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지붕' '부산 길의 역사'로 불리는 산복도로. 이 중 산복도로의 원형을 잘 간직한 중·동구 일대 '망양로(望洋路)'가 올해로 개통한 지 50주년이다.
반세기 세월을 길에 오롯이 아로새긴 산복도로는 그 세월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산복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아 발굴된 사진과 이야기는 산복도로의 '옛것'과 '날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동구 '초량 이바구길' 등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탄생한 길들은 산복도로 역사를 다음 반세기로 잇는다.
그때를 아십니까
산 깎아 만든 판잣집 동네
아침마다 '화장실 쟁탈전'
상전벽해
공업화 붐 타고 변화 물결
새길 열리고 사람도 몰려
미래로 이어지는 길
민관 협력 '르네상스 사업'
도시 재생 모범사례 '우뚝'
■산복도로의 추억부산진구와 동·중·서·사하구의 산 중턱에 난 소로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산복도로. 그 길의 맏형격인 망양로(동구 초량동~중구 대청동)는 1964년 10월 20일 부산시 도시계획사업의 하나로 태어났다.
망양로 일대 마을은 한국전쟁 후 피란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촌락에서 비롯됐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복도로 양쪽엔 숱한 판잣집, 함석지붕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산복도로는 1970년대 초반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되지 않아 18인승 소형 버스도 겨우 오를 수 있었을 만큼 도심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산동네였다.
현재 메리놀병원이 있는 중구 영주동 앞 도로는 1973년부터 포장이 시작됐다. 포장 전에는 동성여객 86번 시내버스가 산복도로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산비탈이 무너지고 축대가 내려앉는 경우가 많아 버스는 운행을 멈춰야 했다. 주민들은 가파르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걸어서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1958년부터 영주동에 살고 있는 최화순(80·여) 씨는 "버스가 처음 산복도로에 다닐 때 주민들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며 "지금처럼 버스와 차가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피란민과 저소득층이 많이 살았던 산복도로에선 공동화장실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풍경이지만 매일 아침이면 공동화장실마다 수십 명이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 집에 화장실을 갖출 경제적 여유가 없고 한 주택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았던 그 시절 부족한 화장실 때문에 요강을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산복도로를 찾은 쓰레기 수거차에 쓰레기를 버릴 때도 긴 줄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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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수정동 수정산 중턱에 난 산복도로 일대 주택가의 1969년 모습(왼쪽 사진)과 현재 모습. 정종회 기자 jjh@·동구청 제공 |
■산복도로의 상전벽해산복도로의 변천사는 부산지역 공업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0년대 국토를 달군 공업화가 부산에도 불어 닥치면서 고지대의 산복도로 일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자리를 찾아 부산에 온 사람들은 산복도로 주변 집에서 잠을 자고 저지대 공장과 직장으로 향했다. 그 세월 동안 화장터, 활터, 저수지 등 무수한 옛것들이 아스라이 사라졌다.
동구 초량6동 일대에 있었던 일본인 방공호와 한량들이 놀다가던 활터도 지금은 노년층의 기억에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 시체를 버렸던 수정산, 구봉산 일대의 공동묘지는 레고블록 같은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들어서 있다. 동구 좌천1동 금성고 부근 가내수공업 집단촌은 상가로 바뀌었다. 산복도로의 관문이자 가장 번화했던 동구 초량6거리는 비만 오면 물난리가 다반사였으나 1977년 복개공사 후 말끔해졌다. 1950~60년대에 동구 범내골은 울창한 소나무숲과 계곡으로 물이 넘쳐 곳곳이 천연 빨래터였다.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에는 일본인들의 군마를 기르던 마구간이 있었다.
김천기(77·동구 수정5동) 씨는 "사람들이 산복도로 일대에 갑자기 몰리면서 뒤에 이사 온 사람들은 수정산 위쪽으로 올라갔는데, 화장실이 없어 마을 전체가 똥구덩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전부 이 산에 와 버리니 '화장막'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중구 동광동5가 중부경찰서 뒤쪽과 영주동 일대 산복도로변에는 어업과 농업을 동시에 생업으로 하는 집들이 많았다. 지금은 뭍인 중구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일대는 1910년대 후반까지 바다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는 해무가 자주 끼어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영주고가도로로 탈바꿈했다. 영주동 산복도로는 민둥산 부근이라 비가 조금만 와도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산복도로, 길은 이어진다지난 50년간 동·중구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길의 역할을 했던 산복도로는 이제 원도심의 도약을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산복도로는 단순한 길이 아닌 △부산관광의 핵심 문화콘텐츠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 △지역경제 활성화의 첨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3월 개통한 초량동 이바구길은 첫해에 10만 2천여 명이 방문해 원도심 관광에 나선 관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이 밖에도 '금수현의 음악살롱' '유치환의 우체통' '김민부전망대' 등은 산복도로 거주민들의 삶의 애환과 옛 흔적을 녹여 관광객들에게 부산의 매력을 물씬 전달하고 있다.
변화와 개발의 바람 속에서도 가파른 계단과 주택 옥상에 설치한 주차장 등 산복도로의 고유 문화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산복도로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도시 재생사업의 모범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부산시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지난 9월 세계대도시연합이 주최한 '메트로폴리스 어워드 2014'에서 단순 마을 정비에서 벗어나 낙후된 마을의 주민공동체를 복원한 점을 인정받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구산리협동조합 김한근 사무국장은 "산복도로의 생명을 이은 것은 이웃간의 높은 공동체의식 덕분이며 이제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안이 시급한 때"라며 "산복도로가 진정한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주민들에게 산복도로가 일터이자 쉼터, 삶터가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대식·김한수 기자 p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