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17일 김덕수 사물놀이패 2004년 첫 공연이 거제에서 열렸다. 거제문화예술회관 귀빈실에서 기자는 신명의 중심 사물놀이패를 이끄는 김덕수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제임스 딘의 별명이 '멋진 반항아'이다. 그러나 이젠 제임스 딘의 별명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나는 김덕수 씨께 '멋진 반항아'라는 별명을 붙이고 싶다.
김덕수 씨는 우리 것이 뒤로 밀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우리 것이 퍼지도록 계속해서 씨를 뿌리고 다니셨던 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의 것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반성의 시간과 함께 ‘반항아’의 반항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풍물을 접하게 된 계기는요
나중에는 내가 좋아서 하게 되었겠지만, 아버님이 남사당의 음악을 하셨어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저에게 대물림을 하신 거죠. 그래서 저는 코흘리개 5살 때 아버님에 의해서 남사당에 입문을 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서 여행을 하며 우리의 민족예술을 세상 사람 들과 함께 펼치고 있습니다.
남사당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자면요
남사당하면 우리 할아버님 때에. 그리고 남사당의 음악은 언제인가 모르지만 그 뿌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우리 생활 속의 음악이었고, 또 남사당의 악기는 우리의 상징적인 악기에요. 남사당이라는 단어는 대개 조선시대 말경에 생긴 거고, 각 지역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전문 예인 집단들이죠.
이쪽 영남 지방에서는 걸궁패라 그랬고요. 남사당이라고 하면 중부권. 그러니까 서울, 경기도,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professional한 요즘말로 하면 musician같은. 그러한 전문 예인들이었지요.
사물놀이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남사당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전국 팔도에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두 가구 이상만 살면 기본으로 있었던 게 있어요. 장례 의식할 때 쓰던 상여하고, 북, 장고, 징, 꽹과리 이 네 악기만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했던 유기물이예요. 왜냐하면 사물이란 악기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생활 속에서 가장 기본이 되던 악기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산업사회, 현대사회로 오면서 우리나라 생활이 바뀌었고 그러면서 점점 우리의 것은 생활 속에서 멀어져 갔던 거죠. 요즘 우리 청소년들 우리 것을 들으면 꼭 남의 나라 것처럼 들리듯이. 그렇게 이상해진 거예요. 우리 악기의 울림은 우리의 언어처럼 우리 핏속에 있는 유전자 같은 거예요. 꽹과리, 징, 장고, 북 네 악기는 우리의 자연을 상징하고 있거든요.
이 악기들의 울림은 우리 자연의 울림이죠. 꽹과리는 번개의 소리. 징은 바람소리, 장고는 비의 소리, 그리고 북은 구름을 나타내고 있어요.
사물놀이의 탄생은 언제이며 어떻게 활동하나요
사물놀이는 1978년에 모든 우리 민족의 영혼, 신명이 담긴 것을 꽹과리, 징, 북, 장고로 연주할 수 있게, 또 이 시대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겁니다. 남사당만이 아니라, 탈춤, 농악, 무속 같은 곳에 숨은 우리의 신명과, 맛과 멋을 행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 재창조 된 게 사물놀이인 거죠.
사물놀이란 게 처음에는 뭐, 비틀스 같은 그런 고유명사였어요. 사물놀이는 작년에 25년을 맞이했고요. 그동안에 한 4500회 국내외 초청 공연을 가졌고, 그리고 음반도 20장 이상을 만들었고, 음악비디오도 한 18개 정도 만들었고, 특히 우리 것은 구전전승이었는데 그걸 학문화했죠. 악보작업, 교칙본 작업을 전 세계어로 해서 사물놀이를 전 세계인이 공부할 수 있게 20권 가까이 책을 만들었어요. 이제 세계 대백과 사전에도 사물놀이는 올라가 있고, 고유명사였던 사물놀이가 이제보통명사가 돼 버렸지요.
옛날과는 많이 바뀐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면요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국민들의, 특히 청소년들의 생활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나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이런 질문을 저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친구가 너하고 나하고 다른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너하고 나는 이런 게 달라.' 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너하고 나는 분명히 달라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죠.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과연 뭐냐 이거에요.
그런 것은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은 안 가지고 있는 거겠죠. 우리가 쓰는 한글 같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 중요한 그걸 잊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해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그걸 어려워하는데 어려운 게 아니에요. 조금만 눈을 뜨면, 아! 이거였구나, 이런 거였구나. 우리의 많은 것들을 무지할 정도로 망각하고 있어요. 서양 것이 대중화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우리 것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공연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옛날에는 극장이라는 게 없었죠. 마당이 우리의 극장이었어요. 아니면 대청마루라든지. 시작할 때 마을 어귀에서부터 마을 한 바퀴 돌면서 쳤던 게 길놀이에요. 어느 집에 들어갈 때는 문 굿을 치고, 복을 밖에서부터 밀고 들어가요. 그게 우리의 전통방식이었죠. 그 원칙을 극장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극장 밖의 로비가 마을 어귀가 되는 것이지요. 극장 문이 그 집의 문이 되는 거고. 무대가 마당 내지는 대청마루화 한 거예요. 공연을 보시면 알겠지만, 마루에다가 설 때는 일년 제숫굿, 지신밟기, 성주굿 이런 걸 하죠. 오늘 하는 건 바로 그걸 하는 거예요. 고사상도 차려놓고 기원하는 거죠.
다음으로 우리는 장고만 가지고 하는 합주, 그리고 사물로만 하는 삼도농악가락 등의 연주를 들려드릴 겁니다. 또 보통 고사 지내고 하면 사람들이랑 나눠먹잖아요. 공연 중 휴식 때 극장 로비에서 고사 상에 있던 거 관객들이 서로 나눠먹고. 서로 복을 나눠받고 나면, 2부에서 농악을 펼치는 거예요. 2부가 끝나고 나면 앙코르로 마지막에 다 함께 어우러져서 놀죠. 그리고 막을 내립니다.
새해를 맞아 고교문화신문 독자들에게 덕담을 해주신다면요
청소년 여러분이 큰 꿈을 가지길 바라요. 여러분에게 세계는 열려있어요. 전 세계가 시장인 거죠. 우리 청소년들이 세계 시장에 나가길 바라요.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인간적인 영혼, 그리고 신명, 그걸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요. 하이테크한 사회에서 살수록 사람이 차가워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가지세요. 우리 민족은 따스한 가슴을 가진 민족입니다.
미래에 자랑스럽고 훌륭한 한국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