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학교를 자퇴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나?"부터 걱정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고1 첫 시험 망했어?"
"괜찮아. 자퇴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농담 같지만, 실제로 이런 대화가 심심찮게 들린다. 고등학교가 학교인지, 게임인지 헷갈릴 정도다. 점수가 마음에 안 들면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부는 경쟁을 줄이겠다며 내신 5등급제와 고교학점제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았다.
"학생들이 덜 경쟁하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 공부하게 하자."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신 경쟁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무조건 1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첫 시험에서 기대보다 낮은 성적을 받으면 "올해는 끝났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고교학점제도 비슷하다.
학생이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대학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자유롭게 고르라고 해놓고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공부도 해야 하고, 수행평가도 해야 하고, 탐구보고서도 써야 하고, 학생부도 관리해야 한다. 학생들은 하루하루가 입시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차라리 자퇴하고 정시에 올인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자퇴는 리셋이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라는 울타리 없이 혼자 공부해야 하고, 생활 리듬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시는 전국의 최상위권 수험생들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승부해야 하는 무대다.
내신이 힘들다고 자퇴했는데, 더 치열한 경쟁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실제로 자퇴했다고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은 아니다. 성공 사례는 많이 알려지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 방황하는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퇴는 '쉬운 길'도, '만능 해결책'도 아니다. 정말 충분한 준비와 강한 자기관리 능력이 있는 학생에게만 가능한 선택이다.
결국 경쟁을 줄이려던 제도는 경쟁의 모습을 바꿔 놓았을 뿐이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듯, 내신 경쟁을 누르니 자퇴와 정시 경쟁이 커졌다.
학교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첫 시험이 마음에 안 들면 학교를 떠나는 방법부터 고민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리셋 버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자퇴는 전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지름길은 아니다. 오히려 더 험하고 더 어려운 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학생들에게 먼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자퇴=유행'이라는 현상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자퇴 후 정시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리셋 버튼은 존재할지 몰라도, 게임의 난이도는 오히려 더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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