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흥도, 1457.10.25. 동을지에 옥체를 서둘러 매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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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齋全書卷六十 / 雜著七
정단(正壇) 32인
사판(祠版)에는 ‘충신지신(忠臣之神)’이라고 쓰고, 제사의 의식은 축문이 있으며 - 축문은 본릉의 한식절 수향(受香) 때 같이 싸 가지고 감 -, 제품(祭品)은 밥 한 주발, 소탕(素湯) 한 대접, 나물과 과일 각 한 소반, 술 한 잔이고, 제관은 부근의 찰방이나 수령으로 한다.
증 공조 참판 영월군 호장(寧越郡戶長) 엄흥도(嚴興道)
영월군 사람으로서 본군의 호장이 되었다.
천순(天順 명 영종(明英宗)의 연호) 정축년(1457, 세조3) 10월 갑인일에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하자,
흥도가 혼자서 임곡(臨哭)하고는
이튿날 을묘일에,
어머니를 위하여 마련하여 놓았던 옻칠한 관(棺)을 가져다 본군 북쪽 5리 밖 동을지(冬乙旨)로 모시고 가서 서둘러 매장하였다.
가족들이 화가 두려워서 다투어 만류하자,
흥도가, “좋은 일을 할 따름이다.” (興道曰。爲善而已。)하고 매장을 하고 나서는 도망쳐 버렸다.
현종 기유년(1669, 현종10)에 그의 후손을 녹용(錄用)하라고 명하였고,
숙종 무인년(1698, 숙종24)에 공조 좌랑에 추증되었으며,
영종 병오년(1726, 영조2)에 옛 마을에 정려(旌閭)하였다.
또 계해년(1743, 영조19)에 공조 참의를 더 추증하고 예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으며,
무인년(1758, 영조34)에 공조 참판을 더 추증하고 창절사(彰節祠)에 배향하였다.
내가 을사년(1785, 정조9)에 지방관에게 명하여 그의 분묘를 증축하고, 무신년(1788, 정조12)에 또 제문을 지어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능하 (역) | 1998
* 정축년(1457, 세조3) 10월 갑인일 : 1457년 10월 24일
* 이튿날 을묘일에~ : 1457년 10월 25일
*수향 [受香] [역사] 예전에, 제관(祭官)이 제사를 지낼 때 임금으로부터 제문(祭文)을 받던 일.
*소탕 素湯 고기나 생선을 넣지 않고 야채로만 끓인 국
*소반 小盤 짧은 발이 달린 작은 상
*찰방 察訪 조선 시대,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육품의 외직 문관 벼슬
*임곡臨哭 영결식에 참례하여 곡을 함. 여기에서의 의미는 엄흥도가 슬퍼 큰 소리를 내어 울면서(哭) 혼자서 시신을 지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