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신동엽의 신장개업이라는 인기 코너가 있었습니다. 인기 예능인 신동엽이 전문가들과 함께 폐업 직전의 식당을 최고의 맛집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회를 거듭하면서 이른바 '대박집'의 조건으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메뉴판을 단순화하자' 였습니다. 유명한 칼국수집은 칼국수와 만두만, 유명한 삼겹살집은 삼겹살과 김치찌게만을 집중 판매하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돈까스부터 쫄면까지 50여개의 메뉴를 취급하는 식당보다는 '보쌈 전문점', '라멘 전문점'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도 수많은 맛집들을 보면 개인 메뉴판 없이 벽에 전문 메뉴만 적어놓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레스토랑에는 샌드위치가 맛있어.' '저 레스토랑의 조개수프(clam chowder)가 최고야.' 등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맛집이라고 부르기에 확실한 식당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맛집처럼 10개 이하의 전문 메뉴만 취급하는 식당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듭니다. 샌드위치 맛집이라 해서 샌드위치만 5-10종 있는것이 아니라 전채 요리(appetizer), 샌드위치 외의 요리,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 디저트, 음료, 주류까지 그 항목만 기본으로 100여개를 쉽게 넘기기도 합니다.
미국식 경양식집(Diner)의 메뉴판 모습. 이 정도면 메뉴가 아주 단촐한 식당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 먹으러 가자.'라고 하지 않고 '맥도날드 먹으러 가자.(Let's eat some Mc Donald's.)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식당에 갈 때에는 '오늘은 짜장면이나 먹자.'/'부대찌게 먹으러 갑시다.' 등으로 메뉴를 정하고 여럿이 움직이는 모습이 대부분인데,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고 해서 짬뽕을 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장면'이라는 기본 메뉴가 정해진 이상 가격대가 크게 벗어나는 메뉴는 눈치가 보여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식당을 정하고, 메뉴는 각자의 취향에 맏깁니다. 그러다보니 '짜장면 먹으러가자' 보다는 'P.F Chang's(중식당 이름) 먹으러 가자.' 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의견이 일치하면 그 식당으로 갑니다. 식당에서도 어떤 사람은 중국식 볶음면을 먹고, 어떤 사람은 닭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다보니 '냉면 전문점', '돈까스 전문점' 보다는 '태국 요리집', '중국식 요리집'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인 친구들을 보면 개인의 취향이 워낙 다양합니다. 양파나 감자가 들어간 요리는 일절 먹지 못한다던가, 채식만을 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의견을 적당히 죽이고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야 하다 보니, 우리 눈에는 불편한 미국식 주문을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죠.
"시칠리안 피자 주세요. 안에 들어간 멸치(anchovy)는 빼주시구요, 도우는 살짝 덜 익어도 좋으니 검게 탄 부분이 없게 해주세요."
만약 한국 중식당에서 '자장면에 고기는 빼 주시구요, 자장 볶으실 때 고춧가루를 넣어 볶아 주세요. 그리고 면위에 소스 넣지 마시고 따로 그릇에 담아 주세요.'라고 한다면 아마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 의견의 최대 존중이 미국 식당의 키워드이다 보니 미국 식당의 인기 요인은 '메뉴의 단순화'가 아닌 '메뉴 선택의 극대화'가 맞을 것입니다.
서양인을 사로잡을 메뉴로 한식세계화 관련 단체들이 많은 상황인데요, 2009년 MBC 무한도전에서 뉴욕의 한식당 'Bann'에 뉴요커를 모아 놓고 식사메뉴 두가지를 제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음식에 0점을 주기도 했고, 만점을 주기도 했었음을 기억하실겁니다. 이처럼 다양한 입맛과 인종이 모여 사는 서양인들을 사로잡으려면 서양인들을 모아놓고 비빔밥과 배추김치만 내놓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스시가 성공한 이유는 손님이 자유롭게 내용물을 고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같은 비빔밥이라 하더라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빔밥, 소/닭/돼지/해물 등으로 다양하게 육제품을 교체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해 각양각색 서양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출처 : http://flickr.com/photos/moriza/52609037/
첫댓글 각기 삶의 양상이 다르니 제맛을 지켜야 고유해지거늘 한사코-------
그러니까, 라면 하나를 놓고도 매운라면, 덜 매운라면, 김치라면, 오뎅라면, 떡라면....... 식당 사장님은 항상 새로운 메뉴개발에 머리를 굴려야 겠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