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길라잡이>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일에 마침표를 찍는 분이시다. 가족 간에 의견도 다르고 삶의 방향도 제각각일 때, 그래서 묘하게 언성이 높아지고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단호한 한마디 “그만 해라.”로 상황을 정리하신다.
아버지께 보청기를 하자,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가자, 침 맞으러 가자는 등 무엇을 하자고 말씀드리면 아버지께서는 꼭 "다음에 하자."고 하신다. 그러시고는 다음이 되어서도 같은 대답을 하신다. 평생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하시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고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기에 굳이 ‘나’를 위해 살지 않으시겠다는 아버지의 의사 표현이다.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먹는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있어도 항상 집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신다. 가족들에게 할머니 고집을 부리시는 어머니께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으면 아버지께서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자.”라고 어머니의 편을 드실 때 나는 속상하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로 사람들에게 듣게 될 부정적인 평판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지혜로운 비밀 파혼을 결심했다.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요셉에게 어찌 인간적인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요셉은 꿈에서 천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 1,20)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천사의 명령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렇게 자신의 계획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요셉의 모습을 복음은 ‘의롭다’고 전한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기준을 넘어서서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한다. 자신의 계획을 바꿔 하느님의 뜻을 따른 요셉은 아들 예수에게는 든든한 아버지요, 마리아에게는 충실한 반려자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