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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한여름이면 배롱나무꽃 명소를 찾아 답사여행을 다녀오곤했습니다.
올해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에너지 삼아 한여름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꽃을 찾아 2박3일 동안 전국 배롱나무 명소 12개 도시, 17곳을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진행 참여로 예정했던 곳을 모두 방문하며 잘 다녀왔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좋아하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가장 뜨거울 때를 기다려 여행일자를 8월 광복절 연휴에 마추어 떠났습니다. 다시 찾아온 폭우가 전날까지 내리다 멈추고 소강상태가 이어져 다행히 여행 기간 동안 우산은 한번만 펴고 습도가 높아 땀은 많이 흘렸지만, 우리가 떠나온 다음날 100m가 넘는 폭우가 또 쏟아졌다하니 날씨 복은 단단히 받았던거 같습니다.
다만, 계속되는 장마비로 꽃이 많이 떨어지거나 어느 지역은 기온이 낮아져 아직 덜 개화한 곳도 있어 기대한 것만큼 화려함은 덜했지만 꽃이 있으면 있는 대로 피어있는 꽃은 더 반기고 예쁘게 보아주시는 넉넉한 마음과 꽃이 없으면 방문지 마다 갖고 있는 문화유적지 자체를 즐기시는 안목으로 여행을 즐겁게 마쳤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넉넉한 배려가 함께 하는 여행, 꽃만큼 아름다운 마음이였습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배롱나무꽃은 태양이 뜨거워지는 7월에서~9월까지 꽃이 이어 피는 여름꽃입니다.
뜨거운 햇볕을 좋아하는 배롱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가장 더운 여름을 기다려 배롱나무꽃 명소를 찾아 지역을 한정하지 않고 전국을 아우르는 <배롱나무꽃 찾아가는 전국 여행길>에 오릅니다.
오늘 운전한 50여일 간의 유럽 순회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태도사님입니다.
회원님들이 태도사님 귀환을 기다렸다하시며 어찌나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시는지 ~~^^
이번은 운전시간이 길어 많이 힘드셨을거에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정 지역을 한정해 답사를 다녀오면 이동시간도 좀 줄고 진행자 입장에서도 유리하고 편하지만, 가고 싶은 곳을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조바심과 길 나선 김에 더 많은 곳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밀려 내내 운전하실 태도사님께는 미안하지만 이런저런 계산없이 2박3일 여행기간에 마추어 빼곡하게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태도사님 죄송혀요~~ㅎ
▼ 1-1 대전 숭현서원
첫번째 방문지는 대전 숭현서원입니다.
요즘은 서울을 비롯 집 근처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아름드리 배롱나무 군락을 보려면 역시 남도로 가야합니다. 배롱나무가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전에도 멋진 배롱나무가 있다고 해서 먼저 들렸습니다.
▲ 대전 숭현서원
대전 최초 사액서원으로, 1585(선조18) 수부 정광필,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세 분을 배향키 위해 삼현서원이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1609년에 송남수가 다시 세웠고, 그해에 나라로부터 ‘숭현’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후 사계 김장생, 이시직, 송시영, 송준길, 송시열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어 팔현묘라고도 하였다가 숭현서원이 되었습니다.
1871년(고종8)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2001년에 복원.정비하였고,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원은 석축을 단정하게 쌓아올린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석축에는 반송이 여러 그루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럼, 서원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얼랄라~~~^^;;
석축 위 양쪽으로 한 그루씩 자리잡고 서원을 생동감있게 만들어야 할 배롱나무꽃이 생각보다 존재감이 미약합니다.
꽃도 많지 않고 색도 진하지 않은거 같습니다. 시기적으로 지금쯤이면 절정이여야하는데 말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 개화하지 않은 꽃봉오리가 많습니다.
남도지역 만큼 온도가 높지 않은데다 계속 비가 내리며 기온이 내려가서인지 아직 꽃을 다 피우지 못했네요.
에효, 첫 방문지에서부터 화려하게 시작해야하는데 어찌나 죄송하던지요~~^^;;
그래도 우리 회원님들 불만하지 않으시고 피어있는 꽃들 이쁘게 살피시고, 사진 찍으시며 있는 그대로를 즐겨 주십니다.
제가 걱정이 되어 투덜대니 오히려 저를 위로하시며 서원을 꼼꼼하게 답사하십니다. 역시 짱이세요~~^^
숭현서원의 교육 장소인 강당 모습니다.
원래 대전시 목동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1년(1609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복원되었답니다.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강당에서 밖을 바라보면 누각 양쪽으로 배롱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습니다.
누각 오른쪽 모습이고,
누각 왼쪽 모습입니다.
꽃이 윗쪽에만 피어있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네요.
거기다 반송이 여러 그루에 워낙 푸르러 배롱나무꽃의 존재가 가려지는거 같습니다.
예정했던 대로라면 이런 모습입니다.
가지 마다 꽃송이 개체수가 달라 화사하게 핀 가지를 골라 담아 봅니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합니다. 고려로 시집 오기 전의 중국 이름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紫微花)’라고 했습니다.
태양이 뜨거워지는 7월~9월에 꽃 하나가 지면서 다른 꽃봉오리가 이어 피며 100일을 넘겨 피어 백일홍나무라 부르다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변해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합니다. 초본 백일홍꽃과 구분하기 위해 목백일홍이라 부르기도합니다.
오글쪼글 꽃잎은 6~7장이고,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도 주름을 펴주지는 못하는, 주름 꽃잎은 배롱나무 만의 특허품입니다. 꽃말은 수다스러움, 웅변, 꿈, 행복입니다.
처음에는 흰색 열매가 이미 진 모습인가 했는데, 진 꽃송이 모습은 이렇더군요.
서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타리꽃이라는군요.
마당 겸 주차장은 장마비 때문인지 땅이 패였고, 풀도 제법 자라 관리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당 풀섶에서 자라는 작은 여름꽃에 앵글을 마춥니다.
요건 계요등이라는 덩굴식물이에요.
보통은 가운데 붉은 반점이 훨씬 진한데 이곳은 색이 엷네요.
폭우에 떨어진 낙과. 열매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이 이들의 아픔일까요?....
흔하고 평범한 시골 골목 모습이 정겹습니다.
숭현서원에서는 배롱나무 보다 주변 풀과 꽃이 더 많은 시선을 받으거 같습니다.
꿩 대신 닭? 이런 속담을 여기 적용해도 되려나요?~~^^. 아무튼 배롱꽃 대신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주었습니다.^^
▼ 1-2 영동 반야사
1시간을 넘게 이동해 도착한 곳은 영동 반야사입니다.
극락전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수령 500년의 두 그루 배롱나무꽃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장마비로 계곡물이 불어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 더 푸르르고 촉촉합니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와야겠어요.
아, 또 우짠다지요~
여기는 꽃이 거의 떨어졌어요. 아까는 덜 피었더니 이번에는 미리 떨어져 버리고....흑흑^^;;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찾아왔거든요. 이번이 세번째인데,,,,허락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배롱꽃이 아니여도 충분히 의미있는 장소랍니다.
우선 보물 석탑에서 인증샷을 남길수가 있지요.
꽃이 없으니 탑이 더 돋보입니다.
듬직한 고목 배롱나무 두 그루를 배경으로 두고 있어 탑도 배롱나무도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구나 싶습니다.
반야사는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한성봉 자락을 끼고 도는 석천 계곡변에 자리합니다.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중 수제자인 상원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이 석탑은 보물 제1371호. 전체 높이 315㎝입니다.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옥개석의 전각(轉角)과 낙수면(落水面)의 경사 옥개석 받침 등 전체적인 구성이 신라 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합니다.
이 배롱나무는 뒤틀린 굵직한 줄기 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신비로워 보이는 나무랍니다.
수령이 500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는군요. 대단하지요~~
저는 이 줄기를 볼 때마다 대단하고 멋스러워 꼭 꽃이 없어도 참 좋습니다.^^
반야사 배롱나무
정성욱
늙었어도 나무가지에 꽃 일만개 쯤
매달 힘은 아직은 있어.
누가 날 보고 늙었다고 하지
젊은 것들은 날보고 늙었다고
뒤담화를 몰래 수근 대지만
한 오백년 살면서도 바람한번 피우지 않고
꽃피고 질 때를 알지,
한번 꽃피면 백일동안은 거뜬하게 버티지.
젊은 것들은 꼭 사랑하다가 지치면
배롱나무 아래 찾아와서
세상 떠나가도록 울지만
그래도 나는 외면하지 않아.
더러는 부드러운 입술 같은
푸른 잎을 드리우고
포근하게 위로해 주기도 하지.
눈가에 눈물 대롱대롱 달고 가는
젊은 것들을 보드라운 바람으로
달래주기도 하지,
세상 늙지 않는 건 없어
나처럼 곱게 늙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살다보면 알아.
이제부터 날 늙은이 취급하지 마.
정성욱 시인의 시 ‘반야사 배롱나무’의 전문입니다.
반야사 배롱나무 앞에 서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락전 앞 두 그루의 이 배롱나무는 조선을 건국할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꽃아 둔 것이 조깨져서 쌍 배롱나무가 생겨났다는 설화가 전해온답니다. 높이가 8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영동군 보호수로 지정돼 있습니다.
청산님과 태도사님 ^^
배롱나무의 부족한 붉은빛은 태도사님 빨간바지와 운동화로 대신??~~^^
막사님과 이번에 처음 참석하신 옆기지이신 바이칼호수님 ^^
음~~ 두 분 폼이 너무 자연스러워 둘러선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졌답니다.ㅎㅎ
구름꽃님과 배롱나무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대웅전 쪽으로 눈길을 주어야될거 같습니다. 절집에 왔으면서 대웅전에 눈길 한번 안주고 배롱나무에 정신이 팔려 있었네요.
대웅전으로 오르는 몇개 계단에 상사화가 두 그루 활짝 피어 대웅전과 아름다운 보색을 이루었네요.
푸근한 미소가 늘 좋아 갈 때마다 대웅전 안의 부처님 보다 이 석불을 찾게 됩니다.
철쭉나무 사이에 숨기듯 자리하고 있어요.
반야사의 또 다른 명물인 백화산 기슭에 무너져 내린 너덜경이 만든 호랑이 모습을 꼭 닮은 돌무지호랑이입니다.
대웅전 마당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백화산 기슭에 그 모습이 당당하게 드러납니다. 수천년 동안 흘러내린 돌무더기(파쇄석)가 주변에 있는 나무들과 경계를 이루어 만들어 낸 신기한 형상입니다.
아쉬움은 새로운 시작이라하지만,,,,,언제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더 눈길을 남깁니다.
블랙영님, 봄봄님의 다정 커플샷 남겨드리고 이제 출발입니다.
일주문까지 걸어서 내려가기로 합니다.
푸르른 주변 풍광도 멋지고,
구수천의 늘어난 수량이 사찰로 통하는 징검다리를 더 아름답게 합니다.
누리장나무도 꽃을 한창 피웠습니다.
나비님이 마치 숲과 하나된 듯 일주문으로 사라져 가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몇 걸음 달려가 앵글을 마추었는데, 1초 정도 늦은거 같아요.^^
반야사는 구수천 위에 놓은 징검다리와 이 포장된 도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합니다.
둘 다 걸어서 반야사로 갈수 있습니다. 반야사를 기준으로 상류에는 호국의길이라는 둘레길이, 하류에는 월류봉둘레길이 있어 트레킹 하기에 아주 좋답니다. 토로네여행길에서는 지난 6월5일 두 길을 모두 걸었답니다.^^
점심 먹으러 반야사에서 가까운 황간낙지 식당으로 왔습니다.
메뉴는 낙지철판볶음이에요. 지난 6월 걷기 때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들 좋아하셔서 다시 찾았습니다.
꽤 큰 낙지가 넉넉히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분 표현대로 복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 일미입니다.
기본 1개에 1개를 더 추가해서 먹었어요~^^
양이 넉넉합니다. 슴슴하니 먹기 좋을 정도의 매콤함입니다.
저 볶음 후라이팬은 지난번 우리팀이 방문했을 때 새로 제작하신 거래요.^^
마무리는 볶음밥으로~~~
오늘도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먹는 동안 갑짜기 소나기가 흠씬 쏟아지더니 식사가 끝나 탑승시간이 되니 비가 잦아 들었답니다. 어느 분 공덕인지 늘 날씩 복에 감사하답니다.^^
▼ 1-3 안동 체화정
점심 식사를 하고 한숨 조는 동안 버스는 1시간을 넘게 달려 안동 체화정에 도착합니다.
이동 동선에서 꽤 벗어나 방문을 고민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도저히 포기가 안되었답니다.^^
체화정 주변 공원 모습입니다. 왼쪽에 기와지붕이 살짝 보이시지요?~
연못 물길을 따라 부레옥잠, 연꽃이 피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알록달록 우산을 쓴 모습이 초록 위에서 이쁜 날이네요 ^^
안동에 위치한 체화정입니다.
배롱나무꽃이 아니여도 정자 그 자체만으로도 인상에 남는 명승지입니다.
배롱나무꽃은 대체적으로 양호합니다만 잦은 비 때문인지 꽃 색깔이 엷어진거 같습니다.
몇년 전 낙동강예던길을 걸으며 들렸던 체화정입니다. 당시는 배롱나무꽃이 없던 계절이였는데도 작지만 정자의 섬세함과 특히 창호가 아름다워 인상에 남았던 곳입니다.
체화정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로, 죽사 이민적(1702~1763)이 영조 37년(1761)에 지은 정자입니다.
보물 제2051호로 근래인 2019년에 지정되었습니다
정자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락집으로 어칸은 온돌방이고 좌·우협칸은 마루방인데, 온돌방과 마루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내어 밀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사면으로 돌렸습니다. 마루방 앞쪽으로는 4분합 들문을 달아 전체를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툇마루에 올라갈 수 있어 한동안 앉았다갔는데 지금은 출입금지네요.
체화정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정자로 18세기 후반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우수한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이 정자의 백미 중 하나는 문살이 보이지 않는 온돌방 전면의 창호입니다.
창호의 모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곳을 다녀가고 몇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아 저의 괴산 초가집 안방에 이 문양과 비슷한 창호를 선택했답니다.^^
창호는 4칸 폭인데 가운데 두 칸은 문얼굴( 문짝을 달기위한 방형 문틀) 이 하나로 되어있으며,
중앙에 "눈꼽째기창" ( 창이나 문안에 다시 열 수 있게 만든 작은 창) 을 달았으며,
양쪽문은 좌우로 열어 가운데 두 칸 분합과 포개져 들어걸개로 열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죽사는 만년에 이곳 체화정에 연못을 만들고 그 주위에 배롱나무를 심고는 형인 이민정과 함께 글을 읽으며 형제간의 우의를 다졌습니다. 체화란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합니다.
체화정은 단원 김홍도와도 인연이 깊은 정자입니다.
문틀 위의 '담락재' 편액은 김홍도의 쓴 것으로 전해지며,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기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라합니다.
사각의 연못 안에 삼층도지(三層島池)라는 부르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데, 방장(方丈), 봉래(蓬萊),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한다합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런 모습의 아름다운 반영은 볼수가 없네요.
연꽃이 연못을 많이 퍼지기도 했고, 비가 내리고 있어 수면이 흔들리기 때문이랍니다.
▼ 1-4 칠곡 가실성당
점심 이후로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내리던 비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치곤 해서 여행에 불편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스쳐가는 풍경도 여행의 한 부분이지요.
오늘은 시시가각으로 변하는 운무가 예술입니다.~
대구 근교 배롱나무꽃 명소 중에 요즘 핫플이 된 가실성당 도착입니다.
배롱나무꽃이 사찰과 서원에서 가장 많이 피어나지만, 대구에는 곳곳에 배롱나무 명소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실성당은 사찰이 아닌 성당이 주는 분위기도 독특해서 인기 장소입니다.
가실성당은 한국전쟁 때는 병원으로 사용된 덕분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가실성당과 사제관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는 영화 '신부수업'이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성당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석류가 유난히 크게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해피꽃님과 언니가 함께 하는 자매 커플입니다~
함께 해 주시고 여행을 즐겨주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감사했습니다.^^
이쁘네요~~
이렇게 서서 계단을 내려오는 저를 바라보시기에 성당을 감상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 저 보고 얼른 '방 빼라'는 무언의 압력을 담을 시선이였대요. 제가 방 빼니 바로 촬영에 들어가시더라는~~ㅎㅎ
가실성당을 관람하고 대구로 이동합니다.
▼ 1-5 대구 육신사
대구 육신사 도착 전 충절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육신사가 있는 묘골마을로 가는 길 입구에는 사찰의 산문처럼 굳건히 선 충절문(忠節門)과 배롱나무가 쭉 늘어서 있습니다. 배롱꽃이 피는 계절이면 전국 각지의 사진작가들이 충절문 앞에 줄을 선다합니다.
육신사(六臣祠) 도착.
육신사도 배롱나무꽃으로 꽤 유명합니다.
육신사는 조선시대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육신사 경내와 이 사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충절문까지 배롱나무꽃이 양쪽에 가득 핀답니다.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를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玄孫)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합니다.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1979년 건립)에 대해 와야님이 설명을 해 주고 계시네요. 각 면 마다 한 사람 씩 기록을 했습니다.
육신사 경내에는 외삼문과 숭절당(崇節堂), 사랑채 2동,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이 있고, 뒤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숭정사(崇正祠), 그리고 태고정(太古亭)이 있습니다.
보물 제554호 태고정(太古亭)입니다.
태고정은 성종 10년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원래는 종가 안에 붙어있던 별당 건물이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일부만 남아있다가 광해군 때 다시 지었습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꾸몄으며, 서쪽에는 온돌방과 부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궁이만 두는 정자 건물에서 부엌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 특이하며, 조선 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홍살문 쪽으로 마치 사육신 여섯 분의 충절인 듯 붉은 배롱꽃이 피어있습니다. 세조의 회유에도 끝내 죽음으로 지켜낸 절의와 지조, 여섯 분의 절개가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육신사 옆 담장 너머로는 묘골이라는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묘골마을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순천 박씨의 집성촌으로 500여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박팽년의 집안이 3대가 멸족되는 화를 당할 때, 묘골마을이 어떻게 박팽년의 후손이 입향하여 순천 박씨의 세거지가 되었을까요?
사육신의 일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나 관비가 되었던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는 임신중이었고 해산을 위해 친정이 있는 묘골로 옵니다. 낳은 아들(박일산)을 친정 여종이 낳은 딸과 바꾸어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습니다. 박팽년 손자는 '박비' 여종의 아들이 되어 여종의 주인을 향한 충심으로 박팽년의 집안은 멸족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박비가 17세 무렵 성종에게 자신이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고 처벌을 구했으나 성종은 크게 기뻐하여 특사령과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귀한 혈육이라는 의미에서 ‘일산(一珊)’이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박일산이 24세 되던 해에 외가의 후손이 끊기면서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묘골에 9칸 종택을 지어 정착하게 되며 집성촌을 이루게 됩니다.
굵은 거목에서 연약한 새 줄기가 나와 꽃을 피웠습니다.
마치 멸족될뻔한 박씨 집안을 박일산이라는 새 줄기가 집성촌을 이룬 것처럼 세상사가 비슷하군요...
▼ 1-6 대구 육신사에서 삼가헌 가는 길
육신사 관람을 마치고 삼가헌으로 이동합니다.
1km 남짓 구간은 배롱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걷습니다.
묘골마을을 지납니다.
어느 고택의 지붕에 와송이 자라고 있네요.
대문이 열려있는 한옥이 아름다워 삐끔 들여다보니 고택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곡재'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대구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입니다.
도곡재는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묘골마을에 있는 고택입니다. 이 건물은 정조 2년(1778)에 대사성인 서정공 박 문현이 제택으로 건립한 건물이나, 1800년대에 와서 도곡 박 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 도곡재라 이름하였다합니다.
마당에 근사한 소나무가 있길래 기웃거려 봅니다. 충효당입니다.
울타리에도 멋진 수형의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더군요. 충정공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숭고가 별당으로 건립한 것으로 그 후 충효당으로 개칭하여 청년 교육과 부녀자에게 법도를 가르쳤다합니다.
박주가리꽃도 이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묘골 마을을 벗어나며 배롱나무 가로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일부는 지고, 일부는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배롱나무꽃은 100일 동안 꽃이 지고 피며 이어지지만 크게는 세번 정도 꽃이 올라온다 합니다.
충절문을 지나고,
운무가 흐르는 먼산을 배경으로 ~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배경으로 담아보기도 하며,
색과 분위기를 달리하는 꽃을 쫓아 걷고 있습니다.
비온 후 빗방울도 예쁘게 달리고, 길도 한결 시원해져 걷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느려지는 걸음을 보충하기 위해 태도사님이 버스로 마중을 나오셨네요 ^^
빗물 덕문에 체화정에서 못본 배롱나무꽃 반영을 포장 도로 위에서 대신하며 좋아라합니다.^^
도로에서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야합니다.
집과 논이 잘 어울려 초록빛 정원처럼 빛나네요.
연근잎의 푸르름이 아주 인상적이였습니다.
삼가헌에 도착.
달성 삼가헌 고택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중용에서 따온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 아들이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짓고, 별당을 하엽정이라 칭합니다.
아쉽게도 코로나로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곳은 개인집이라 주인이 원치않는 경우 출입이 불가합니다.
담장 너머로 카메라를 넣어 봅니다.
이곳이 별당인 하엽정이네요.
하엽정은 삼가헌의 별당으로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입니다. 영남 내륙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택으로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가진 곳이랍니다.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 놓인 외나무다리는 인생샷 남기기에 최적이라네요.
문이 열려 있었다면 이런 인생샷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은 꽃이 이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외나무다리 샷은 가능했을텐데요..^^
삼가헌 관람은 담장 너머로는 흠치듯이 보고, 근처에 낙빈서원이 안내판이 있어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 봅니다.
마당 디딤돌 놓인 형태가 주인 성격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실제로 주인이 이 사람들 뭔가 싶어 문밖에 나와 계셨거든요.
오랜만에 무궁화도 찍어 봅니다.
▼ 1-7 대구 하목정
삼가헌 관람을 제대로 못해 2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어 근처에 있는 하목정을 잠깐 들렸습니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고 마당에는 꽃도 제법 화사해 짧은 짜투리 시간 방문이 보람있었네요.
이번 일정에서는 명옥헌 원림, 대구 하목정, 서산 개심사 등 지난 답사 때 다녀온 유명 장소들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상사화가 이제 올라오기 시작해 싱싱하고 상처없는 말끔한 꽃을 담습니다~
와~~
기대 안하고 들어섰는데 조금 지긴했지만 마당 왼쪽 두 그루에 꽃이 한 가득~
예년 같으면 하목정은 일찍 피는 곳으로 7월 중순부터 절정이 시작되어 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게 왠 횡재~~^^
하목정은 조선시대의 정자 건축물입니다.
2019년에 보물 제2053호로 승격되었네요.
보물 지정 전에 갔을 때는 마루에도 올라가서 앉아있다 왔는데....
"하목정의 창틀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쌍창(欞雙窓, 중간설주)의 흔적이며, 사랑윗방의 정면 창호, 대청 측면 부분, 대청 배면의 어칸 부분의 창 윗틀에서 영쌍창의 홈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영쌍창의 모습은 17세기 이전의 사랑방이나 안방의 전면 창호 또는 대청의 창에서 많이 쓰이던 것으로 18세기에서도 일부 이어져 왔던 수법이며 건축의 연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는 중요한 자료이다"...
처음 방문 때부터 '영쌍창'이 뭔지 궁금했는데 아직까지 이 영쌍창이 어떤 모습을 말하는지 답을 찾지 못했네요.
하목정은 창틀을 프레임으로 인생샷 남기는 곳이래요~^^
길수니님은 좋아하시는 분위기래요~~^^
(근데, 제 꾸진 핸폰이 사진에 술을 왕창 먹였나봐요~~^^::)
뒷곁은 꽃이 많이 졌네요.
일찍 다녀간 후기를 보니 올해는 전반적으로 꽃이 적었던 모양입니다.
비에 꽃이 많이 떨어져 있네요.
정자 뒤는 사당인데 꽃이 거의 없어요
낙동강으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머물다 나옵니다.
날이 좋았으면 우연하게도 일몰시간이 맞아 멋진 노을을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
아하~욕심 부리면 안되겠지요?~~~^^
오늘 7군데를 돌아 식당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어 갑니다.
덕분에 예약시간 어겼다고 벌금 5만원까지 냈답니다.ㅎㅎ~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식당이 좁아 의자 배치를 다시 해 세팅해 놓았더군요.
감자빵이 먼저 나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샐러드를 시작으로 파스타, 피자, 감바스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주문했습니다.
제일님, 길수니님께서 주류를 내셨답니다. 덕분에 제주라거를 시원하게 즐겼습니다. 감사합니다 ^^
토로네여행길 건승을 기원하며 건배도 하구요~
음식이 워낙 천천히 나와 기다리는 지루함을 채울겸 자기 소개도 간단히 했답니다.
아쉽게도 이후 음식 사진은 잘못 조작해 다 날아가 버려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녁을 1시간 30여분에 걸쳐 먹었습니다.
경양식을 진짜 경양식처럼 음미에 음미를 거듭하며 먹었네요^^;;
그래도 토로 불편해 할까봐 왜 이리 늦냐는 말씀 한 마디 안하시고 느긋하게 기다려주신 여러분 정말 멋쟁이십니다.^^
오우~~
숙소 가는 어느 거리에서~
어느 분이 유럽피안 분위기라네요. 카페 대문 사진으로 바꾸어 놓았어요.^^
대구 호텔비에서 첫째날 밤을 맞습니다.
꽤 비싼 값을 지불한만큼 잠자리가 좋네요. 방과 화장실 사이즈가 비슷한거 같아요.^^
내일 2일차도 좋은 날씨이기를 바라며 꿈나라로 갑니다.^^
첫댓글 반야사 배롱나무는 분재처럼 곡선이 넘 예쁘고,체화당에서본 배롱나무는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반겨주었지요..
가실성당에서 기도할수있는 시간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목정 배롱나무는
만개해서 우리를 즐거운시간을 만들어 주었지요
함께한 여행길 행복했습니다 토로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와 ~ 기다리던 토로님의 후기
눈길 가지 않았던 은밀한 곳에서 보석을 찾아 내어 사랑의 손길로 담아낸 사진들 ~~ ~
반야사, 체화당, 가실성당 모두 우리를
흡족하게 했습니다
하목정 활짝 핀 배롱나무는 저녁빛을 받아
더 붉게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구요
참 좋은 여행은 우리 토로네 여행길에 맞는 표현이네요^^
토로님의 수고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소환해 봅니다 ^^
걷기아닌 사진여행으로 오랜만이지요.
해마다 꽃 필 시기를 맞추는게 쉬운일은 아닌가봅니다.
그렇지만 2박3일 많은 곳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시는 마음이 눈에 보입니다~ ㅎㅎ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체화정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아직도 눈에 아른~ 아른합니다.
여름날의 여행은 뜨겁습니다.
햇빛도, 체온도, 마음도 . . .
그래도 나섭니다.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까요.
비가 내려도 후덥지근한 날씨속에 열정으로 가득한 회원님들은 열심입니다.
꽃을 찾고, 고택을 찾고, 얽힌 이야기를 찾고, 살았던 사람을 찾고.
그 모습이 오히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명품후기 잘 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믿고 보는 토로님 후기입니다
오래 전에 우연히 인터넷 서핑에서 봤던
토로님 후기에 이끌려 그 인연이 오늘까지 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여러 정보와
감성을 건드리는 토로님의 잔잔한 글들은
많은 이들이 좋아라 하고 공감대도 형성되지요
그러나 다 좋을 수만은 없듯이
이런 후기를 작성하기까지 하 많은 시간들을
컴터 앞에 붙박이 하고 있었을테니,
건강은 챙기면서 쉬엄 하세요(말은 쉬운데요..)
토로님이 안내하는 테마여행은 시간만 되면 무조건
달리는데요 이번 배롱나무꽃을 찾는 여행도
너무 좋았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건 자연의 섭리이니 보여주는 대로
즐기면 되니요
수고 많으셨어요 토로님 그리고 태도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