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하나님의 혈통으로 부활 중생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담 해와의 후손이 오늘날 인류의 표준이 될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인류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 완성해야 할 책임은 누구의 것이냐? 다시 오시는 메시아의 책임입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메시아가 참부모의 자리에서 이들을 다시 낳아 줘 가지고 중생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65-203,1972.11.19)
메시아가 출발한 것은 무엇이냐?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뒤집어졌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 삼고 기반을 갖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 가정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가정보다도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더 훌륭하게 모실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탕감해 가지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메시아는 뭐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 삼은 아버지 자리에서 참사랑의 혈통을 먼저 연결하고, 참사랑의 생명으로 비로소 출발하는 주인 양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메시아요 참부모다 이겁니다.
그 주인 양반을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보다 몇 백배, 몇 천배 이상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혈통적 아기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니까 중생이니 부활이니 하는 것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13-226,1999.12.19)
메시아는 모든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을 이 땅 위에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오십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거짓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참부모가 그들을 중생시키기 위해 와야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왔을 때, 예수는 그에게 “너는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생론(重生論)이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중생하려면 인간은 참부모를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짓 부모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 부모와는 다른 부모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주는 후(後)아담으로 오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후아담은 타락 한 아담이 아닙니다. 원래 완성하게 되어 있던 아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끝날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통하여 타락한 아담을 복귀하십니다. (52-125,1971.12.26)
거짓 자식이 됐으니 참부모의 복중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중생이라는 말,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뱃속에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내가 희생해 가지고 본연의 생명의 씨인 하나님의 뼛속에 있는 정자와 하나님의 어머니 성품에 있는 난자의 씨를 이어받아 하나님 속에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중생이라는 논리가 그렇습니다. 그런 것이 사실인가 검증하고 판단해 나온 사람이 여기 서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393-285,2002.10.6)
인간이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잘된 부모를 중심 삼고 사랑의 기관이 하나될 수 있는 결혼 기반을 통해 나와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나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보내는데, 최후의 재림시대에는 참부모를 보내서 이 모든 틀어진, 병난 곳을 고쳐서 낫게 하여 천국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입니다.
중생이 뭐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잘못 태어났으니 어머니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대화한 얘기를 성경을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347-238,2001.7.5)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얘기한 것이 이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하니까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참부모 한 사람이 와서 세계 사람을 낳을 수 없으므로 접붙이는 것입니다. 하룻저녁에 접붙여 가지고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 수 있습니다.
4천만도 하루, 일주일 이내에 다 할 수 있습니다. 인류도 40일 이내에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가 퍼지는 날에는 순식간에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8-38,2001.7.6)
결국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거짓 혈통이 생겼으므로 참부모가 와서 이것을 다시 한 번 탕감복귀, 이것을 부정해서 뒤집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은 탕감할 때까지 사망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죽을 자리에까지 가더라도, 죽고 나서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죽는 것을 슬퍼하고 도망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영원히 부활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347-178,2001.7.4)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언제 중생했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사랑을 중심 삼은 새 생명과 새 세계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이 쉬운 게 아닙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개발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탄세계가 갈라져 나갔습니다.
사탄이 복중에서부터 시작했지요? 사탄 아버지로부터 복중에서 타락했으니 이를 복귀하기 위해서도 들어가 가지고 새 아담으로부터 나와야 됩니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게 뱃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구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누구보다도. 그렇게 하려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그 말은 십자가를 지면 탕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219-234,1991.9.8)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회복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이 태어났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의 원리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생. 도대체 왜 다시 나야 되느냐?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됩니다.
들어가는 데는 그냥 막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의 공증(公證) 아래 들어갔다 나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중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7-99,1985.12.24)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 참부모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참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혈통적으로 중생하는데도 참부모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137-114~115,198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