을 발표함. 광복 후에는 <경향신문> 등에 근무하며 주로 소시민 생활의 윤리적인 면을 강조한 소설을 발표. 작품으로 장편에 <아름다운 길>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 <목화씨 뿌릴 때>(1947) 등이 있는데, 1953년 단편집 <그늘진 꽃밭>으로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김상용[편집]
金尙鏞 (1902-1951) 시인. 경기 영천 출생. 일본 리쿄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동아일보>에 <무상(無常)>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1939년 첫번째 시집 <망향(望鄕)>을 간행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국새> 등은 그의 초기 시세계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조용한 생을 관조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정신자세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동양인의 오랜 전통적 정신을 소박하고 친근한 민요조로 표현함으로써 특유한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시집 외에 풍자적인 수필집인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가 있다.
김동명[편집]
金東鳴 (1900-1968) 시인·정치 평론가.강릉 출생.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신학과를 졸업했고, 이화여대 교수를 지냄. 1923년 <개벽>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면>이라는 시로서 문단에 등장했다. 후기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함남(咸南) 서호진(西湖津)에 은거하며 전원시를 발표했고, 1938년 전원시를 모아 시집 <파초>를 출간했다. 광복 후에는 민족적 염원을 노래한 시를 발표하는 한편 정치 평론을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그 밖에 시집 <나의 거문고>가 있으며 1954년에 시집 <진주만(眞珠灣)>으로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정치 평론집으로는 <적(敵)과 동지(同志)>가 있다.
김달진[편집]
金達鎭 (1907-1989) 시인·한학자.경남 창원(昌原) 출생.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1932년 조선일보에 현상 당선하여 시단에 등장. 1934년 <시원> 등에 <모란(牧丹)> 등을 발표했다. 동양적인 인생관을 가진 시인으로 1939년 시집 <청폐(靑枾)>를 냈고, <장자(莊子)>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피천득[편집]
皮千得 (1910- ) 시인·수필가. 호 금아(琴兒). 서울 출생. 상하이 호강대학 영문과 졸업(1931).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 <소곡(小曲)>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굳혔으며, 1933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追憶)> <기다리는 편지> <무제(無題)> <나의 파링> 등의 수필을 발표, 수필가로서 생활을 겸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되어 모든 사상·관념·대상을 배제하고 순수한 정서에 의해 생활의 서정을 노래하였다. <꿈> <편지> <사랑> 등의 시를 모아 <서정시집(抒情詩集)>을 간행했다. 또한 생활을 통한 주관적·명상적 소재로 쓴 수필들은 섬세한 문체로 수필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주요 수필에 <봄> <여성의 미> <구원의 여인상> <인연(因緣)> 등이 있으며, 시문집으로 <금아 시문선(琴亞詩文選)>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풍자문학과 경향파 이후의 시[편집]
諷刺文學-傾向派以後-詩 이미 1934년대에 채만식이 신랄한 풍자적 작품을 발표한 뒤 '고발(告發)의 문학'을 들고 나온 김남천과 이기영, 송영, 홍구(洪九) 등 프로 파에 속했던 작가들이 풍자적인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이 풍자문학과 관련해서 1936년 <사하촌(寺下村)>으로 문단에 등장한 김정한(金廷漢)은 <추산당(秋山堂)과 곁사람들> 등에서 비판적인 리얼리즘을 보여줌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현실비판의식과 풍자성이 곁들였는데, <사하촌>에는 지주계급인 승려(僧侶)와 사하촌 농민과의 대립을 묘사했고, <추산당과 곁사람들>에서는 추산당(秋山堂)이란 인물이 죽은 뒤에 유산(遺産)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추악한 골육전(骨肉戰)과 화장터의 광경을 냉혹히 묘사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비판적인 경향의 리얼리즘임을 보여주었다.
채만식의 신랄한 풍자소설과 함께 이상의 <날개>도 자의식의 노출 및 시대에 대한 풍자성을 보여주었지만 인생파의 입장에서 작품을 쓴 계용묵(桂鎔默)과 김유정(金裕貞)의 작품에도 다분히 풍자적인 작가의 태도가 반영되었다. 특히 이 때에 발표된 최재서의 평론 <풍자문학론>은 이론적인 면에서 풍자문학의 방향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편 과거에 경향적인 작품을 쓰던 시인들도 이 시기에 들어와 일부 시대 현실에 대한 고뇌와 풍자의 세계를 그렸다. 1934년을 전후해서 경향시인으로 시단에 등장한 윤곤강(尹崑崗)은 제3시집 <동물시집(動物詩集)>에서 비유·우화(寓話)·풍자를 통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의 시집은 대부분 동물을 소재로 어두운 시대를 풍자한 것으로 특이한 시정신을 보여주었다.
또 1938년 경향시로 시단에 등장한 김해강(金海剛)도 1940년 시집 <청색마(靑色馬)>에서 초기의 태양을 주제로 한 서사적인 작품과는 달리 시대에 대한 좌절감과 향수적(鄕愁的)인 것을 노래했다. 이찬(李燦)도 경향적인 시인으로 <대망(待望)> <불안> <결빙기(結氷期)> <바리우는 이 없는 정거장> 등의 시에서 침통한 현실을 노래했으나 그 외 다른 시들은 시대의식이 해소된 일종의 생활시의 경향을 나타냈다. 이찬은 제2시집 <분향(焚香)>에서 지나간 시대에 대한 고뇌를 보여주었고, 제3시집 <망양(茫洋)>에서 니힐리즘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한편 카프파의 핵심이던 임화(林和)는 시집 <현해탄(玄海灘)> 중 초기작 <네거리의 순이(順伊)> 등을 제외하고는 시대에 대한 단편적(斷片的)인 반응과 부조화를 보여주었고, 프로파인 박세영의 시집 <산제비>에서는 자연에 대한 서정과 시대적인 울분을 토로했다. 1931년경 일본 나프(일본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 가맹했던 김용제(金龍濟)도 몇 편의 시대에 대한 관념시를 썼고, 초기 프로파에 가담한 후 '9인회' 회원으로도 활동한 시인 조벽암(趙碧岩)도 시 <향수(鄕愁)> 등에서 우수(憂愁)와 권태(倦怠) 등 시대적인 부조화와 향수를 노래했다.
김정한[편집]
金廷漢 (1909-1996) 소설가.부산 출생. 동래고보(東萊高普)를 거쳐, 1932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第一高等學院) 수학. 1936년 단편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이 때부터 <옥심이>(1936) <항유기(航遊記)>(1938) <그러한 남 편>(1938) <기로(岐路)>(1938) <월광한(月光恨)>(1940) <낙일홍(落日紅)>(1940) <추산당과 곁사람들>(1940) <묵은 자장가>(1941) 등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러한 단편을 통하여 암흑 속의 식민지 현실에다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작풍을 보였다. 그러나, 1941년의 <묵은 자장가>를 발표한 후 1945년까지 약 4, 5년간에 걸친 문단 암흑기에 집필을 중지한 이래 이렇다 할 문단적 활동이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그가 1960년대 후기에 와서야 오랜 침묵을 깨고, 낙동강변에 사는 가난한 어촌민(漁村民)의 생활과 수난을 생생하게 그린 중편 <모래톱 이야기>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69년 단편 <수라도(修羅道)>로 한국문학상을 수상. 부산대학교 교수·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역임하였다. 단편집 <낙일홍(落日紅)>과 <인간단지(人間團地)>(1971)가 있다.
윤곤강[편집]
尹崑崗 (1911-1949) 시인.본명은 명원(明遠). 충남 서산(瑞山) 출생. 1934년경 경향파 시인으로 시단에 등장. 1936년경에 이르러 암흑과 불안 속의 세계를 풍자적으로 그렸다. 광복 후에는 한때 프로문학동맹에 가담했으나, 얼마 후 시집 <살어리>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고전적인 세계로 변신했다. 광복전 시집으로 <대지(大地)>(1937) <만가(輓歌)>(1938), <동물시집>(1939) 등이 있고, 광복 후에는 시집 <살어리>를 비롯하여 시 작품에 <기(旗)> <우리의 노래> <아지랑이>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는 <시와 진실(眞實)>이 있다.
사소설과 세태소설[편집]
私小說-世態小說 암흑기적인 식민지 현실하에 작가는 자유스럽게 외부현실을 비판할 수 없다는 데서 이미 언급된 이상의 <날개> <종생기>, 최명익의 <비오는 길> <심문(心紋)> 등 자의식의 문학 내지 심리소설이 대두되었고 이와 함께 작가 개인의 신변적인 사소설(私小說)의 세계를 지향한 것은 시대적인 반응으로서의 한 경향이었다.
사소설이라 하면 작가 자신의 실생활에서 얻어진 산 체험을 신변 잡기식으로 그린 소설을 말하는데 즉 소설을 대사회적(對社會的)인 관점이나 인생문제 탐구라는 시야에서 파악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생활태도를 표현한 것이 그 특징이다. 이 시기의 상황으로 보아 신변적인 사소설이 등장한 것은 하나의 조건 반사(條件反射)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그 대표적인 작가가 안회남(安懷南)이었다. 그는 초기 작품 <연기(煙氣)>(1933) <우울(憂鬱)> <명상(瞑想)> 등에서부터 작가 개인의 신변 이야기와 심리세계에 중점을 두었다. 그 이후에 발표된 <애인(愛人)>(1939) <온실(溫室)>(1939) 등도 모두 신변적 사소설로 일관했는데, 그의 작품에는 어머니와 아내를 둘러싼 가정사(家庭事), 친우와의 교우(交友)관계, 술 친구와의 이야기가 그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안회남은 뒤에 <탁류(濁流)를 헤치고>(1940), <어둠 속에서>(1940)에 이르러 현실적인 작품세계로 변모, 광복 후에는 프로문학에 가담했다. 한편 이러한 사소설적인 경향과 앞서 언급된 세태소설이 이 시기에 유행한 것도 특기할 사실이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시정(市井)의 풍속 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이 시기 세태소설의 대표작이며, 채만식의 <탁류>는 그 세태 묘사를 통해 몰락해 가는 현실의 단면을 그린 우수한 리얼리즘 소설이었다. 한편 유진오는 <가을>(1939) <나비>(1940) <주붕(酒朋)> 등 일련의 시정(市井)세계를 그린 세태적인 작품을 발표해 현실감각의 변모과정을 보여주었다.
역사소설과 통속소설의 유행[편집]
歷史小說-通俗小說-流行 앞서 언급한 대로 20년대 후기부터 역사소설이 대두된 것은 민족주의 문학 내지 국민문학의 한 표현이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1929),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1933) <견훤(甄萱)>, 현진건의 <무영탑>(1937), 박종화의 <금삼의 피> <전야(前夜)>(1940) 등은 모두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었으며, 한편 홍명희(洪命熹)의 <임꺽정(林巨正)>이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는데,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실적인 의도를 표현했다는 데서 당시의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닌 대하소설로 평가되었다. 이렇게 1935년을 전후하여 역사소설이 대두된 것은 어두운 현실이 자유스러운 창작활동의 여건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그 현실의 불만을 과거의 시대를 취급한 역사소설로 해소하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소설의 경향과 함께 1935년 이후부터는 신문소설로서 독자의 흥미를 위주로 한 통속소설이 유행하게 되었다.
통속소설의 특징은 교양적인 것보다 오락적인 성격을 띤 소설로 대체로 줄거리 중심으로 플롯을 전개하고, 연애문제를 취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통속소설은 현대의 상업주의적인 저널리즘을 배경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 시대의 현실이 본격적인 창작보다는 그 붕괴적인 양상으로 흥미 중심의 통속소설을 대두하게 하였으며, 1935년 이후 약 3, 4년간은 통속소설이 유행적인 현상으로 되었다. 1930년 한인택(韓仁澤)의 <선풍 시대>, 1935년 심훈의 <상록수>가 장편소설로 인기를 끈 이래 여류 작가 김말봉(金末峰)은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서 일약 저널리즘의 각광을 받았는데 이것은 그 내용이 철저하게 흥미 중심의 통속소설이라는 데서 크게 저널리즘과 영합되었던 것이다.
그 뒤 김내성(金來成)의 탐정소설이 큰 인기를 차지한 것도 이러한 기운 속에서 연유된 것이다. 1939년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헌신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박계주(朴啓周)의 <순애보(殉愛譜)>가 <매일신보>에 당선된 후, 이 작품은 1940년대에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통속소설로 등장한 김내성과 박계주는 그 뒤 순문학적인 작품도 썼다. 한편 이미 <조광(朝光)> <조선일보> 등에 장편소설을 발표한 바 있던 함대훈이 1937년에 발표한 <순정해협(純情海峽)>도 통속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또한 이 무렵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이태준이 신문 소설로서 <청춘무성(靑春茂盛)>을 <조선일보>에 연재했는데, 이 작품도 또한 독자의 흥미를 염두에 두고 쓴 장편소설이었다.
김말봉[편집]
金末峰 (1901-1961) 여류 소설가. 부산 출생. 일본 도오시샤(同志社) 대학 졸업. 처녀작 <망명녀(亡命女)>를 발표한 뒤, 1935년 장편소설 <밀림>을 연재하여 평판을 얻었다. 1936년 발표한 장편소설 <찔레꽃>은 그의 출세작이며, 광복 후 장편 <화려한 지옥> <태양의 권속(眷屬)> <화관(花冠)의 계절> 등을 발표했다.
김내성[편집]
金來成 (1909-1957) 소설가.평양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 1939년 <마인>을 발표한 뒤 <백가면> <태풍(颱風)>을 발표하여 처음에는 탐정소설가로 등장. 광복 후에는 통속작가로 전향했다. 1949년부터 3년간 <한국일 보>에 연재된 <청춘극장(靑春劇場)>은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뒤 <인생화보(人生畵報)> <애인(愛人)> 등을 발표한 뒤 <실락원(失樂園)>을 집필 중 사망했다.
박계주[편집]
朴啓周 (1913-1966) 소설가.만주 용정(龍井) 출생. 1939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순애보>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 후 통속적인 작품활동으로 인기를 차지했다. 작품으로 단편집 <처녀지(處女地)>(1948) <진리의 밤>(1948) <구원(久遠)의 정화(情火)> 등이 있다.
토속성과 인생파의 문학[편집]
土俗性-人生派-文學 한편 1935년대를 전후하여 문단에 등장한 신인들은 출신과 지방성(地方性)을 활용하거나 문학의 순수성 및 예술성을 강조하는 인생파적인 경향을 지향했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신인들은 뒤에 우리 문단의 중견으로 활약하게 되었고, 그들의 작품세계도 암흑기의 문학을 대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1924년 <상환(相換)>으로 문단에 등장한 이래 인생파적 작품을 발표한 계용묵(桂鎔默)은 1935년 <백치(白痴) 아다다>에서의 예술성 위주의 인생파적인 경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35년 <소나기> <노다지>로 등장한 김유정(金裕貞)은 생활고와 병고로 죽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에 30편의 가작을 남겼는데 그 특이한 작가적 개성과 구수하고 서민적인 언어법을 활용하여 단편 작가로서의 우리 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유정과 때를 같이하여 문단에 등장한 김동리(金東里)도 특이한 문학적 체계를 모색했다. 그의 문학론은 현실적·역사적인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관념적·직관적인 것이 특징이며, 광복 뒤에는 순수문학론을 통해 프로문학파와 투쟁했고, 그의 이러한 문학론은 민족문학과 휴머니즘론의 발전에 주동력이 되었다. 한편 정비석(鄭飛石) 또한 이 시기에 등장했는데, 그의 작품은 순수하게 자연과 조화된 본능의 세계를 그린 것이 특징이었으나 뒤에 이 작가는 <청춘의 윤리>(1943) 등 애정 편력의 대중소설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39년 <소복(素服)>으로 문단에 등장한 김영수(金永壽)도 뒤에는 노골적인 관능과 애욕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이 작가의 통속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1938년 <남생이>가 <조선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현덕(玄德)은 작품의 소재를 체험적인 것으로 승화하는 데 각별하게 고심(苦心)한 진지하고 양심적인 작가였다. 그는 <골목> <경칩(驚蟄)> <군맹(群盲)> <두꺼비가 먹은 돈> 등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대체로 그의 작품은 소년의 눈을 통하여 도시·항구·농촌 등 가난한 영세민(零細民)의 세계를 관찰했는데 이는 그의 작가적 순수성과 진실성을 엿보게 한다. 그는 이 시대의 경박한 저널리즘의 유행성과 영합하지 않고 진실한 작가정신으로 자기의 작품세계를 이룩해 나간 고심과 선택의 희귀한 작가로서 높이 평가된다. 1935년 <단층> 동인으로 처음에는 시인으로 출발한 황순원(黃順元)은 1940년 <황순원 단편집>의 간행을 계기로 작가로서 재출발했다. 1939년 <산신령(山神靈)>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로 등장한 최인욱(崔仁旭)의 작품세계 또한 토속성과 서정성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등장한 유능한 시인으로는 서정주(徐廷柱), 백석(白石), 유치환(柳致環), 이용악(李庸岳), 김용호(金容浩) 등이 있다. 서정주는 동인지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출발, 특히 초기시에서 특수한 혈통·관능·방랑 등을 강조, 인생파적인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1937년 시집 <사슴>으로 시단에 등장한 백석은 향토미가 풍기는 독특한 시풍을 가졌는데, <광원(曠原)> <여우곬족> <모닥불> <주막(酒幕)> 등 그의 시는 민족적인 구수한 흙냄새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으로 시단에 등장한 유치환(柳致環)은 1939년 <청마시집(靑馬詩集)>을 발표, 주정적(主情的)인 것을 바탕으로 의지와 관념의 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이 시인 역시 인생파 계열에 가까운 시를 썼다. 1935년대 후기에 등장한 이용악의 시는 간도(間島) 등지를 배경으로 침통한 북방의 정조(情調)가 그 바탕을 이룬다. 또 동인지 <맥>의 동인으로 시단에 나온 김용호는 애정의 세계를 즐겨 노래했다.
계용묵[편집]
桂鎔默 (1904-1961) 소설가.평북 선천(宣川) 출생으로 일본 도요 대학(東洋大學) 철학과 졸업.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상환>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후 <최서방> <인두지주> <제비를 그리는 마음> 등의 작품에서 경향성을 보였다. 1935년 <백치 아다다>에서 순예술파적인 경향으로 전환, 이후 <청춘도> <신기루> <장벽> 등의 작품을 발표, 광복 후에 <별을 헨다> 등이 있으며, 작품집으로 <병풍(屛風)의 그린 닭이> <별을 헨다> <백치 아다다> <문장사전> 등이 있음.
백치 아다다(白痴-)[편집]
1939년에 발표한 계용묵의 단편소설. 이 작품은 낭만주의적 바탕 위에다 사실적 수법으로 쓴 그의 대표작으로 인간의 가치는 물질이 아니라 인생의 본질이라는 사상을 추구했다. 벙어리 아다다는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런 대로 시집살이를 할 수 있었으나 여유가 생기자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동이가 돈을 가진 것을 보고 새로운 공포를 느낀 나머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돈이 없어져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마침내 돈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김유정[편집]
金裕貞 (1908-1937) 소설가. 춘천 출생. 휘문고보를 나온 뒤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 1935년 <소나기>(조선일보 당선)와 <노다지>(중앙일보 당선)로 문단에 등장. 1937년 폐결핵으로 별세하기까지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하여 일약 중견작가가 됨. 불우한 환경과 병고 속에서 인생을 마친 작가로, 일제 말기에 활동한 작가 중 가장 역량있는 단편 작가의 한 사람. 그는 능란한 문장, 구수한 속어를 구사한 작가로, 불우한 인간 군상을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그의 작풍 뒤에는 항상 짙은 인간미와 애수(哀愁)가 깃들어 있다. 그는 요절하기까지 2년여의 작가 생활에 30여 편의 단편을 남김. 주요 작품에는 <노다지> <금 따는 콩밭>(이상 1935) <산골> <동백꽃> <봄봄> <가을> <야앵(夜櫻)>(이상 1936) 등이 있음. 작품집으로는 <동백꽃>이 있으며 유고로 <김유정 전집>이 있다.
봄봄[편집]
김유정(金裕貞)의 단편소설. 1935년 <조광(潮光)>에 발표되었다. 점순이와의 성례(成禮)만을 꿈꾸며 점순네 집에서 3년 7개월이나 머슴일을 하던 '나'는 장인에게 사정도 하고 협박도 하지만 "너 성례시켜 주마"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하루는 구장에게 이 일을 따지러 갔는데, 이 때 점순의 핀잔과 충동질에 용기를 얻어 장인과 맞붙어 싸워 보았지만 오히려 점순이의 독살스런 말에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해학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인정(人情)의 기미가 생생하게 부각된 김유정 소설의 백미이다.
동백꽃[편집]
(1936) <조광>에 발표한 김유정의 단편소설. 내용은 토속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성(性)에 눈뜬 처녀와 아직 전혀 성을 모르는 순박하고 어리석은 총각을 중심으로 풍자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림으로써 애정의 순진성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작품. 향토미가 풍부하게 넘쳐 흐르며 전면에 작가의 인간미가 나타난 사실주의풍의 작품.
김동리[편집]
金東里 (1911-1995) 본명은 시종(始鍾). 소설가.경주 태생. 1935년 <화랑의 후예>(조선·중앙일보 당선) 뒤에 <산화>(동아일보 당선)로 문단에 등장. 이어서 <바위>(1936) <무녀도>(1937) <황토기>(1937) 등 토속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이채(異彩)를 띠었으며, 인간의 신비력과 직관에 의한 작품세계를 지향하고 주관적인 휴머니즘과 순수문학론을 전개했다. 광복 후의 작품으로는 <달> <역마(驛馬)> 등이 있어 같은 계열의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작품이며, <혼구(昏衢)>(1940) <다음 항구>(1940)와 광복 후의 <혈거부족(穴居部族)> <형제> 등 다른 경향의 현실을 추구하기도 함. 그 후 <귀환장정(歸還壯丁)> <인간동의(人間動議)> <흥남철수(興南撤收)>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단편집에 <무녀도> <황토기(黃土記)> <귀환장정> <실존무(實存舞)> 등이 있고, 장편으로는 <사반의 십자가>가 있다. 평론집에 <문학과 인간>이 있으며 문총(文總) 중앙 위원, 예술원 회원, 서라벌예대 교수, 한국문인협회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예> <월간문학> <한국문학> 창간.
무녀도(巫女圖)[편집]
1936년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속 신앙과 예수교가 교체되어 가는 시대 조류를 배경으로 하여 신비스러운 토속의 세계를 그려 놓은 작품. 내용은 무녀인 모화(毛火)를 중심으로 몽환적이고 신비적인 민속세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그린 것임. 몰락해 가는 운명의 비애를 단순한 애수로 해결짓지 않고, 그 운명과 싸워서 그것을 극복해 감으로써 비록 그것이 몽환적인 것이기는 하나 거기에서 본질적인 인간정신을 찾으려 했다.
황토기(黃土記)[편집]
1930년 김동리가 지은 단편소설. 내용은 억쇠라는 특이한 인물을 통해 허무의식을 그린 작품. 한국적 토속성과 신화·전설적인 바탕 위에 신비성 등을 가미하여 작가의 독특한 사실적 수법으로 이룩한 작품이다.
사반의 십자가[편집]
-十字架 김동리의 장편소설. 1955년부터 1957년에 걸쳐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다. 작자는 이 작품으로 1958년 예술원 작품상을 받았다. 주인공 사반은 2천년 전 로마의 식민통치하에 있던 유대의 독립투사로서 혈맹단(血盟團)이라는 비밀결사대의 수령이다. 그는 언제나 조국의 독립이라는 현세적·지상적 영광을 추구한다. 그러나 때마침 구세주란 말을 들으면서 나타난 예수는 영혼의 구제, 즉 내세적(來世的)·천상적(天上的)인 영광만을 추구함으로써 사반과는 끝내 합쳐질 수 없는 평행선적 대립을 거듭하다가 다같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만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바로 옆 십자가에서 "먼저 너 자신부터 구하고 남을 구하라"고 소리친 강도가 바로 사반이다. 이 소설은 예수와 사반의 대립을 통해 영혼과 육체를 스스로 대극점에 놓고 있는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추구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모순은 영혼과 육체의 조화로써 해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조화의 가능성이 몰락해 가는 서구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동양문화 속에 있다는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웅건하고 장대한 스케일과 빈틈없는 구성, 정확한 문장 등이 이 작품의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비석[편집]
鄭飛石 (1911-1991) 본명은 서죽(瑞竹). 소설가.의주 출생. 니혼 대학(日本大學) 졸업. <졸곡제(卒哭祭)>(1936) <성황당>(1937)으로 문단에 등장. 그의 초기작 <성황당>은 자연의 순수 상태에 동화되는 인간의 모습과 성(性)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당시의 평판작이다. 광복 후 대중작가로 신문 소설로 전향. 남녀의 애정·치정·풍속을 그 시대를 배경으로 그렸다. 장편소설에 <자유부인> <여성전선> <청춘의 윤리>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 <성황당> 등과 그 밖의 저서로 <소설작법>이 있다.
성황당(城隍堂)[편집]
1937년 조선일보에 당선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그의 출세작으로,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이에 동화되는 인간의 순수성과 본능의 세계를 그림. 내용은 '순이'라는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세계 속에서 이에 동화되어 가는 그녀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다.
김영수[편집]
金永壽 (1911-1979) 소설가·극작가.서울 출생. 김유정의 조카로 일본 와세다 대학 수학. 1937년 <소복>(조선일보)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다. 단편소설 <밤>(1940) 등 일련의 작품 속에서 관능적인 애욕의 세계를 묘사함. 단편집에 <소복>, 장편에 <파도> <폭풍의 역사> 등이 있다. 광복 후에는 희곡과 방송 드라마로 전향하여, 희곡에 <혈맥(血脈)> 등과 <박서방> <거북> 등의 방송극이 있다.
최인욱[편집]
崔仁旭 (1920-1972) 소설가.경남 합천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종교과 수학. 1939년 매일신보에 <산신령>을, <조광>에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뒤에 역사소설과 대중소설로 전환했다. 서라벌예대 교수·중앙대 강사 등을 지냄. 저서에 장편 <초적(草笛)>(1961). <임꺽정(林巨正)>(1965), <만리장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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