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노년 철학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망팔=望八 여든을 바라봄=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 달에도 형뻘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火葬場에 갔었다.
火葬場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 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 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졌다.
'냉각 완료' 가 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成人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職員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遺族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遺族들은 미리 準備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간다
원통하게 非命橫死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父母를 따라서 火葬場에 온 靑少年들은 待機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好喪 입니다" 라며 問喪客을 맞는 喪主도 있었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質量感도 느껴지지 않았다.
物體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 보다는 '흐린' 이라는 形容詞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沈默은 완강했고 범접할수 없는 적막속에서
세상과 作別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言語道斷은 人間 生命의 終末로서 合當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者는 산 者에게
죽음의 內容을 전할 수 없고,
죽은 者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人間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經驗할 수는 없다.
火葬場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荷重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되 반은 人間 肉體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自然現象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日常生活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健康保險 財政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이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가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말자.
殯所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관은 中低價가 좋겠지...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 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全部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生涯가 지나갔다.
똥을 白瓷 항아리에 담아서 冷藏庫에 넣어둔 꼴 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 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山에 오르지 못한다.
登山 장비 중에서 쓸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分身이며 同伴者이다.
헌 신발은 憐愍할 수 밖에 없는 表情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게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日常的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 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정도면 어떨까 싶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 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집 밖으로 나돌면서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遺言으로 "미안허다." 를 남겼다.
한 生涯가 4 音節로 선명히 要約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後悔와 反省의 眞正性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遺言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退溪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는 詩文을 남겼고
臨終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記錄했다.
아름답고 格調높은 遺言이지만 生活의 具體性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부디 연탄 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께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3분의
遺言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遺言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遺言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 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瞬間에도 人生의 當面 問題가
무엇인지를 正確히 認識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遺言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誠實한 勞動의 歲月이 必要하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醫術의 目標라면
醫術은 百戰百敗한다.
醫術의 目標는 生命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充分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品位있게 인도해 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 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對象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時間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醫術은
無意味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葬禮節次에서도 정중한 哀悼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醫術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는 것이다.
天下를 統一하고 不老長生 살고싶어 萬里長城을
쌓았던 中國의 秦始皇帝
로마의 休日에 公主役으로 오스카상을 탄 아름답고
청순한 이미지의 '오드리햅번'
권투 歷史上 가장 成功하고 가장 有名한 흑인권투 선수
겸 人權運動家 '무하마드알리'
연봉을 단 $1 로 정하고 애플을 창시하여 億萬長者가 된
'스티븐잡스'
철권통치로 永遠히 北韓을 統治할 것 같았던 '김일성'
그들 모두 이 世上을 떠났다
財産이 13조로 가만히 있어도 매달 무려 3천억원의 돈이
불어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한참을 병상에
누워있다 결국 고인이 됐다
이렇게 華麗하게 살다가 떠나간 사람 중
누가 가장 부럽습니까...?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對話할 수 있고,
또 카톡도 즐기며 이렇게 사는 삶이
幸福한 삶이 아닐까요?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삽시다.
人生觀의 差異는 있겠지만 後悔없이 人生을
즐겁게 살려면...
첫째, 눈이 즐거워야 합니다.
눈이 즐거우려면 좋은 景致와 아름다운 꽃을 봐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旅行을 자주해야 아름다운 경치와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볼수 있다.
旅行은 休息도 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도 된다.
둘째, 입이 즐거워야 합니다.
입이 즐거우려면 맛있는 飮食을 먹어야 한다.
우리 몸을 維持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 必要한
營養素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셋째, 귀가 즐거워야 한다.
귀가 즐거우려면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계곡의 물소리도 좋고 이름모를 새소리도 좋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歌手의 音樂을 듣는 것도
귀가 즐거운 것 입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