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47, 파출소 탈출
70년대 초반, 그때는 빨간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어디선가 경찰관이 호르라기를 ‘삐리릭’ 불어서 사람을 불러 세워 도로 중간쯤에 새끼줄을 쳐놓고 거기에 가두어 두고는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들에게 우세를 시켰다가 위반자가 좀 모여졌다 싶으면 모두 파출소로 줄줄이 데리고 들어가 조서를 작성하여 순회하는 닭장차에 태워 즉결재판에 넘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가 거기에 걸려든 것이다. 서대문 어디쯤인가 싶다. 집 생각도 간절하고 용산 '수원정'의 대기처(천국을 가기위해 이땅에 임시로 머물며 대기하는 곳, 집을 나온 세칭 동방교 신도들이 집단으로 머무는 곳을 말하는 은어-隱語) 생활에 차츰 회의를 느끼고 있던 시절이라 도망갈 궁리를 하던차에 연단선님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 세군데 순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정신상태가 희미하니 아마 교통신호가 안중에 없었던 모양이고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던 모양이다.
호각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경찰관이 나를 손짓으로 불러 도로 한복판의 새끼줄 쳐놓은 임시 집합소로 들어가라고 한다. 벌써 몇사람이 붙들려 그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몇사람과 같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들에게 우세당하고 있다가 파출소로 연행되어 조서작성을 대기중이었다.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인적사항이 까발려지면 부산의 집으로 연락이 갈것같은 생각과 하루 이틀 유치장 구류를 살아야 할 걱정과 용산 '수원정' 대기처로 돌아가면 엄청난 봉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신이 아득했다. 요즈음 정신상태가 희미해져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것이 반성이 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즈음 좁은길(세칭 동방교를 내부에서 일컫는 은어-隱語)을 떠날 결심을 굳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빠져 나가야만 한다. 만일 즉결에 회부되어 며칠 구류를 살게되면 문제가 참으로 심각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지금 병역기피중에 있지 않은가, 신검통지가 나와 있는데도 묵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조서를 작성하는 중에 모든 것이 탄로되고 주소지와 현재 거주지등이 밝혀지고 또 내가 세칭 동방교의 순회자요 전도사라는것이 밝혀지게 된다면 어쩌나 하고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문제는 커지는 것이다. 이일을 어찌할꼬, 마음이 다급해지고 있었다.
하늘의 도움인가, 조서작성을 위해 갇혀있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불러내고 있었는데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중에 입구를 보니 파출소 임시구류시설의 철창문이 열려 있는것이 보였다.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 온갖 상상으로 정신이 멍해져서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그냥 열려진 철창문을 통과해 썩 나가서 조서받고 있는 경찰관의 책상앞을 지나 걸어 나갔는데 아무도 불러세우지 않는것이 아닌가,
가슴은 올망졸망 방망이질을 치는데 파출소 문을 나서자마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어서 골목길로 숨어들어서 도망쳐 버렸다. 우째 이런일이... 틀림없이 할아버지(?)께서 경찰관들의 눈을 잠시 감기셨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용산의 '수원정'으로 돌아가 순회결과를 내 사수 갈렙목사에게 보고하고 일과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그일을 보고하거나 입밖에 내지 않았다. 상급자들이 알게 된다면 나만 바보되는 것은 물론이요 정신상태가 희미하다고 빳다 수십대가 내려 쳐 질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당시 믿음이 솟아나서(특출하다는 동방교식 표현) 회개한답시고 그 사실을 곧이 곧대로 보고하여 위에서 알게 되고 ‘그때 내가 경찰관의 눈을 감기고 너를 파출소에서 내 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 한 줄 아느냐’는 지시말씀이 내려 왔더라면 나는 아마도 성자 하나님(?)인 아브넬 할아버지(2대 교주 노영구)의 전지전능함과 신통력에 놀라 자빠졌으리라.
그리고 물불을 가리지않는 충성심으로 세칭 동방교의 기둥같은 인재가 되었으리라. 교주 자신이 그런말을 했건 안했건, 중간에 누군가가 그런말을 덧붙여 조작을 했건 안했건, 만일 나에게 그런말이 전해졌더라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을만큼 상황은 짜맞춘듯이 그렇게 연출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짜여진 각본의 소설같은 하찮은 일에도 하늘에서 자기에게 내린 특별한 은혜 혹은 이적기사인양 목 메이게 감읍하여 일생을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에 영혼이 붙들려 매인것도 모르는 채 아편같은 세뇌에 미혹되고 소집단의 영웅심리에 함몰되어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어리석기 짝이없는 군상들도 한 둘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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