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추억의 노래 한두 곡쯤은 갖고 있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는 노장년층이면 그리운 고향 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대기도 한다. 경남에도 각 지역을 소재로 한 국민애창곡이 많다. 지역별로 사연을 간직한 노래도 있다. '노래따라 고향따라' 추억여행을 떠나본다.
7080세대 중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를 흥얼거리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아름다운 선율로 80년대부터 국민애창곡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는 강은철 노래 「삼포로 가는 길」의 가사 첫 소절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산업화 과정에서 바깥을 떠돌다 고향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 「삼포 가는 길」을 강은철의 노래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때보다 10년 전인 1973년에 발표해 '삼포'와 '길'의 조합을 먼저 사용했다. 소설과 노래에서 '삼포'와 '길'은 도회지 출신들에겐 상상 속의 아득한 고향으로,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추억 속의 고향으로 다가온다.
소설에서 삼포는 개발사업으로 송두리째 사라져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다. 노래 속의 삼포는 노랫말을 만들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지만, 개발의 한 복판에서 '태풍의 눈'과 같이 고요함을 간직한 조그만 어촌마을로 아직 남아 있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를 작사·작곡한 이혜민은 「아빠와 크레파스」, 「59년 왕십리」 등의 작사·작곡가로 유명하다. 이혜민이 고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말 8월 어느 한 여름날 여행을 하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통합 창원시 진해구로 바뀐 진해시 웅천 삼포마을을 만났다. 이혜민은 비탈진 산길을 돌아 한참을 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고, 푸른 뒷동산 위로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진 풍광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이곳을 동경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노래가 1983년에 발표됐으니 이혜민이 이곳에서 노랫말을 떠올린 때는 그보다 이전으로 보여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한창 진행될 시기였으리라. 당시 진해는 개발의 중심에서 한참 비켜나 있었다. 더욱이 삼포마을은 진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비탈진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 접근할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이런 정경이 고교생 이혜민의 감성과 어우러져 「삼포로 가는 길」 노래가 탄생한 배경이 된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 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
(강은철 노래/이혜민 작사·작곡)
'이혜민의 삼포'를 둘러싼 주변지역은 노랫말을 떠올릴 당시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세계적 규모의 신항만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이 설치되면서 배후도시 건설로 지금도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포마을도 STX조선소의 쇳소리를 들으며 지나야 한다.
소설 「삼포 가는 길」의 배경은 진해가 아니다. 황석영이 젊은 시절, 조치원에서 청주까지의 길을 걸으며 지어낸 지명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정씨와 영달이 부랑 노무자와 떠돌이로 살다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엮으면서 '삼포'라는 가상의 지명을 만들어냈다.
황석영은 소설에서 가상의 고향 '삼포'를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좀 더 잘살기 위해, 또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를 그려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삼포'는 이미 없어져 아련한 그리움의 존재로만 남아있다.
그나마 진해 삼포마을은 예전 모습이 아직 남아있어 추억 속의 고향으로 현존하고 있다. 군항도시에서 세계적인 물류항만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진해의 삼포마을. 소설에서는 가상의 어느 포구이지만, 노래 속의 삼포는 개발의 심장박동이 울리는 저 너머에 한적한 어촌마을로 오롯이 남아있다.
'엘레지의 여왕'이미자의 「황포돛대」배경도 진해
창원시 진해구 행암동에서 안골포까지 가는 해안가 5.6㎞ 남짓 간격의 도로변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와 「황포돛대」 노래비가 서 있다.
80년대 국민애창곡 「삼포로 가는 길」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부른 60년대 가요 「황포돛대」는 2000년대 들어 노래비가 세워지면서 관광객들이 찾고, 노래의 배경도 비교적 많이 알려졌다.
「삼포로 가는 길」이 7080세대의 노래라면, 좀 더 나이 드신 노년층에겐 이미자의 「황포돛대」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황포돛대 또는 황포돛배라는 말을 떠올리면 흔히 한강 마포나루나 임진강 나루터, 목포 영산강을 연상한다. 하지만 60년대 대중가요 「황포돛대」의 배경도 경남 진해다. 임진란 때 왜적을 물리친 왜성, 웅천도요를 비롯해 역사적인 곳을 주변에 둔 남양동 영길마을이다.
196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영길마을 이일윤(필명 용일)씨가 전방에서 군복무 중 고향을 그리며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이 가사에 곡을 붙인 백영호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해운대 엘레지, 추억의 소야곡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황포돛대」는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가이기도 하다. 영화는 노래에서 뱃사람의 애환을 담은 것과 달리 슬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