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아플 여유가 없어서일까 감기 한 두번이면 일년을 버텨왔었다.
요 며칠전 부터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게 벌어지면서
묵고살아야 하는 생업에 조금 후달리게 되었다.
얼굴에 새앙쥐가 서너마리 올라가고 헬멧 벗은 머리칼은 토네이도 뒷길 같았고
온 종일 안전화 속에 틀어박혀 있다가 풀려나온 발가락 사이에서
환각을 일으키는 모호한 발 꼬랑내가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곧바로 샤워실로 떠밀었다.
보일러를 목욕기능으로 돌리지도 않고 낮에 많이 더웠더라는 생각만으로 그냥 샤워를 했다.
전에도 자주 그랬으니 뭐 어떠랴 싶었으나 샤워가 끝날 즈음 [약간 떨리는가?] 정도였다.
그래도 새앙쥐 다 잡고 토네이도 잠재우고 꼬랑내 잘 씻고 가뿐한 맘으로
스킨로션까지 찍어 바른후 시원한 옥수수차 (우리집 음용수는 옥수수차로 함) 한컵 마시며
별 관심도 없지만 총선 후보자들의 텔레비젼 연설을 보는둥 마는둥하다가
갑자기 눈이 스물스물 감기고 코 안이 간질간질하면서 입은 딱 벌어져서 뭔 일을 저지를 기세였다.
그러나 금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요상한 아쉬움을 남기며 잠잠해져버리는 재채기의 1차시기 실패.
차라리 속 시원하게 탁~~ 튀어나오면 더 후련한데 말이다.
그러나 연이어 2차시기도 아슬아슬하게 실패로 끝나고 속으로는 참 아깝다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에에에~~~ 에에~~ 엣~~~~~~~~~~~~취이~~~~~
3차시기 성공. 4차 실패. 5차 성공. 6,7,8차 거듭 성공......
벌떡 일어나 머얼건 콧봉지 하나 뭉쳐내고 또 뭉쳐 내고......
"뭐야 ! 이거. 감기끼가 슬슬 뎀비나?"
결국 그자리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아들넘이 왔다.
"아부지 어디 아프신교?"
"아들 왔스? 감기겉은데 오늘 보일러 쪼매 올려놓고 땀좀 빼야긋다."
"약 사다 드릴까예?"
"놔둬라. 이정도 가지고 무신 약꺼정 묵노. 푹 자고나믄 괜찬을끼라."
왠만하면 약을 잘 안먹는 습관이라 이번에도 며칠 개기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이틑날은 별루 일이 없어서 푹 쉬기로 하고 걱정하는 아들넘을
내 쫓으며 염려말고 늦지 않게 강의나 받으러 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게 왠 일인가? 점점 더 심해져서
오한 발열, 두통, 콧물...... 거기다가 온 뼈마디 마다 나사가 다 풀린 기분이다.
마침 마을 보건소는 소장이 출타중이라 문이 닫혀있고 달성 약방의 약은 너무 독해서
약에 취하면 정신이 아찔 해 질 정도라 그 약방은 이용을 안한다.
그래서 안강 읍내에 까지 약사러 가기도 싫고 귀찮고해서 꽁꽁 앓고 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넘에게 차 key를 주며
"보건소는 소장이 없고 달성 약국엔 너무 독하니 안강가서 이러이러한 증상에 감기약과
김치찌게 하게 돼지 목살 5000원어치 사오니라."
휭하니 갔다온 아들넘이 거스름돈 5000원과 key를 내 놓으며
"아부지요 목살은 냉장고에 넣어 놨구요 안강 보건소를 몬 찾아서 걍 왔심더."
이칸다.
"이자슥아 안강바닥에 약국이 수십군데거늘 약 사러 간눔이 약도 안사고 걍 온다 이말이가 으이?"
"약국에 약은 독해서 몬 잡숫는다꼬 캤자나요."
"에라이 썩을눔아 ! 달성약국이라캤지 안강 약국도 독하다 카드나?"
".........."
"내가 만약에 아들이라카믄 언눔을 잡고 물어도 보건소를 찾아 약을 사 왔을끼다.
그라고 잘못 알아 들었다믄 지금이라도 다시 안강 약국으로 달려갈끼다 이눔아."
"내친구 기철이한테 보건소가서 약 사 오라고 전화하고 왔는데예."
"아들인 니눔이 약 사러 갔가가 그냥 오는데 기철이가 무슨 의미가 있노 짜쌰"
안강에 사는 놈이고 절친한 친구니 금방 사 오리라는 생각에 부탁을 한 모양이지만
직접 뛰어서 약을 못 구해온 아들넘이 야속하고 섭섭해서 마구 야단을 퍼부어 댔다.
마침 읍내에서 표구사를 하는 동네 선배가 퇴근 할 시간이라 오는길에
약을 사 오라고 부탁을 했더니 잠시후에 도착해서 약을 먹었고
아들넘은 기철이란 친구에게 부탁취소 전화를 했다.
나는 아들 하나를 위하여 온 삶을 투자하고 있는데 기껏 아버지를 위하여 약 지어오는
심부름도 옳게 못하는 멍청한 대학생이 장차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분별력이 없고 판단이 느려서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스피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까? 친구에게 부탁 하기 전에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위해
얼마나 고민 해 봤는가? 약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아버지지만 아버지가 아파보이면
약을 안먹어도 된다고 했어도 아들의 의지로 약을 사다주며 얼른 낫기를 기원해야 하지 않느냐?
일일이 시키고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처신하고 판단 할 나이가
아직도 멀었더란 말이냐? 너를 다 큰 성인 취급을 한 내가 착각이었더냐?
이렇게 꾸지람을 하고있을때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앞에 꿇어 앉아
"아부지......
잘못했심더.
생각이 너무 짧았심더.
용서 해 주이소. 앞으로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심더."
"그래 용서한다는 것은 잘못을 안다는 것이고 잘못이 또 있는 것은 용서가 자동으로
파기되는 것이니 그때는 니 스스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것으로 하겠다 알겠나?"
"옙. 명심하겠습니더."
그후 꼬박 이틀동안 감기와 어울려 놀다가 이제 이별을 고하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일교차 심하고 건조한 날씨에 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시고
젊었을때 처럼 감기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가 낭패당하지 마세요.
가난할수록 건강이 재산이요 늙어갈수록 아프면 서럽다는데~~~~ ^-^*
= 경주 촌눔 조현태 올림 =
카페 게시글
맘대로 쓰세요
부자 갈등
태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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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17 09:3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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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하하하하ㅏ,~~~고생하셨네요,,,,,이젠 다 낳으셨어요,,,건강조심하세요,,,
어쩌나,, 태초사랑님 ,,이젠 괜찮으세요?.. 그러니 늙으면 자식다 소용 없다잖아요,,ㅎㅎ 그래도 어쩔수 없지요,, 자식인데,, 얼른 괘차 하세요,, 생강차 한잔 드릴게요,,,
아고~~ 고맙심미더. 생강차꺼정~~~ 황송하지만 고맙게 잘 마시겠습니더. 후아님 기억님 감사합니데이~~~
와~^^ 이렇게 표현을 다 해주십니꺼^^ 대단하심니다^^ 위트로 쓰시는글요^^ 몰랐는디요~^^/꾸뻑^^ 미칠뻔 하셨네요^^ 그래도 태초사랑님을 어딘가 많이 닮아서 그랬을껍니다^^ 사랑스런 아드님이요~^^/하하하하 글생각하고요^^/조심하세요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