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향기로 쓰는 일기
-밥 나누는 사람의 향기-
우리는 살면서 많은 스승을 만난다. 교실에서 학생으로 공부를 배운 선생님도 스승이고, 길 가다가 내게 가르침 준 선생님도 스승이지만, 함께 근무하면서 인격으로 가르침 받은 분도 스승이다.
내게는 함께 근무하면서 인격을 배운 스승이 계신다. 1996년도에 경대사대부설초 교사로 들어갔는데, 몇 년 뒤 새 교장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오시기 전부터 새 교장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먼저 날아다녔다. 동부교육청 교육장을 하신 분으로 강직한 성격, 풍부한 학식, 청렴한 인격에 대한 입소문으로 새 상관을 모실 우리 교사들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신 첫날 눈빛에서 파란빛이 났다. 총명한 빛이 레이저처럼 우리를 꿰뚫어 보시는 듯했다. ‘눈빛부터 호랑이 눈빛이네. 다르구나!’
과연 달랐다. 연구관의 자세로 책상에 앉아 학문만 팔 줄 알았던 교육장을 하시던 분이, 화장실마다 다니며 고장 난 밀대를 고치고 계셨다.
‘아, 저게 호랑이 기운 받은 힘이지!’
새로 오신 상사를 멀리할 수 없는 마음인데, 우리 교실에 오셔서 어설픈 내 수업을 보고 나서도 잘했다는 칭찬을 흘리셨다. 확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날마다 자라났다.
그때 우리 교사 중 교대 대학원에 다니다 졸업을 맞은 교사가 이선. 이순, 박선이었는데 대학원 졸업식 날 졸업식장에 축하해주러 오셨다. 자식들의 졸업을 보러온 친정아버지 품격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교육대학에 강의를 맡아 출강하려 할 때도 열린 마음으로 허락해 주셨다. ‘본인이 강의를 많이 해보신 분이라, 대학에서 강의하며 교대생들과 연구한 것이 다시 현장에서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돌아온다는 순환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구나!’
우리는 그런 교장 선생님을 모시면서 날마다 배웠고 순간마다 감동했다.
지금은 2024년. 교장선생님은 88세. 우리 열 명도 모두 70세를 넘었다.
3월! 주택 재개발 문제 때문에 교장선생님 댁 뒤쪽에 있는 조합원 사무실을 찾아 김갑규 교장선생님 안부를 물었다.
“조합장님, 혹시 이 앞쪽 집에 김갑규 교장선생님이 사셨는데 아직도 거기 사시는가요?”
“그럼요. 교장선생님이 지금껏, 저를 제일 많이 밀어주십니다.”
“조합장님은 언제부터 교장선생님을 알고 계셨어요?”
“사모님이 제사 지낼 때마다 제삿밥을 갖다 줘서 제삿밥 얻어먹은 연 수만 해도 25년이나 됩니다.”
하면서 제삿밥 이야기를 꺼내더니 교장선생님 자제분 칭찬까지 늘어놓았다.
“큰아들은 하버드 대학교수요. 둘째 아들은 로스쿨 교수요. 셋째 아들은…….”
자제분들 칭찬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지금 댁에 계실까요?”
“그럼요, 저는 날마다 봅니다.”
그 말만 믿고 시장에 가서 딸기 몇 박스를 사서 들고 와서 조합장님께 김갑규 교장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전화했더니 사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올 일이 있어서 지금은 서울 병원에 와 계신단다. 중한 병이 아니었으면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보다 조합장님 말만 믿고 비싼 딸기를 두 박스나 사왔는데…. 조합에 드릴 딸기 한 박스를 사무실에 내어놓자 조합장님 왈
“교장선생님도 고령에 딸기 밭농사를 할 걸요? 누구한테 맡겨 짓는다고 하던데, 가끔 딸기를 가져오시던데요?”
“예에?”
하필이면 시장에서 제일 싱싱해 보이는 과일을 찾다가 최상등품이라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것을 사 왔는데 직접 농사짓는 과일이라니…. 그래도 오늘 안 계셔서 이래저래 나눠 먹을 기회로 잡으며 돌아왔다.
다음날, 부설초등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여교사들 모임에 가서 김갑규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더니 모두 그리워했다.
“우리 한 번 찾아갑시다. 나는 방학 때마다 교장, 교감, 교무 세 사람이 점심을 먹는데 교장 선생님이 밥값은 돌아가며 내어야 한다고 원칙을 정해서, 교무 하면서 밥 한 번 특별히 못 샀어요.”
이렇게 양 교장이 말을 꺼내자 모두 ‘우리가 한 번 모십시다.’ 하며 날짜까지 대충 잡았다. 헤어져 돌아오는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 앉아 내 마음도 흔들렸다.
“그래, 사람은 향기를 품고 살아야지. 이름 석 자만 말해도 풀풀 날아와 마음 가득 차오르는 사람의 향기!”
그 향기 속에 청렴, 현명, 솔선수범으로 우리에게 가르침 주셨던 그분의 얼굴이 크게 떠올라 슬며시 웃으며 나를 깨우쳤다.
‘박 선생도 교장 할 때 날마다 혼자서 밥 사고, 시골집에 사람들 불러 1,300명에게 밥 해먹이며 살았다며 자부하제? 그런 건 별거 아니야. 이제 우리에게 좋은 일 할 시간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잖아. 그러니 남아 있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밥 한 그릇이라도 먼저 사려고 나서는 게 좋아!’(1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