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고자 하면 죽는다.
40여년의 목회 여정을 마치게 될 시점에 이르러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이뤄졌다면, 인생의 마무리는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 한 분이 은퇴를 앞두고 이뤄진 일들이 내게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교회 사정상 노후에 대해 어떤 보장도 할 수 없는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 나름 지혜를 짜낸 것이 시세로 8억에 상당하는 교회 건물을 인근의 중형 교회에 넘기는 조건으로 원로목사의 대우를 받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다 떠난 분들이 이 소식을 접하고 긴급하게 교인을 소집하여 부동산 가압류를 해버리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렇게 일이 뒤틀어지자 제일 난감하게 된 것은 그 교회의 담임 목사와 건물을 받아들이기로 한 교회였다.
이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슬펐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실상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죽음과 사심이 핵심이고 복음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말이다.
자기 한목숨 살겠다고 교회 재산을 처분하더라도 괜찮다는 발상은 도대체 복음을 바로 믿고 따른 자가 할 수 있는 모습인지 자못 궁금하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복음을 전한 목사라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저주의 십자가, 무서운 고통과 수치가 담긴 십자가! 거기서 죽기 위하여 묵묵히 골고다로 향하셨던 예수님을 따라 죽으러 가야 하지 않았을까?
주위 사람들이 저 사람은 살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죽는 길을 택했다고 조롱하더라도 나는 그 죽음의 길을 가고 싶다. 복음을 믿었고, 그 내용대로 살았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고 싶다. 죽고자 하는 자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