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초는 도쿄 중심부 지요다(千代田)구 북부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서점 타운을 일컫는다. 180곳이 넘는 고서점은 대부분 야스쿠니 거리와 하쿠산 거리가 교차하는 진보초 사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러나 이곳뿐 아니라 스이도바시와 오차노미즈역(驛) 등 주변에 넓게 자리 잡은 고서점가를 통칭해 ‘진보초’라고 부른다.
에도(江戶) 말기에 중앙정부인 막부(幕府)가 근대 최초의 국립교육기관인 한쇼초쇼(蕃書調所)를 이 근처의 히토쓰바시 거리에 옮겼는데 이것이 도쿄가이세이학교(東京開成學校)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오늘의 도쿄대학(東京大學)이 된다. 근대 신학문의 근거지가 바로 진보초였던 것이다. 그 후 주변에 외국어학교·고등상업학교뿐만 아니라 사립인 메이지(明治)·센슈(專修)·주오(中央)·니혼(日本)대학 등이 차례차례 세워지면서 일본 최대의 대학촌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학생 상대의 하숙집도 많이 생겨났다. 학생과 학자가 모이면 자연스레 책의 수요가 생기는 법. 메이지 시대 말기부터 출판사·도매상·인쇄소가 모여 있는 ‘책의 거리’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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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보초도 한때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공습이 도쿄 시내를 초토화했다. 그런데 종전 후 포연이 자욱한 도쿄 시내에서 진보초 부근만 멀쩡했다. 동양 학문의 보고(寶庫)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구한 사람은 세르게이 엘리세프(1889~1975)였다. 그는 서양인 최초의 일본학 연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10대 시절 베를린대학에서 중국어·일본어를 배웠고, 19세 때 서양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한 수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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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초 고서점가를 걸으면 문학·예술·사회과학·자연과학·스포츠·연예·오락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만날 수 있다. 3∼4대째 대를 이어 경영하는 노포(老鋪)가 있는가 하면 젊은 점주가 영화 팸플릿 한 분야만을 들고 진입한 신생 서점도 있다. 작고한 작가의 육필원고만을 다루는 3평짜리 가게가 있는가 하면, 5층 건물 전체에 건축 전문서적만을 전시하는 중형 서점도 있다. 현재 이들 고서점이 보유한 재고 도서만도 약 300만 종, 1000만 권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고서 축제’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진보초는 일본 국민 모두에게, 아니 전 세계인에게 열려 있는 거리의 개가식 도서관이다.
진보초는 한국사 사료의 숨겨진 서고이기도 하다. 국제한국연구원장 최서면(崔書勉)씨가 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목격한 일본 순사의 수기를 발견한 곳, 안중근 의사의 옥중서기 『안응칠 자서전』을 찾아낸 곳도 바로 진보초의 고서점이다.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표기한 최초의 서양 고지도(古地圖)를 공개하고, 동해(東海) 표기가 있는 세계 각국의 지도들을 한데 모아 전시회를 여는 등 오롯이 지도라는 외길을 걷고 있는 경희대 혜정박물관 김혜정 관장. 김 관장이 옛날 지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 우연히 진보초 고서점가에서 프랑스에서 제작한 세계지도를 발견하던 순간의 감동 때문이었다. 그는 말한다. “진보초가 없었으면 독도가 한국 것임을 밝히는 고지도는 물론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보초는 내 학문의 근거지이자 내 인생의 출발점, 내 고향, 내 학교입니다.”
진보초는 평생 한 우물만을 파는 사람들의 성지(聖地)다. 20여 년 전 필자의 유학 시절. 진보초의 단골 고서점 한구석에 하루는 못 보던 책장 하나가 서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원저와 그들에 관한 연구서를 비롯해 번역서·학술잡지, 거기다 전 주인이 꼼꼼히 기록한 철학 노트까지 커다란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책과 노트들은 낱권으로 빼 볼 수 없게 빨간 끈으로 묶여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그 책들을 30년 이상 모으고 공부하던 옛 소유주가 세상을 떠났는데 형편이 어려워진 부인이 한꺼번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부인은 내놓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이 책을 낱권으로 흩뜨리지 말고 한꺼번에 모두 해당 분야의 전공자 한 사람에게 팔아달라는 것. 서점 주인은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의 길이 다른 한 사람에 의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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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초.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거리…. 이곳에는 인형극 무대 뒤의 연희자들처럼 연구자와 독자들을 보이지 않게 돕는 장인들이 있다. 바로 전문성으로 잘 무장된 고서적상과 점원들이다. 창업 2세인 할아버지는 산악서적, 3세인 아들은 요리책, 4세인 손자는 미술서를 각각 담당하는 유큐도쇼텐(悠久堂書店). 1882년 창업 이래 4대째 고지도·고미술서·우키요에(浮世繪) 등 에도 시대의 고전적(古典籍)을 취급해 온 오노쇼텐(大野書店). 당서(唐書)와 중국문학·동양사에 강한 야먀모토쇼텐(山本書店). 지질학 연구에 공헌한 공로로 일본지질학회의 감사장을 받은 광물·지질·암석 전문의 오쿠보쇼텐(大久保書店)….
이들 서점의 점주와 점원들은 해당 분야의 젊은 대학교수들을 한 수 가르칠 수준의 지식과 정보로 무장돼 있다. 이들 또한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다. 문고판 전문서점 분코가와무라(文庫川村)의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소설가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의 휘호가 그들의 마음가짐을 대변한다. “이 길 외에 내가 살 길은 없다. 나는 이 길을 걷는다.”
누구나 일본 하면 도요타자동차나 닌텐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도요타나 닌텐도의 성취 뒤에 숨어 있는 진보초의 존재는 잘 알지 못한다. 렉서스의 아름다운 젠(禪) 스타일 곡선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보초의 침침한 서가 앞에 서 있었을까. 발매되는 족족 지구인의 가슴을 뒤흔드는 닌텐도의 게임 소프트웨어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진보초 고서점에서 구입한 몇백 엔짜리 동화책과 만화책을 빨리 읽고 싶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뛰어가던 청소년들의 꿈이 녹아 있다. 일본이 지금까지 받은 노벨상은 16개. 그 배경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평생 묵묵히 한 우물만을 판 수많은 사람의 일생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지식(知識)의 자양분과 책을 읽는 지복(至福)의 순간을 생명줄처럼 공급하는 ‘진보초’가 있다.
첫댓글 부럽네요. 언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으면 저기 찾아가 봐야지...
잘 도착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