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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교실 스크랩 조선 제24대왕 헌종 (憲宗 1827∼1849)
심상진 (호) 송정 추천 0 조회 3 14.02.17 18: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선 제24대왕 헌종 (憲宗 1827∼1849(순조 27∼헌종 15))


 

조선 제24대왕(1834∼1849). 자는 문응(文應),호는 원헌(元軒). 이름은 환(奐)이다. 순조의 손자이며 익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며, 비는 김조근(金祖根)의 딸 효현왕후(孝顯王后)이다. 1830년(순조 30) 왕세손에 책봉되고, 1834년 순조가 죽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순조비(妃)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수렴청정하였다. 1841년 비로소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으나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지는 세도정치 아래서 세력다툼과 삼정문란으로 국정이 혼란하고 민생고가 극심하였다.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활용한 가톨릭 탄압으로 1839년 주교 L.J.M. 앵베르, 신부 P.P. 모방과 J.H. 샤스탕을 비롯한 많은 신자들을 학살한 기해박해(己亥迫害)를 일으키고, 1846년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처형하였다. 한편 《열성지장(列聖誌狀)》 《동국사략(東國史略)》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삼조보감(三朝寶鑑)》 등을 찬수하고, 각도에 제언(堤堰)을 수축하는 치적을 남겼다. 1849년 23세의 나이로 후사 없이 요절하였다. 능은 경기도 양주(楊州)의 경릉(景陵)이다.


헌종대의 사회상황

 

헌종 대에는 17, 18세기부터 시작된 사회 전반에 걸친 급격한 변화로 농민층의 분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들 은 도시나 광산으로 흘러들어가 임금 노동자가 되거나 도시 빈민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부농층과 부상인들이 생겨 나면서 천민에서 양민으로, 양민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일이 빈번해졌는데 이는 조선 사회를 지탱해왔 던 신분 질서와 봉건 제도의 붕괴 조짐으로 나타났다.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는 수재와 전염병의 창궐로 민생이 악 화되었으며 삼정의 문란이 가중되어 살던 곳을 버리고 유랑하는 유민들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풍양 조씨는 헌종의 모후 조대비의 일문으로서 조대비의 부친인 조만영이 그 거두이다. 조만영은 어영 대장, 훈련대장 등을 역임하면서 헌종을 보호하는 한편 그의 동생 조인영과 조카 조병헌, 아들 조병구 등을 요직에 앉혀 세도를 확립한다. 그 후 5, 6년 동안 풍양 조씨 일문이 현달하더니 일문의 내부 알력과 1846년 조만영의 죽음 을 계기로 정권은 다시 안동 김씨 일문으로 넘어간다. 헌종 대에 정권을 잡아 안동 김씨를 견제한 풍양 조씨 일문 은 정치 혁신 대신에 안동 김씨와의 정권 경쟁에만 급급하여 민생 문제와 사회 문제를 도외시 함으로써 사회적인 모순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물론이요 그로 인한 삼정의 문란을 초래했다.
이양선의 출몰과 서양에 보낸 최초의 외교문서

 

헌종 11년에는 영국 군함 사마랑 호가 제주도와 서해안을 불법 측량하고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하자 조정은 청나라 를 통해 광동에 있는 영국 당국에 항의하기에 이른다. 또한 헌종 12년 6월에는 프랑스 제독 세실이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을 이끌고 충청도 외연도에 들어와 왕에게 국서를 전하고 가는 사건이 발생해서 한때 조정을 긴장 상태에 몰아넣기도 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체포되어 사교를 퍼뜨리고 국법을 어겼다 는 죄목으로 7월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에 처해진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듬해 청나라를 통해 프랑스에 답신을 보내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가 서양에 보낸 최초의 외교 문서가 되었다. 헌종 14년에는 이양선들이 경상, 전 라, 황해, 강원, 함경도 등지에 빈번하게 출몰하여 백성들의 민심이 크게 동요되는 등 국 내외적인 위기가 조성된 다. 이때부터 조선은 이양선을 앞세운 서구 열강들의 통상 위협과 문화 개방 요구를 맞게 되는 등 본격적인 외세 대응기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 정세나 주변 정세에 어두웠던 조정에서는 이양선의 출몰이나 위협에 별다른 방책도 세우지 않은 채 각각 권력의 장악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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