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몬 시바라는 개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시바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인데
조몬시대 개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바는 이시와 나카라는 개를 시조를 삼고 있는데 현재의 시바와 닮은 점이 있다.
이시와 나카와 닮지 않은 조몬 시바는 굳이 시바라는 말을 쓰지 말고 그냥 조몬개라고 하는 것이 맞다.
시바견의 기준은 이시와 나카인 것이 마땅하다.
조몬견(조몬시바)의 기준은 조몬시대 두개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진돗개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석기시대개의 후예라는 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석기시대개의 유골이 패총등에서 출토되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진돗개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송나라 남파선에서 탈출한 개가 진돗개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과 여우와 교배로 태어났다는 설 등은 그냥 전설로 치부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몽골개 후예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진돗개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정충남씨의 인터뷰에 의하면 1960년대 초반에 진도에서 진돗개다운 개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대부분 육지로 팔려나갔는데 진도에 남은 것은 홑개스타일인 지산개와 굴개스타일인
고군개였을 것이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동진개는 극소수만 진도에 남았을 것이다.
1970년에 와서야 진돗개 전람회를 통해서 진돗개가 평가받기 시작했는데 70년대 후반
진도에서 개최된 전람회가 진돗개의 기준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미
진돗개 다운 좋은 진돗개는 대부분 육지로 반출되었으니 홑개스타일의 개 위주로 전람회가
개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영향으로 지금의 전람회 개들도 홑개의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 같다.(꼬리, 체형, 귀자세, 털 등) 그래서 전람회 개들이 진돗개의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번개, 노랭이(70년대, 80년대), 벌포, 철갑이, 큰백구, 귀더파리, 전주똘이, 동진이,
일막이, 삼막이 등등 개성있는 개들이 유명세를 탔다. 이 개들은 진돗개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7,80년대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주견, 차우차우, 아키타 등 외국견종과의 무분별한
혼혈이 이루어졌고, 진도에서 좋은 진돗개가 대부분 사라진 이후에 발굴된 개들이기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으며, 역시 홑개스타일의 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진돗개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단지 진돗개의 다양성에 기인한 한 유형으로서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요즈음은 예전에 유명했던 혈통을 이어가려는 부류와 큰상을 받은 개를 중시하는 부류
그리고 사냥을 잘하는 개를 중시하는 부류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 기준 진돗개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1945년 해방 후 부터
1950년 6.25을 거치면서 1960년대 말까지 진돗개의 공백기(암흑기)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 1938년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의 최초의 진돗개와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진돗개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의 개이어야 한다.
그 이전의 개가 아무리 좋았다고 한들 지정 당시의 개와 다르다면 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이후의 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지정 당시의 개와 다르다면 역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다행히 진돗개는 천연기념물지정 당시의 훌륭한 사진이 있다.
그 당시에 저명한 학자가 작성한 종합적인 보고서도 있다.
게다가 각기 다른 유형의 진돗개를 선발하여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진돗개의 기준은 8진도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