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시절 우리 엄마는
햐얀앞치마를 입고 쪽찐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싸릿문을 드나들던 아름답고 고운 모습이였다
자그마한키에 예쁜모습의 우리엄마는
부지런하고 억척같이 일밖에 모르는
생활역이 강했던 엄마였다
아버지는 느리고 움직이는걸 싫어하고
일하는데도 꿈떠서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썪였다
그런 아버지가 맘에 안들어 아버지와 무지하게
싸우기를 밥먹듯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정말 싫었다
잠시도 쉴텀을 주지않고 일을 시켰다
비오는날은 디딜방아를 찧고 아니면 익지도 않는 벼를
베와서 훒게 했었다
그런 억척같은 엄마가 너무 싫어서
엄마의 정을 모르고 살았던 유년시절
공부할시간을 도무지 주지 않아서
아침일찍 등교길에 늘 공책을 들고
가야 했었다
그것도 일찍 가지 못했다
아침에 소를 풀밭에 데리고 나가 풀을 먹이고 학교가야 해서
등교길을 늘 서둘려야 했고 '
한번도 도시락을 싸주지도 않았다
아니 싸 줄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늘 알하고 있었어니까
내가 내 손으로 밥해서 도시락싸고 학교가고 했었다
학창시절은 더 심했다
한번도 교복칼라에 풀을 먹여 다러미로 달여주지 않았다
옛날에는 전기 다러미가 없어 제레식 다러미에
숫불을 넣고 다려야 했다
다러미 밑을 잘 닦지 않아서 씨거먼 숫찌꺼기가 하얀칼라에
묻어 칼라를 다시 빨아야 했고
그날은 칼라도 없이 학교가 선배들인데 혼났던 일
엄마는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일밖에 모르는 억척 아줌마 였다
지금은 세수 102세다
요양원이 집보다 더 좋다고 하는 엄마
뭐 이런세상이 다 있나
밥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청소 빨래도 다 해주고 '
아무것도 안하고 살수있는곳이 천국이라고 한다
평생 일만 하시고 살았던 자신이 이렇게편안한 세상을 살줄 몰랐단다
차마 요양원을 보내지못해서 동생이 아내와 별거생활을 20년이 넘게
살았던 것이 후회된다고 한다
이제 요양원에 입소한지 겨우 8개월째다
동생은 올케와 합과를 했고
엄마는 편안한 곳에 잘 계신다
우리 엄마는 딸은 뒷전이 였고 '
오직 아들만이 자식이 였다
보리밥에 쌀 한줌을 밖아서 그것만 동생을 먹이고 '
나는 늘 깡보라밥에 감자를 억겐 밥이 였다
어쩌다 그 쌀밥을 조금 퍼먹을 때는 정말 혼이 났었다
고기반찬 좋은 것을 다 동생것이 였고
내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번도 교복을 빨라준적이 없고
칼라 한번풀해서 다려준적도 없었다
아파도 물한그릇 떠다 준적이 없었다
내유년시절을 늘 사랑이 고팠고
외할머니보고 우리 엄마 계모냐고 몇번이고 물으본적이 생각난다
지금은 나약하고 힘없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완전 하는님인데 의존해서 지독한 기독교 신자가 되 있다
하느님을 무조건 신봉에서 아주 행복해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병도 없고 걱정도 없다
얼굴은 102세 할머니 같이 않게 곱고 예쁘시다
다만 귀가 안들려서 엄마랑 통화하지는 못한다
이제는그냥 늙으버린 아무 힘도 없는 노인네가 되 버린 울엄마
그래도 울엄마 아직도 내 곁에 살아 있다는게 행복이다
이 나이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나는 행운아다
나보다 더 오래 살까봐 걱정이긴 하지만
엄마 앞에 먼저가는 불효는 저질러지 말아야하는데
그걸 맘대로 할수 있을찌 나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가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