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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법정 변론 2
미가 6:9~16
우리는 지난 주일 저녁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법정에 불러 그들과 변론하는 내용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과 땅과 견고한 지대들을 불러 증인으로 세우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변론합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이스라엘에게 한 것 중에 무엇이 그들을 괴롭게 한 것이 있느냐고 따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에 그들을 강한 팔로 수고하여 건져내왔습니다. 또한 훌륭한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방 선지자 발람을 초대한 모압 왕 발락의 악한 꾀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하여 발람의 입을 막고 저주 대신에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요단 강물이 넘칠 때에 법궤를 멘 제사장이 그 콸콸 흐르는 요단 강물에 발을 딛고 들어갈 때에 요단강물이 흐르지 않고 위로 벽처럼 서게 하시고 그 백성들로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단강 건너 길갈 땅에 이스라엘이 도착하여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사 하나님과 선민 언약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은혜가 소실될 때 하나님께서 권면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며 그 은혜를 되씹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 심령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속의 은혜와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공급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악한 영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신 은혜를 깨닫게 될 것이며 심령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이라는 것라고 하나님은 밝힙니다. 즉 하나님 백성들의 진면목은 성전의 예배 생활에서도 드러나지만 진정한 신앙의 면모는 삶의 실제 현장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마음 곧 정의로움과 진실과 긍휼의 마음을 품고 범사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욕심을 서슴없이 부리고 교만하고 악독하게 살아가면서 성전에 나와서 기름진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모습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1절에서 8절까지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제 9절 이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법정 변론 2부 순서로 그 백성의 죄상들을 또 다시 언급하면서 가혹한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의 법정 변론에서 증언하시는 책망성 발언을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어다”
하나님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읍이란 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성읍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만 대상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요 모든 이스라엘 성읍들과 그 가운데 사는 선민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외쳐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담은 호소의 말씀임을 말해줍니다. 먼저, 그가 외친 말씀은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지혜라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곧 주의 이름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재능과 총명을 갖추었다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은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 시대에 아히도벨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한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은 한 때 다윗의 책사 제걀량과 같은 모사로서 오른편에 서서 모든 전쟁터에서 비범한 승전의 비책을 내놓아 다윗의 승리를 도와서 귀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비범한 지략은 있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이 인간의 일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을 자기 손으로 기꺼이 없애고 자기가 원하는 바 젊은 지도자 압살롬을 왕으로 세워서 자기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야망을 가졌습니다. 결국 그의 야심찬 계획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좌절되고 그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지략과 지식과 지혜가 있다손치더라도 그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떨며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온전한 지혜자가 아닙니다.
한편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지만 경외함이라는 본문 말씀의 히브리어 단어 ‘이르웨’를 ‘경외한다’가 아니라 ‘라아’라는 단어의 미완료 동사로 보고 ‘보게 될 것이라’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영국 성경에서는 “The man of wisdom shall see thy name:”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혹은 지혜의 사람)은 주의 이름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역사하심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일어나는 일이나 세상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인데, 그를 통하여 영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며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모든 이스라엘의 성읍들에 사는 주의 백성들에게 앞으로 행하실 일들이 있는데, 지혜로운 자들은 그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이와 관련된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9절 후반절에 이르기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 그대로 직역을 한다면, 이러합니다.
“너희는 매의 소리를 들으라. 그리고 그것을 누가 분정하였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몽둥이와 매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그 매를 맞으면서도 때리시는 몽둥이와 매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귀머거리처럼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그들에게 매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 매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다툼과 전쟁과 같은 일은 어떤 국제 질서 속에서 우연히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죄 때문에 자기 백성을 때리시는 매 곧 몽둥이와 채찍으로 정해놓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를 맞으면서 매가 던지는 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시련은 우연이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호된 시련이 어찌 의미 없이 주어지겠습니까? 지혜로운 자는 주의 이름을 보는 눈을 갖고 있으며, 자기에게 호되게 내려친 매로부터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주의 백성의 하나님이 분정하신 것이기에,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훗날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 왕국에 쳐들어오고 남 유다에도 쳐들어와서 성읍마다 성벽을 부수며 사람들을 칼로 쳤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말씀이 이러합니다. 이사야 10:5 말씀에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백성이 범죄할 때에 하나님은 미치광이를 들어서 그 백성을 징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진노의 막대기요 몽둥이로서 그 백성들을 징계하시고자 멀리에서 부름받아 달려와 그 일을 행한 것입니다. 어떤 군사적인 역학 관계나 인간적인 동맹 관계로부터 나오는 우연한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이사야 45:7 말씀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그리하여 눈이 열려 주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귀를 열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할진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일들도 주의깊게 보시고, 우리 자신의 일들도 주의 깊게 살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들을 다 내려놓고 정결하고 온전한 그릇으로 빚어져감으로써 우리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으로부터 평안과 복을 받고 재앙과 화를 피하는 은혜를 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10절로부터는 미가 선지자 당시 하나님 백성들의 죄악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연이어 그의 법정에서 고발하십니다. 함께 10절로부터 1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었도다”
주의 백성들에게 있는 첫 번째 죄악으로 하나님은 그들이 시장에서 저울추를 속이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여러번 말씀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그 중 한 구절만 살펴보면 레위기 19:35,36 말씀에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길이나 부피나 무게를 잴 때에 항상 시장의 표준에 일치한 저울이나 용기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탐욕스러운 상인이나 농부들은 적게 주고 많이 받아 이익을 챙기려고 서로 무게가 다른 저울추를 주머니에 갖고 다니기도 하고 무게와 부피를 재는 그릇이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가증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렇게 불의한 방법으로 집에 쌓아둔 재물은 하나님의 눈에는 그 집을 무너지게 하는 가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저울추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히 미워하셨고 그로 하여금 손해보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름에다가 이물질을 섞어서 희석된 기름을 팔거나 고기나 농산물들을 외국산으로 채워놓고 상표와 원산지 표기를 국내산으로 바꿔치기하는 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부자들이 강포를 써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지적했습니다. 아주 고가의 이율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그 자녀들과 그 부모를 종으로 삼아 부려먹는 일을 했던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 백성들은 그 백성들에게 종처럼 대하지 말고 형제처럼 대하라고 율법에서 명하고 있었으나 이들 부자들은 무섭게 압제하고 도망치면 붙잡아와서 심히 때리는 포악한 일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고금리로 사람들을 압박하고 엄청난 빚더미에 집어넣고 깡패들을 동원하여 위협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권력을 쥐고 폭력배들을 동원하는 일도 과거에 있었고, 지금도 그런 일들을 벌이는 조직폭력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결국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의 거짓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백성들이 혀에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을 여기서 지적합니다. 거짓말로 법정에서 위증을 하거나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행위들이 주의 백성들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참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죄악입니다. 십계명에서도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명하셨으며, 주님께서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변론 중에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8:44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서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제 것처럼 하는 사람은 마귀와 매우 친숙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거짓말을 하면 들통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그마한 거짓말조차 하나님 앞에 회개할 거리로 생각하고 한평생 항상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진실하도록 합시다. 약속을 항상 정직하게 지키기를 힘씁시다. 잠언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 한 구절 잠언 17:7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극히 존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짓말을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한평생 진실한 입술로 우리 입술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며 거짓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책망과 화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13절로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로 말미암아 그 백성을 쳐서 병과 황폐함의 화를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배고프고 항상 쪼달리고 있던 것들이 다 어디론가 빼앗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고를 많이 하지만 거두지 못합니다. 씨뿌려도 추수하지 못하고 감람 열매를 밟았으나 올리브 기름을 자기는 바르지 못하고 포도를 밟아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참으로 수고한 대로 거두어야 하는데, 아무리 수고했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앞서 말씀하신 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는 그의 백성들에게 오는 모든 좋은 것을 가로막고 모든 화를 불러오는 가장 무서운 근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욕으로 시장에서 이중 저울추를 사용한 죄 때문이요 강포하여 다른 사람들을 압제한 까닭이요 입술에서 거짓말을 늘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첫째도 정직이요 둘째도 인애와 사랑이요 셋째로 진실한 자들이 되어 이런 화를 면합시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장차 무서운 파멸이 다가올 것을 예고합니다. 16절을 하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오므리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한 왕조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 아들이 아합이요 그 아들이 여호람이요 그리고 그 아들 아하시야 때에 예후 장군의 군사 혁명에 의하여 그 집안이 몰살당한 왕조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서는 제법 긴 기간을 통치한 왕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긴 기간 동안에 그들은 북 이스라엘을 아주 부패하게 만든 패역한 왕조였습니다. 특히 오므리는 자기 아들 아합 왕의 아내 며느리로 저 시돈 왕 엣 바알의 딸 이세벨을 삼았는데,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이제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제단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에다가 이방 신상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큰 악까지 범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세벨은 아주 악한 여인으로서 여호와를 섬기는 주의 종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시도하였으며 바알 선지자들을 양성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바알 숭배자로 만드는 데 열성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아합 왕과 이세발 왕비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다윗 왕조에 큰 해가 닥쳤으니 아달랴가 다윗 왕조의 위기가 닥치자 곧장 본색을 드러내어 다윗의 혈통을 끊어버리려고 모든 왕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오직 한 사람 요아스만 간신히 살아남아 왕통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악독한 오므리와 아합 왕의 규레를 북 이스라엘만 아니라 남 유다까지 따르게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결국 북 이스라엘도 망할 뿐 아니라 남 유다 왕국조차 망하게 하실 것이라고 여기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황폐한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읍이 황폐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조소거리로 삼게 하겠다고 예고합니다. 이는 솔로몬 왕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서 경고한 바와 일치합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성전을 다 지어놓은 솔로몬 왕에게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르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며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열왕기상 9:6~9)
그렇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정성들여 성전을 지었더라도 그곳에서 진정한 신앙의 예배가 드려지지 않고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대로 정의와 인자를 행하지 아니할진대 결국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답게 하고 번성하게 했던 것들을 더 헐어버리시고 그것들을 놀림감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우리는 늘 명심하고 결코 자만하거나 안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백성이 타락하고 부패하면 아무리 그 영광이 크고 높아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다 해도 그 인간의 자랑과 영광을 순식간에 낮추고 수치거리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법정에서 가르쳐주신 모든 교훈을 마음에 새깁시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늘 자주 회상합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언제나 기억하심을 잊지 말고 그의 백성의 자긍심을 지키도록 합시다. 또 하나님께서 많은 재물보다 삶 속에서, 시장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도 진실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겸손하게 살기를 기뻐하심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귀를 가지기 바랍니다. 정직하여 두 가지 저울 추를 가지지 말고 오직 공정합시다. 강포하지 말고 온유하고 친절합시다. 거짓을 멀리합시다. 그리할진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고 끝까지 주의 백성들을 붙들어 주시고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