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스법’ 명암… 韓, 대만보다 세금 33% 더 낸다
[韓-대만 ‘칩스법’ 명암]
‘반도체 세액공제法’ 혜택 격차
R&D-설비 각 5000억원씩 투자시… 한국, 최저한세 적용해 세금 3400억
대만, 각종 공제에 최종세금 2550 … 혜택 기한도 대만 2029년-韓은 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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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차세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첨단 공정 투자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같은 기업이 대만에 투자했을 때 한국에서보다 더 큰 세제 혜택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를 앞세워 세계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국 투자도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가장 닮아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달 초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대만형 칩스법)을 시행한 대만이 투자 유치 경쟁에서 한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동아일보는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와 반도체 업체 A사의 가상 투자 사례를 통해 한국과 대만의 투자 환경을 비교 분석했다. A사의 올해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2조 원, 신제품 연구개발(R&D)과 첨단 반도체 설비 투자액을 각 5000억 원씩으로 가정했다. 이 경우 한국에선 대만보다 한 해 850억 원(33.3%)의 세금을 더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A사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법인세율 24%가 적용돼 4800억 원이 부과된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해 우선 R&D 투자액의 40%인 2000억 원을 돌려받는다. 올해 3월 통과된 ‘K칩스법’에 따라 시설 투자액 15%와 올해 증가분(2000억 원 가정)의 10%를 더해 950억 원이 추가 공제된다. 결과적으로 4800억 원 중 2950억 원을 제외하면 1850억 원만 남는다. 하지만 한국은 마지막 허들인 ‘최저한세’가 17%다. 법인세는 결국 3400억 원이 부과된다.
똑같은 기업이 대만에서라면 달라진다. 우선 법인세율이 20%(4000억 원)다. ‘대만형 칩스법’에 따라 R&D 투자 세액공제는 1250억 원(25%)인데 상한선인 1200억 원을 돌려준다. 여기에 설비 투자 세액공제 5%(250억 원)가 추가 반영돼 최종 세금은 2550억 원이다. 대만의 최저 유효세율은 12%(2400억 원)로 한국보다 5%포인트 낮다.
대만은 특히 2029년까지 같은 수준의 혜택을 주는 반면 K칩스법의 주요 혜택은 내년 말 종료된다. 장기 투자일 경우 양국 간 혜택 차는 더 벌어진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한국이 반도체법을 통해 국내 투자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글로벌 국가들에 비해 높은 최저한세가 결국 발목을 잡아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韓, ‘최저한세 17%’에 발목… 공제율 높여도 세금 크게 안줄어
韓, 대만보다 세금 더 낸다
대만, ‘반도체는 곧 안보’ 인식 확실… 대기업 특혜 비판에도 공제율 늘려
한국, 세액공제 기한 최장 1년 그쳐… ‘K칩스법 보완’ 주장에도 국회 신중
A사의 가상 투자 사례는 한국과 대만 양국의 기업 투자 환경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질적으로 보여준다. 투자 결정에는 고객, 생태계, 인프라 등 고려 요소가 다양하지만 세액공제나 보조금 같은 현금성 혜택이 가장 달콤한 유인책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공급망 지도에서 점차 소외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 ‘반도체=안보’라는 인식이 분명한 대만
이달 시행된 대만형 칩스법은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15%에서 25%로 높이고, 첨단 공정용 설비 투자의 5%를 새롭게 공제해주는 게 핵심이다. R&D 세액공제율은 대만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액공제 상한은 법인세의 50%다.
세액공제율만 따지면 한국이 불리한 건 아니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반도체는 R&D 세액공제율이 40%로 대만은 물론 미국(20%)보다도 높다. 또 올 3월 통과된 K칩스법을 통해 첨단 시설 등에 대한 대기업 투자 세액공제율도 15%로 상향됐다. 투자 용도에 따라 세액공제 기준이 조금씩 다르고, 법인세 이월공제 등도 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법인세율, 최저한세 등 대기업에 적용되는 세금의 ‘기본 체급’ 자체가 높다. 한국의 최저한세(17%)는 대만 법인세율(20%)보다 겨우 3%포인트 낮다. 투자를 많이 해도 세액공제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
대만형 칩스법 자격 요건은 투자액(60억 대만달러·약 2500억 원 이상),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6% 이상) 등이다. 대만에서도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반도체는 곧 안보’라는 인식하에 신속히 법안이 통과됐다고 한다. 실제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대만 상장사 1134곳 중 반도체 기업 7곳과 전자업종 1곳으로 모두 대기업이다. 지난해 R&D 투자에 매출의 7.1%인 1608억 대만달러(약 6조6908억 원)를 쓴 TSMC가 가장 큰 수혜 대상이다. TSMC는 올 1월 반도체법이 통과된 직후 “R&D 비용을 20% 늘리겠다”고 화답했다. 대만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네덜란드 ASML과 미국 마이크론 등 해외 기업들도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칩스법 보완’ 목소리에도 국회는 신중모드
대만형 칩스법은 이달부터 2029년 말까지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중국도 2020년 반도체 육성 정책을 내놓을 당시 10년 동안 기업 소득세를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반면 K칩스법은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 투자 세액공제는 내년까지, 임시투자 세액공제는 올해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투자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도 올해뿐이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국가전략기술 관련 세액공제 추청치’에 따르면 K칩스법에 따른 세액공제 규모는 내년 3조3000억 원에서 2025년 1조 원으로 대폭 꺾인다.
양 의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6년 연장해 2030년까지 지속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양 의원은 “반도체는 5∼10년 장기적인 시야를 갖고 육성해야 한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내 기업들의 투자 행보도 2024년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꺾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그러나 K칩스법 추가 보완이나 최저한세 하향 조정 등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소속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27일 통화에서 “기업 요구에 대해 근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위원회에서 논의되거나 현재 준비하고 있는 관련 법안은 없다”고 말했다. 최저한세율 조정에 대해 다른 여당 관계자는 “하반기 세수 부족분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도 “특정 업체에 대한 최저한세율 조정은 전체적인 세제 기틀을 흔들 수 있다. 한 산업의 육성이 다른 산업의 차별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