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7】 10
<3> 법을 청하다
一切諸天及天女가 種種供養稱讚已하고
悉共同時黙然住하야 瞻仰人尊願聞法이로다
일체 모든 천중들과 하늘 여인들
가지가지 공양하며 칭송하고는
같은 자리 같은 때에 묵묵히 머물면서
금강장보살을 우러르며 법문 듣기 원하도다.
▶강설 ; 일체 모든 천상의 대중들과 천녀들이 가지가지 공양거리들을 들고 와서 공양을 올리고, 또한 아름다운 노래로서 찬탄하고 나서 한 자리에 묵묵히 머물면서 금강장보살을 우러르며 법문 듣기 간절히 원하였다.
時解脫月復請言호대 此諸大衆心淸淨하니
第七地中諸行相을 唯願佛子爲宣說하소서
그때에 해탈월보살이 청하여 말하기를,
“이 모든 대중들의 마음이 청정하오니
제7지에서 행하는 모든 행상들을
바라건대 불자시여 말씀하소서.”
▶강설 ; 십지법문은 언제나 해탈월보살이 법을 청하고 금강장보살이 법을 설한다. 제7지 법문도 역시 해탈월보살이 드디어 법을 청하였다.
(2) 제7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 방편지혜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告解脫月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具足第六地行己에 欲入第七遠行地인댄 當修十種方便慧하야 起殊勝道니라
이때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제6지의 수행을 구족하고 나서 제7 원행지(遠行地)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열 가지 방편지혜를 닦아서 수승한 도(道)를 일으켜야 하느니라.”
▶강설 ; 먼저 제7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 방편지혜를 밝혔다. 이 열 가지 방편지혜는 철저히 중도적 관점에서 보살행을 행하는 내용이다. 무엇이든 보살행을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행함이 없는 가운데 부지런히 보살행을 행한다는 내용이다.
何等이 爲十고 所謂雖善修空無相無願三昧나 而慈悲不捨衆生하며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비록 공하고, 모양 없고, 원이 없는 삼매를 잘 닦지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첫째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라는 세 가지 소승적 삼매를 누구보다 철저히 잘 닦았으나 소승 아라한들처럼 세상도 모르고 중생도 모르겠다고 하여 자신만 열반의 즐거움과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마는 것이 아니다. 대자대비로 한 중생도 버리지 못하고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감싸고 어루만져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은 제도를 얻지 못했으나 다른 사람부터 먼저 제도하는 진정한 보살의 삶이다.
雖得諸佛平等法이나 而樂常供養佛하며
“비록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법을 얻었지만 항상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강설 ; 모든 사람과 일체 생명과 두두 물물이 모든 부처님과 본래로 평등하다는 법을 깨달아 알고 있으나 또 항상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를 즐겨한다. 만약 스스로 부처님과 평등하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면 또 다른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릴 까닭이 없으나 부처님에 대한 바른 견해[正見]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부처님과 평등한 줄을 알면서 또한 부처님께 즐겁게 공양 올리는 것이 진정한 대승보살이다.
雖入觀空智門이나 而勤集福德하며
“비록 공함을 관찰하는 지혜의 문에 들었지만 복덕을 부지런히 모으느니라.”
▶강설 ; 일체법이 공한 줄을 알았다면 소승 아라한들처럼 복도 짓지 않고 덕도 쌓지 않고 중생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법불교를 아는 진정한 보살은 환영과 같은 공양구를 산처럼 나열하여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여래에게 부지런히 공양을 올리고 복덕을 짓는다.
雖遠離三界나 而莊嚴三界하며
“비록 삼계를 멀리 떠났지만 그래도 삼계를 장엄하느니라.”
▶강설 ; 소승 아라한들은 일찍이 열반을 증득하고 해탈을 얻어 삼계를 초월하였다 하여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아름답게 장엄할 까닭이 없으나 보살불교를 가장 이상적인 불교라고 꿈꾸는 진정한 불자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정직하고 향기롭고 선량하도록 열심히 교화하여 장엄한다. 이것이 바른 불교가 해야 할 일이다.
雖畢竟寂滅諸煩惱焰이나 而能爲一切衆生하야 起滅貪瞋癡煩惱焰하며
“비록 모든 번뇌의 불꽃을 끝까지 소멸하였지만 일체중생을 위하여 소멸한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번뇌의 불꽃을 일으키느니라.”
▶강설 ; 제7 원행지에 머문 보살은 탐·진·치 삼독과 8만 4천 번뇌를 이미 떠났으나 탐·진·치 삼독과 8만 4천 번뇌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우정 소멸해버렸던 탐·진·치 삼독과 8만 4천 번뇌의 불꽃을 다시 일으킨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중생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중생제도도 역시 욕심이며 번뇌가 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러한 분들이고 현실에서는 대만의 증엄(證嚴)스님이 그런 분이다.
雖知諸法이 如幻如夢하고 如影如響하고 如焰如化하고 如水中月하고 如鏡中像하야 自性無二나 而隨心作業이 無量差別하며
“비록 모든 법이 환영과 같고, 꿈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아지랑이 같고, 변화와 같고, 물 가운데 달과 같고, 거울 속에 영상과 같아서 성품이 둘이 없는 줄 알지만 마음을 따라 업을 짓는 것이 한량없이 차별하느니라.”
▶강설 ; 제7 원행지에 머문 보살은 일체법이 환영과 같고, 꿈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허망한 줄을 알지만 그 허망한 세상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제도하려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따라 한량없는 각양각색의 업을 짓는다. 또한 비록 꿈속의 불사로서 중생제도이지만 그 꿈속 불사를 크게 짓는다. 환영과 같은 중생인줄 깊이 깨달아 알고 있지만 그 환영과 같은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 이것이 진정한 보살이며 참다운 불교다.
雖知一切國土가 猶如虛空이나 而能以淸淨妙行으로 莊嚴佛土하며
“비록 일체 국토가 마치 허공과 같은 줄을 알지만 능히 청정하고 묘한 행으로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느니라.”
▶강설 ; 진정한 보살은 성품이 텅 비어 공적한 세계를 진실정직하고 선량하고 아름답게 만들려고 청정하고 묘한 행으로 세상을 장엄한다. 예컨대 비록 큰 연못이 흙탕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하나 한줄기 가느다란 맑은 샘물이 되어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흘려보낸다. 텅 빈 연못이든 흙탕물의 연못이든 보살불교는 진선미의 맑은 물이 흘러넘치게 한다. 이것이 보살이 할 일이다.
雖知諸佛法身이 本性無身이나 而以相好로 莊嚴其身하며
“비록 부처님의 법신은 본 성품이 몸이 없는 줄 알지만 상(相)과 호(好)로 그 몸을 장엄하느니라.”
▶강설 ; 영명연수선사가 “감무신이구상(鑑無身而具相)이라”하였다. 오온이 없고, 몸이 없고,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이 없고, 색성향미촉법의 육진이 없는 줄을 환하게 알지만 32상과 80종호를 갖춘다. 또한 32상과 80종호를 갖추면서 오온이 없고, 몸이 없고,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이 없고, 색성향미촉법의 육진이 없는 줄을 환하게 안다.
예컨대 관세음보살은 오온과 육근이 없는 줄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세상에서 가장 값진 금은보석을 몸에 두르고 화장마저 짙게 하여 가장 아름다운 미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그것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변(兩邊)을 다 포용하는 중도적 삶이다. 제7 원행지의 보살은 기와 같은 보살이다.
雖知諸佛音聲이 性空寂滅하야 不可言說이나 而能隨一切衆生하야 出種種差別淸淨音聲하며
“비록 모든 부처님의 음성은 성품이 공하고 적멸하여 말할 수 없는 줄을 알지만 능히 일체중생을 따라서 여러 가지 차별하고 청정한 음성을 내느니라.”
▶강설 ; 세상에서 소리같이 그 성품이 텅 비어 공한 것이 없다. 그렇게 공한 줄을 알지만 일체중생을 따라 여러 가지 차별하고 청정한 음성을 낸다.
雖隨諸佛하야 了知三世가 唯是一念이나 而隨衆生의 意解分別하야 以種種相과種種時와 種種劫數로 而修諸行이니라
“비록 모든 부처님을 따라 삼세가 오직 한 생각인 줄을 알지만 중생들의 뜻으로 이해하고 분별함을 따라서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시절과 여러 가지 겁으로써 모든 행을 닦느니라.”
▶강설 ;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하는 시간성도 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생각의 조작이다.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하는 것은 중생들의 뜻으로 이해하고 분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