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一時拂)에 대하여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一時拂)”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라는 의미인데, 모든 부처님의 설법(說法)인 불교(佛敎)의 경전(經典)들은 부처님의 지시에 의하여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一時拂)”로 시작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아란존자(尊者)는 다문제일(多聞第一,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의미)이라는 별명(別名)을 가진 제자로 한 번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하는 비상(非常)한 기억력(記憶力)의 소유자(所有者)였다.
이 아란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시기 전에, “모든 경전(經典)의 시작(始作)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로 시작하라고 하셨으니, 불경(佛經)은 아란존자가 마음대로 변형(變形)하거나 지어낸 말이 아니고, 부처님께 들은 그대로 기록(記錄)하였다는 말이다.
일시불(一時拂)에서, 흔히들 불법(佛法)은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 이유(理由)는 불교(佛敎)에서는 본래(本來) 시간(時間)의 절대성(絶對性)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우주관(宇宙觀)으로는 우주(宇宙)에는 무수한 세상(별)이 있는데, 맨 아래의 사왕천(四王天)의 하루는 우리 인간세계(지구)에서는 50년이 되고, 도리천(忉利天)의 하루는 인간세계에서는 100년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現代)의 물리학(物理學)의 특수상대성 이론(理論)으로도 나타나고 있는데, 중력(重力)이 크면 클수록, 다시 말하면 별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과학적(科學的)인 사실(事實)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잠을 잔 시간은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았는데, 꿈속에서는 몇 일의 시간이 경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만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이라고 표현(表現)하고, 시간을 특정(特定)하지 말도록 지시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