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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닉스적 전환이 요구되는 미래 교육 혁신은?
<#1>; 인공지능 시대;
머지않은 미래는 AI를 탑재한 로봇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시대이다.
요즘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빅 데이터,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와 같은 말들이다. 이것은 기존 산업과 일상의 빅 데이터가 IOT와 연결되고, 그것을 AI가 운영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와 같은 변화를 ‘4차 산업 혁명’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인공지능 AI는 그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두뇌, 곧 혁심 역할을 한다고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AI는 단순히 사람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학습을 해서 사람과 대화도 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알다시피 2016년 봄, 컴퓨터와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겼다. 1997년 체스에서도 이겼으며, 바둑에서도 이겼다. 그리고 2017년 5월 알파고(AlphaGo,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바둑 프로그램이다. 알파고(AlphaGo)의 고(Go)는 바둑을 뜻한다. 딥마인드는 구글이 2014년 인수한 인공지능 관련 기업으로 2010년 영국에서 설립되었으며 머신러닝 등의 기술을 사용해 학습 알고리즘을 만든다)는 ‘바둑의 미래 정상 회합’에서 당대 바둑 세계의 랭킹 1위인 중국의 일등 바둑기사 커제를 비롯해 중국 정상 기사들과의 대결에서 모조리 꺾고 완승했다. 한국의 기사 이세돌 만이 알파고와 대결에서 가까스로 1승을 거둔 것으로써 유일한 인간 기사로 남게 된 것이다.
이 시대는 어떤 세상인가? 알파고의 예에서 보면, 이 시대는 ‘인공지능의 시대’라 할 것이다. 7년 후인 2024년에는 직장인들이 자동차가 아닌 드론을 타고 출퇴근하게 되고, 자율주행자동차와 드론이 결합된 무인이동체가 육.해.공을 망라한 응급. 재난. 국방 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부는 이와 같은 미래형 무인이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반기술 개발을 지원해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여기기를 오갈 것이고, 그 보다 5년 후, 곧 2029년이면 잠수 가능한 무인비행기가 출현할 것이란다. 이것은 12월 7일 오전 과학기술정보부 이진규 차관이 정부 과천청사에서 무인이동체 기술혁신과 성찰 10개년 로드맵을 발표한 것 중에 나온 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2월 7일 그와 같은 내용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보다 앞서 11월 30일 대통령 직속인 4차산업 혁명위원회가 그동안 과학기술정보부, 국무조정실 등 21개 정부 부처가 논의해 마련한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계획의 가장 큰 목표로 ‘지능과 혁신’을 내놓았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의료와 제조, 교통 등 12개 분야에다 지능화 기술, 즉 AI를 접목하려는 것이다. 수년 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확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빠뜨려서 안 될 것은 스마트폰의 일상화다. 이것은 나라 안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스마트폰으로 연결됨으로써 세계의 70억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 될 것이며, 그 네트워크에 AI가 연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활 현장 이곳저곳에서 네트로 연결된 로봇이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스마트한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전망이다. 로봇이라고 하면 미국의 첨단 과학 소설가이며 대학 교수 아이재크 아시모브(Isaac Asimov)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형 로봇뿐 아니라 이미 우리들 가정에서 청소를 하는 룸바 아이 로봇이나 냉장고도 냉장 씨라고 불리는 로봇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미래의 사회는 네트, 곧 지구를 뒤덮은,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 안에서 건설될 것이란다. 여기서 미래사회라고 해도 앞으로 10년쯤에는 그다지 눈에 띠게 변화가 없을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10년간의 가장 큰 변화는 스마트한 스마트폰의 저쪽 켠 연결된 그물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므로 그것이 아무리 크게 요동했을지라도 외견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우리의 후대, 자라나는 세대이다. 사회의 건설(변화)이 도시의 거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물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므로 그것에다 꿈을 맡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물의 저편이 보이지도 않고, 천지사방에 매입된 칩(chip)이나 센서도 초소형화 되어서 숨겨져 있다. 뿐 아니라 첨단기술이나 테크놀로지나 IPS(Intrution Prevention System)와 같은 IP/Port를 기반으로 차단하는 해결방식인 방화벽, 자체적으로 냉각된 각종 해킹수법을 기반으로 컴퓨터 시스템의 비정상적 사용, 오용, 남용 등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시스템인 IDS(Intrusion Detection, 침입탐지), 방화벽(Firewall)과 같은 네트워크 기반의 차단 솔루션을 논리적으로 결합한 솔루션으로, 비정상적인 트래픽을 능동적으로 차단하고 격리하는 등 방어 조치를 취하는 보안 솔루션이다) 따위 등, 세포 와 같이 자꾸만 미세하여져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미래가 눈으로 보기 힘들어짐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조차도 힘들고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자리, 직업이나 직장도 오늘과 같지 않게 될 것이다. 기업체의 경리사무원이나 무역사원, 은행창구원 등을 위시로 숱한 화이트컬러직종이 ‘AI를 탑재한 로봇이 네트워크에 연결됨으로써’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세상이 과연 문자 그대로 ‘스마트’한 사회일까? 그리고 그 사회의 주인공이 우리 인간으로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인가? 이와 같은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후세 교육에 대한 생각도 달리지리라는 것이다.
<#2>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앞으로 우리 후세의 교육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는 이들 중에는 이 시대를 인류 역사의 커다란 전환기로 본다. 그 중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학자 중에서 예를 들면 공병호경영연구소의 공병호 소장을 들 수 있다. 공 소장은 기업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기업의 흥망, 곧 부침사(浮沈史)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오고 있으며,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나, 특히 2004년에 ‘10년 후 한국’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앞날을 전망한 바 있으며, 이어서 2016년에는 ‘3년 후, 한국은 없다’는 제목으로 또다시 한국사회의 앞날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는 인간, 경제, 경영, 그리고 교육 등 여러 방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냉철한 시선, 그리고 탁월한 사유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엘리트로서의 면목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는 ‘3년 후, 한국은 없다.’에서 그는 삐뚤어지고 시대와 동떨어진 한국 교육의 후진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내리고 혁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의 실마리를 그의 책에서 찾은 “시대 변화에 맞추어 교육도 변해야 한다. 교육이 고객을 위한 교육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은 사회의 조력자가 되기보다는 걸림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는 말에서 인용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외국인 중 한 분을 소개한다면, 캐나다 사람으로 기자이며 저술가인 피터 노왁(Peter Nowak)을 들 수 있다. 그가 낸 ‘Humans 3.0(한국어 번역서: 휴먼 3.0: 미래 사회를 지배할 새로운 인류의 탄생. 김유미 옮김, 새로운현재사 발행, 2015)’에서 새로운 문명의 태동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대 전제하에서 1, 종種으로서의 업그레이드, 2, 테크놀로지가 바꾸는 미래 환경, 3,새로운 인간의 탄생, 4, 가장 인간적인 시대의 도래로 나눠서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후일에 구체적으로 소개할까 한다.
이 밖에도 필자의 서가에는 ‘인간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라든가 ‘유엔미래보고서, 2050(State of the Future)’ 따위가 있다. 이제 그와 같은 서적들을 참고하면서 오늘 인류 역사상 큰 전환기를 맞아 우리의 자녀교육이 어떻게 이 시대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3>; 교실에서 잠재우는 한국식 주입식 교육;
1. 서울대 입학에 목을 매는 입시지옥 교육;
“꼭 서울대에 가야 한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한계가 있다.” “부모님 학비 걱정을 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장학금을 받고 명문대 진학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결정이다.” “삼수·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많은 학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빌 게이츠가 될 수 없다.”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들은 세계의 천재와 경쟁해 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소양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고졸자가 천재이더라도 첨단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 “한글과 컴퓨터 이찬진 사장이 서울공대 출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말들은 문재인 정권이 홍종학 중소기업부 장관이 지난날에 출간한 저서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에서 인용한 말들이다. 그는 그 책에서 이와 같이 서울대를 위시한 소위 명문대 진학을 절대시 하고 그 밖의 대학들이나 고졸학력자, 중소 기업인들을 폄하 하는듯한 표현을 써서 국회에서 열린 공직자 호보 청문회에서 호되게 질타를 당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은 비단 홍종학 장관만이 갖는 것이 아니라는 데 한국교육의 문제가 도사라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즉 한국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아니 잉태해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일종의 종교처럼, 우리 나라사람들을 옭죄고 있는 신념이다. 오로지 서울대만 바라보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국립서울대가 아니면 서울에 소재하는 ‘서울의’ 대학에라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이것이 교육의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또한 큰 문젯거리다.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의 껍데기에 불과한 모습이니 어찌하랴.
2. 줄 세우기 교육;
이 나라의 교육은 입시 준비 위주의 암기식, 정답 맞추기 연습에 골몰하는 교육이다. 곧, 문제풀이에 능숙한 인재를 기르는 교육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1년에 단 한 번만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약칭 ‘수능’)으로 수십만 명의 학생을 점수 순으로 줄을 세운다. 올바른 교육을 지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것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교육계에도 뿌리박고 있는 ‘적폐’를 청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앞에 소개한 공병호 님이 말한 그대로 과연 한국이란 나라가 3년 후(그의 책을 쓴 해가 2016년임을 생각하면 2019~ 2020년 사이)에는 없어질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쌓이고 쌓인 묵은 습관과 습성의 포로가 된 채로 있다간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없지 않을 것이란 경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의 교육계의 민낯은 어떤 모습인가? 지면상 자세히는 훑어보지 못하고 대강을 짚어보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대나 그에 준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목을 매는 가혹한 입시경쟁에 몰두하는 지식주입교육, 정답암기위주 교육에 골몰하는 것이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이다. 이 벽을 허물고 벽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벽 너머의 세상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한 마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시대’이다. 우리날도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이룩하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않고 짐승처럼 살았느냐고 반문할는지 모르나, 여기 ‘사람답게’ 라는 말은 단적으로 말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꺾어 엎을는지도 모를 세상, 곧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전 세계 70억 인류가 전파로 연결된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다는 말이다.
과학소설의 장면이 현실화된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곧 인간이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삶을 즐기는 시대가 열릴 것이란 말이다. 달나라로 이주를 가게 될는지도 모르고, 화성이 일등 관광지가 될는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우리 다음 세대가 살게 될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세대에게 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말만 무성하고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어떻게 달아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물음에 선 듯 대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선 우선 한 번 더 공병호 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면, 관계 당국이 정규 교육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학교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실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기존의 틀 내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학교의 설립을 허용할 수도 있다. 여기서 새로운 학교란 한국식 교육과는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받아온 교사들로 구성된, 오늘날의 국제학교에 가까운 모습의 학교를 말한다.” (공병호 ‘3년 후, 한국은 없다. 156쪽, 21세기북스. 2016년)
그와 같이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난관을 무릅쓰고서 통념을 깨고 특수한 학교를 세워 운용하고 있는 본보기가 하나 있다. 미국의 서부 캘리포르니아의 첨단과학단지인 실리콘밸리에 가까운 모펫필드에 세워진 ‘싱귤래리티 대학교(Singularity University)’가 그것이다.
학문간 경계를 넘는 융합, 미래에 대한 통찰력, 기업가와 창업 정신을 함양하는데 교육의 중점을 두는 대학.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사업화하려는 벤처 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Singularity'는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해 도달하는 최고 정점이란 의미다. 다음에 <#5>에서 이 싱귤래리티 대학교가 어린이 청소년에게 바라는 교육이 어떤 것인가를 실험을 통해 얻은 것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3. 학생을 잠재우지 않는 수업은 없을까?
오늘 이 나라의 초중고교 학생은 공부기계로 만들어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서울대, 또는 속칭 SKY명문대 입학을 마치 지난날 과거에 등 알성급제하기를 목표로 공부하던 것처럼 목을 매고 입시공부, 일등주의공부, 달달 외우기 공부, 4지택일 점치기 공부, 등등에 잠을 설친다. 학교에서 정규수업이 끝나고 야간 수업이 있고, 그것을 마치면 학원에 가야 한다. 잠이 부족하다. 한참 심신이 성장해야 할 시기에 수면이 부족하다. 그러니 낮에 교실에서나 잠을 자야 한다. 대부분 학생은 학원에서 선수 학습을 했기 때문에 교실에서 선생님과의 수업은 들으나 마나이다. 오로지 형식적으로 수료나 졸업을 했다는 것을 증명 받으려는 강요에 못 이겨서 참고 다닌다. 그것에 못 견디거나, 혹은 항거하는 하는 애들은 교문 밖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삶을 초기한다. 그래서 그들에 한국은 ‘헬 조선’이다. 지옥이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을 머리에 쑤셔 박아 넣으면 그것이 공부의 전부인가? 뇌가 하는 학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정보, 곧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과 얻은 정보를 일상에 활용하기 위해 ‘편집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정보 처리 능력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지리 역사. 체육. 예술 등등 학과 공부에서 얻는 것을 인푸트(in-put)하는 힘이면, 후자, 곧 정보 편집 능력은 지니고 있는 정보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능력인데, 나눠보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 롤 플레이(roll play),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구두발표)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측면의 특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보처리능력은 지식을 비축하는 것이라며, 정보편집능력은 축적된 지식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편집) 밖으로 나타내는(out-put) 능력이다. 아무리 수십 만 권의 독서를 한들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래서 학교공부가 오늘과 같은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정보 처리하는 뇌를 정보 편집하는 뇌로 바꾸는 학습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in-put와 out-put의 다름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학교의 과목을 예로 들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공부에서는 국어나 영어 성적이 중요하지만, 실사회에서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학교에서 국어나 영어 따위 어학을 공부하는 것은 타자와의 원만한 대회 능력을 익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둘째; 학교 공부에서는 수학 성적이 중요하나, 사회에서는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능력이 요구된다. 수학공부는 그와 같은 두뇌를 기르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셋째: 학교 공부의 과학은 사회에서 필요한 온갖 현상 간의 연결을 실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중 추리를 해 가는 시뮬레이션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 시뮬레이션 능력이란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다음엔 그에 대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육감을 발동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전형적인 것이 기상예보라 할 것이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이와 같이 배치돼 있으니, 그것으로 전선에서는 비가 내릴 것입니다.”와 같은 예보를 하는 따위이다. 사회학과나 과학 공부가 그와 같은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끝으로 음악, 미술, 체육, 기술, 정보, 가사와 같은 실기교육은 사회인으로서의 최저한 필요한 기능과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익히는 공부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와 같은 정보를 몸에 익히고 처리를 한다 해도, 한 걸음 나아가 몸에 든 정보를 편집(out-put) 하는 힘이 없으면 오늘과 내일의 세상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학교교육의 탈을 하루 빨리 벗어던지고 AI와 인터넷이 처리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힘을 기계에 빼앗기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교육 혁명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이것을 아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놀이가 밥’, 곧 ‘놀이 학습’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종래의 학교교육을 완전히 뒤바꾼 사고이다.
왜 하필 ‘놀이’냐고 물을 것이다. 어린이의 놀이는 대부분 저희들 놀이 동무들끼리 모여서 새로 고안해 낸 것이거나, 혹은 종전부터 전해 오는 것일지라도,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춰서 약간의 수정을 가하거나 전혀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서 놀거나 한다. 그리고 이 놀이는 유아들에게서 더 현저히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학교수업과 같은 수동적인 ‘배움’이 없었기 때문에 제 멋대로 놀이를 만들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곧 놀이를 통해 어린이는 지능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발달한다. 놀이를 강조하는 이유 중 가장 으뜸은 어린이들이 자유분방하게 노는 중에서 두뇌가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교사나 부모, 선배 등)이 배워준 정답만 머리에 담은 딱딱한 뇌의 소유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뇌로 문제를 풀고 답을 찾는 버릇, 곧 부드러운, 유연한 뇌를 기르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이유로 그것을 알게 된다.
첫째; 실수나 실패 등 어려운 경험을 한 사람이 더 성장한다. 편안하게 지내 온 것보다 엄한 현실을 경험한 때에 사람은 더 귀한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둘째; 오늘과 내일의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놀이 감으로 삼으며 자리기 때문이다. 머리가 신속하게 회전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셋째; 온라인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놀이와 학습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의 일제수업과 같은 개성 없는 학습이 아닌, 어린이 하나하나마다의 개성에 맞는 ‘독자적인 감각’이 강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넷째; 친구와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감각이 길러지기 때문에 민주주의사회의 시민감각이 일찍부터 길러져 있다. 필자는 어려서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파하면 집에 와서 소를 몰고 뒷산에 올라가 소에게 풀을 실컷 뜯어 먹인 다음에 해질 무렵에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동네의 다른 집 애들도 마찬가지로 제각기 제 집 소를 데리고 와서 산에 놓아두고 우리끼리 모여 놀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게 된 것이 송아지라는 놈들이 어미를 떠나서 다른 송아지들하고만 모여서 놀더라는 것이다. 어미보다 친구가 더 좋은 것이다. 사람의 어린이에게도 그와 같은 동물적인 성질이 있다는 것을 친구를 좋아해 끼리끼리 모여 노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이 나중 성년이 된 성숙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 않는가.
다섯째; 다른 무엇보다 학교의 지배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실상 아이들에게 학교는 지긋지긋하다. 마지못해 다니는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왜 햇수를 정해 놓고 그것에 묶여서 살아야 하는지. 몇 개월이나 한두 해면 다 배울 것을 엿가락 눌리듯 늘여놓고 학년제를 실시하고 있는 교육제도라는 것이 절대 옳은 것일까? 이건 ‘적폐’가 아닐까? 학교란 곳에서 주입시키는 가치관이란, ‘정해주의’, ‘전례주의’, ‘무사안일주의’, ‘정적으로 줄 세우기 주의’와 같은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벗어던져야 올바른 인재가 성장할 것이다.
<#4>. 미래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앞 절<#3>에서 소개한 미국의 싱귤래리티 대학교(이후 SU로 약칭)가 시행했던 한 실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2015년에 SU의 미래교육 리비폴크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대 14명을 모아 놓고 미래의 교육을 디자인해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문제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보았다. 그 전 해인 2014년 여름 이 대학교에서 열린 ‘기하급수적 유스 캠프(Exponential Youth Camp, XYO)’에서 실시한 것이다. 6개 팀에서 10대 젊은이와 기업가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미래교육에 대한 답을 모색한 결과를 아래와 같이 6가지를 내 놓았다. 곧, 미래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라 할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말은 영어 Single(단수)과 어원이 같은 singular(나만은, 유일한, 특수한, 둘도 없는)라는 말로 된 명사 singularity는 ‘수학의 특이점’을 말하는 singular point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질적 도약이 생기는 특정 시점’이라는 뜻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 미래’를 상징하는 용어로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역사적 기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즉, 이 Singularity University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갈 인재를 육성하는 특이한 목표를 가지고 구굴(Goggle)과 나사(NASA)가 같이 투자하고 후원하는 교육기관이다. 아래에 인용한 글, 1~6은 그 캠프에서 얻은 결과를 보고한 것이다.
1. 나에 대한 것을 만들어 주세요.
이 대학에서 가장 먼저 분명해진 사실은 밀레니얼 ‘ME 세대’는 교육이 매우 개인화될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반드시 ‘나의 관심사항’을 추구하기 위한 ‘나의 선택’에 대해 ‘나만의 진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처음에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생각될 소도 있지만 이러한 요구는 이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복잡하게 전문화된 세계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개인화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 뭔가를 ‘하게’ 해주세요.
피터 다이어맨디스는 이렇게 말했다. “케냐의 들판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미사이 전사가 25년 전의 레이건 대통령보다 더 나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가지고 있다.” 73%의 미국 10대들이 스마트폰을 가진 지금 암기 문제의 중요성은 훨씬 줄어들었다.
웹에서 47억 페이지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오늘날 학생들이 가진 가장 큰 도전과제는 정보를 찾고 평가하며 합성하는 기술이다.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창의적 문제해결 기술과 팀 협력기술 같은 21세기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프로젝트기반학습(PBL)’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이 프로젝트기반학습은 팀을 구성해서, 복잡한 문제발견능력의 양성에서부터 목표설정, 계획, 실행, 평가의 단계를 훈련시켜서 집단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캠프에 참가한 10대들은 교실에서의 실습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교실에서는 할 수 없는 참여와 ‘동기부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10대들은 나아가, 저들의 학교에서 실행하는 대부분의 시험들은 ‘그저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시험은 다양한 학습스타일을 반영하지 못하며 시험을 위해 기억했던 것은 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DC의 비영리기관 ‘대도시학교연합(yhe Council of the Great City Schools)’이 발표한 조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도시 공립학교의 평균적인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개 112개의 의무 표준시험을 치르게 된다. 또한 전국 66개 대도시 학군을 조사한 결과 3~11학년의 표준시험 평균 시간은 20~25시간으로 나타났다. 8학년의 경우 연간 수업시간의 23%가 표준시험을 치르는 데 쓰이는 것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들 시험 중 많은 불필요한 중복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의 내내 우리의 10대들은 OMR카드가 아닌 실제 세계를 통해 지식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
3. 나를 온라인 학습 과정에 버리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온라인 학습에 대해 질문하며 재미있다는 다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온라인학습은 해답이 아니다.’였다. 10대들은 우리에게 온라인 과정은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에게는 훌륭한 것이지만 초급자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온라인 과정을 완수하기 위한 시간의 부족과 많은 학교들이 당면하고 있는 인터넷 연결성 문제를 부가적으로 언급했다.
10대들은 주로 ‘혼자 힘으로 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온라인 학습이 가진 문제는 콘텐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가르쳐주는 지도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으로 연결된다.
4. 나의 지도교사가 되어주세요.
학생들은 아직 훌륭한 교사를 원했다. 교육자의 역할은 사실을 전달하는 개인에서 정보의 미로를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로 바뀌어가고 있다. 10대들은 이야기할 수 있고 아는 것이 많으며 영감을 줄 수 있는 어른들과 교류하기를 원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사는 답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5. 적절한 기술을 가르쳐 주세요.
10대들은 전통적인 과목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돈 관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원하며, 팀워크, 문제해결, 갈등 해소와 같은 스포츠 스킬의 개발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6. 성장마인드셋(the growth mindset)의 육성.
마지막으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학습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 교육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탠포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 교수는 이를 ‘성장 마인드셋’이라고 불렀다. 그녀에 따르면 마인드셋은 고착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으로 나뉜다.
실수를 대하는 방법과 그 실수를 통해 무엇을 얻느냐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인드 셋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심장마인드셋은 세상 모든 존재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에 불을 붙이는 것은 노력이기 때문에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다. 이들에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를 스스로 비교하는 것이, 지금 현재 누가 더 잘하느냐를 비교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잇다. 이런 마음가짐에서는 지금 저지른 실수는 속 쓰리긴 하지만 앞으로 고쳐나가면 되는 일이다. 당연히 실수를 할수록 더 열심히 노력을 하고, 결과적으로 역경을 극복해낸 사람이 된다. 또한 이들은 몇 번의 실수로 자신을 단정 짓지 않듯이 지금 보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남들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기허급수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한때 사람들은 평생 직업을 가졌지만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은 20가지 정도의 직업을 가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학습할 준ㅂ지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 미래 교육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