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계문화유산 후에성(Hue 城)
세계 문화유산 후에성(城) / 후에 왕궁 건물 / 아름다운 벽화
카이딘(Khai Dinh) 왕릉과 티엔무 탑(Pagoda)
베트남왕조의 수도였던 후에는 1945년 호치민(胡志明)에게 정권이 넘겨지기 전까지 베트남 황족들의 거처였다고 하며, 후에(Hue) 성(城), 왕릉(王陵)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802년,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을 본떠 지었다는 후에성은 월남전으로 파괴되어 남은 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파괴된 건축물들은 복원(復原) 중이었는데 면적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후에성의 정전(正殿)인 태화전(太和殿)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벽화들도 볼만하다. 오히려 더 잘 보존된 것이 역대 황제들의 묘지인데 후에 외곽을 흐르는 흐엉(Hương/香江)강변을 따라 수많은 왕릉(王陵)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4. 월남전의 격전지 다낭(Da Nang)
19세기 프랑스 식민시절 중요 항구였고 월남전 당시에는 미군의 기지가 있던 다낭은 인구 150만으로 베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1965년 월남전 사상 가장 치열했던 다낭 광찌(Quang Tri) 전투... 미군 사망 900명, 베트콩 사망 2.000명. 미군들이 무차별 퍼부었던 네이팜탄, 고엽제 살포...
100대의 미군헬기, 70대의 전투기, 105대의 전차 투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 살육전이었지만 결국 어느 쪽도 승리했다고 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나누는 하이번(Hai Van) 고개는 월남전 때 우리 청룡부대가 전투에 참가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낸 가슴 아픈 격전지이기도 하다.
다낭 고갯마루에는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한 참호도 남아있지만, 고개 높이 1.172m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세계 50대 자연경관으로 꼽은, 세계 8대 비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관을 자랑하는 고개다.
호이안에서 남서쪽 내륙으로 1시간쯤 달리면 투본(Thu Bon)강 상류 정글지역에 고대 왕국의 유적이 있는데 미썬유적지(My Son/참파왕국 유적)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 후에(Hue) 지역을 중심으로 AD 2세기 참족(Cham)이 세운 참파(Cham Pa) 왕국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4세기 말 참파왕이 목조로 힌두사원을 조성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폐허로 있다가 7세기부터 벽돌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다시, 15세기들어 참파 왕국이 몰락하고 유적지도 밀림 속에 파묻혀 잊혀졌던 유적인데 제대로 돌보지 않아 지금도 너무나 쓸쓸한 고대 유적이다.
다낭 앞바다 / 다낭 인근의 미썬 유적 / 다낭과 후에(Hue)의 경계 하이번 고개
인류 비극의 한 페이지인 월남전이 발발하자 최대의 격전지가 이 부근이어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을 하였다지만 제대로 복원과 관리가 되지 않아 버려진 유적이라는 느낌이다.
70여 개의 건축물 유적을 셀 수 있다는데 온전하게 형태가 유지된 건축물들도 더러 있어서 내부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인도식 힌두교 유적들이지만 월남인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힌두교의 혼합된 세계관을 신봉했던 까닭으로 모든 신상이나 제단의 모습들이 힌두와 불교의 혼합된 모습을 보여서 힌두사원인지, 불교사원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다낭 오행산 지옥 동굴 / 동굴 벽면조각 / 순진한 베트남 아이들
다낭에서 12km쯤 떨어진 곳에 오행산(五行山/金,木,水,火,土/Marvel Mountain)이라는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있는데 여기에 지옥 동굴이 있다.
동굴로 들어가면 처음 천정이 굉장히 높은 광장이 나타나는데 조명이 어두컴컴하여 꼭 지옥에 들어온 느낌이다.
괴상망측한 조각들로 가득 차 있는 동굴은 구불구불 미로처럼 얽혀 이어져 있고, 바깥에 나오면 주변을 둘러볼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