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먹는 관계
난 빵을 좋아한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그림일기에 “나는 커서 빵집 딸과 결혼하고 말 테야”라는 문장을 적었을까. 단, “빵을 굽는 제방사가 될 테요”라고 적지 않은 걸 보면 누군가 만들어주는 빵을 그저 편하게 먹고만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난 빵을 좋아한다. 빵집에서 약속을 잡을 때도 잦다. 오늘도 업무차 만난 지인과 빵을 몇 조각 나눠 먹었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빵을 먹는 행위는 해석하기에 따라 그리 가볍지 않은 의미가 있다.
회사를 뜻하는 단어 컴퍼니compamy는 com함께과 pany라틴어로 빵을 의미가 결합한 꼴이다. 이를 ‘함께 빵 팔아서 돈 번 기업’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
어려운 시기일수록 작은 빵을 나눠 먹는 돈독한 관계, 로 풀이해야 제대로 된 해석이다. 음식을 권하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일상의 고단함과 온기를 공유하는 사이 말이다. 어떤 면에선 식구食口 같은 단어와도 맥을 같이한다.
언젠가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방송에 출연해 말했다. 그는 “한 끼를 해치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먹는 음식은 식사가 아니라 사료에 가깝습니다”라며 식사와 사료의 개념 차이를 설명했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그 말을 듣는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식사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직장 동료나 가족의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할 때 입안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기 바쁘다면 평소 드나드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자리가 없어 모르는 사람과 우연히 합석한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하고 있다면?
그건 서로의 관계가 생각보다 끈끈하지 않음을 방증傍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기주, 『언어의 온도』, 말글터,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