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9월 29일의 북구의 하늘은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핀란드가 자랑하는 대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의 유해는 헬싱키의 대성당으로 옮겨져 그가 작곡한 제4교향곡의
3악장과 「투오넬라의 백조」, 「폭풍」등이 연주되는 가운데 장례식은 엄숙히 거행되었고, 그
음악들은 그를 추모하는 핀란드 국민들의 가슴과 시벨리우스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온
핀란드의 숲과 호수와 대평원으로 퍼져갔다.
시벨리우스는 어린 시절 정규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하여 가족들과의
실내악 합주를 통하여 그의 음악적 경험을 넓혀갔다.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였으나 곧 중퇴하여,
헬싱키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마친 그는 빈과 베를린에서의 유학으로 서구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쿨레르보 교향곡과 제1, 2 교향곡들을 작곡하여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1904년에
귓병으로 인하여 헬싱키로부터 멀리 떨어진 에르벤케의 숲 속에 별장을 짓고, 작곡을 하며 반
은둔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시벨리우스는 많은 장르에 걸쳐 작곡하였으나 「베토벤 이후의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라는 찬사
그대로 그의 관심은 관현악곡에 치중해 있었다. 그의 작품의 중심이 되는 7개의 교향곡과 많은
교향시들은 핀란드의 자연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노래하였다. 그를 둘러싼 핀란드의 특이한
환경-길고 추운 겨울과 울창한 침엽수림, 빛나는 호수와 그 위로 떠오르는 태양, 눈으로 덮여
있는 평원과 그 속에 사는 힘차고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 민화와 전설 등-은 시벨리우스 음악의
주요 테마가 되었고, 대륙에서 드뷔시와 사티, 쇤베르크등이 새로운 음악을 실험하고 있을 때에도
북구의 숲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었다.
1911년에 작곡된 교향곡 제4번은 7개 교향곡의 가운데 위치하지만 이 곡의 전후에 배치된 다른
교향곡들과는 성격이 판이하여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곡은 제6.7 교향곡과
교향시 「타피올라」와 더불어 그의 최대 걸작이지만 가장 비대중적으로 초연 당시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북구의 우울함과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특성은 이
곡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관현악법은 극도로 간소화되고 모든 내용은 응축되어 그 자신 내면
세계의 심원한 한 단면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제1악장은 시작부터 어둡고, 고독에 찬 쓸쓸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느릿한 템포로 시종하며,
2악장은 스케르쪼풍이고, 3악장은 그의 내적 경험을 노래하는 명상적인 악장이며, 마지막
4악장은 빠른 템포로 가장 미래파적인 악장인데 느린 현의 화음으로 온통 잿빛인 이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 ‘서상중’의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https://youtu.be/cCrGKQgFzDU?si=1p9_DSJbVXpKn6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