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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계획은 '방곡리 → 위점 → 수리봉 → 신선봉 → 갈림길 → 남봉 → 황정산 → 영인봉 → 전망 바위 → 원통암 → 황정리 → 대흥사 → 사인암'의 8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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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봉
높이: 1,019m
위치: 충북 단양군 단성면 방곡리
수리봉은 단양군 대강면의 한 봉우리인데, 아직 등산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또한 수리봉은 등산뿐만이 아닌 단양팔경의 절경인 중선암, 상선암 또는 사인암의 비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주흘산, 대미산, 황장산, 도솔봉, 소백산 연봉, 문수봉, 하설산, 월악산, 도락산, 황정산 등이 보인다.
대체로 바위산이나 동쪽 사면은 주로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한 숲으로 형성되어 있고. 바위는 단속적이고 정상 능선의 바위는 300m 될까 말까 한 길이이지만 유의할 위험지대며 바위 아래 사면엔 진달래 철쭉류도 있다. – 한국의 산하
황정산[黃庭山]
높이: 960m
위치: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수 아름다운 청풍명월의 고장 단양에는 숨어 있는 명산이 많다. 주변의 사인암 등 단양팔경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산중 하나가 황정산(959m)이다. 최근 들어서는 황정산 칠성바위가 신 단양팔경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세가 수려하다고만 해서 명산의 반열에 드는 것은 아니다. 명산이란 그에 걸맞은 고찰 하나씩은 품고 있는 법인데 신라 때 창건된 천년 역사의 대흥사와 원통암이 황정산의 산격을 뒷받침하고 있다.
원래 대흥사는 건평 6,000여 평에 오백 나한과 1,000명의 승려가 있었던 대가람이었으나 1876년 소실되었고 현재는 원통암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넓고도 미끈한 마당바위, 칠성암, 하얀 화강암, 노송과 고사목의 절묘한 비경, 누에바위, 괴물바위, 돌탑바위, 남근바위 등도 유명하다.
산행 길잡이
산행기점은 사인암 지나 황정리 황정 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소다. 남조천 건너 대흥사 계곡 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올산(858m) 지능에 솟아있는 남근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2㎞ 정도 더 걸어서 다리를 건너면 천수답지대가 나오는데 여기까지 지프가 올라올 수 있다. 원통암 요사 옆에는 칠성바위가 있다. 높이 약 30m에 수직으로 난 4개의 균열이 있어 흡사 부처님 손가락을 닮은 듯하다.
식수는 원통암에서 준비한다. 가파른 암릉길을 40여 분 오르면 주 능선 안부에 이른다. 여기서 810m 봉우리 북사면과 영인봉을 거쳐 남쪽 황정산 정상까지는 험준한 암릉길이라 주의를 요구한다. 해발 850m의 영인봉에서 내려서면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 한국의 산하
지난 6월 19일 청옥산, 삿갓봉 산행을 다녀온 후[산행기] 그동안 진행해 온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대한 산행을 정리하던 중 지금껏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몇 개의 산을 발견했다. 해서 산행 계획을 확인해보니, 이미 2019년 5월 계획은 다 세운 산이었다. 그중 몇 개의 산은 도저히 산악회에서 갈 거 같지 않은 산이라 - 산악회 게시판을 뒤지다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산이라면 빠뜨리지는 않았을 거다. -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다. 고로 비용이 많이 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 또는 무박 산행을 진행해야 한다. 해서 당일 산행이 가능한 산이 있나 확인하던 중 가까운 단양에 있는 황정산의 한 봉우리인 수리봉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애용하는 모든 산악회에 해발 1,000m가 넘는 산, 한국의 산하 기준 100 산 등 목표한 산이 없는 날 기차를 이용해 수리봉을 다녀오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그런데 여름휴가 일은 다가왔으나, 급격한 코로나 확산과 불볕더위로 가족이 모여 어디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방에서 뒹굴뒹굴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라 그중 하루를 택해 황정산 수리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이 더위에 산에 가느냐는 말도 나오지만,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 얘기고 실제 산은 평지보다 10도 가까이 기온이 낮고 바람도 자주 불어 피서지로 최고라, 와이프 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는 목요일에. 해서 '코레일톡'을 이용해 목요일 6시 50분 무궁화호를 예약했다. 그리고 경험을 토대로 며칠 간 산악기상 예보를 확인해 본 바 4일간의 기상 예보가 불볕더위로 같았다. 현지 날씨는 산이 있는 대강면을, 산악기상은 황정산에서 가까운 월악산을 기준으로 했다. 산악기상도 지역 차별이 있는 건지, 경상도는 28개 산의 예보를 제공하면서, 충청도는 7개에 불과하다. 고로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그나마 힘들게 선정된 가까운 산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계속 지켜본 당일 기상 예보에 의하면 불볕더위라 온 세상이 펄펄 끓는 와중에 날은 맑고 화창하니 주변 조망이 좋을 거라는 예측이다. 이에 오랜만에 무겁고 큰 카메라를 가져가기로 했다. 아울러 점심은 지난 3월 와룡산[산행기]이 마지막이었던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사실 집에서 먹는 라면은 뭘 첨가하던 산에서 끓인 라면 맛이 나오지 않아, 라면이 먹고 싶어가는 산행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등산화는 다른 이들의 산행기에 의하면 암벽과 암릉이 이어진다고 하니, ‘5.10’을 신기로 했다. 가볍기도 하고. 그리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맞춰 기존 1ℓ 물통에 500㎖ 물통을 하나 더 추가했다. 물론 라면 끓일 500㎖ 물은 따로 준비해 디팩에 같이 넣었고, 평소 들고 다니던 비상식 및 비상용품은 배낭에 든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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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토요 산행과 같이 5시에 기상해 볼일을 보고 산행 준비를 했으나, 점심으로 라면을 먹기로 했으니, 별도로 점심 준비는 않고 냉동실에 얼려뒀던 두 통의 물통을 꺼내 배낭 옆 주머니에 넣고, 냉장실에 있던 디팩을 배낭에 넣는 거 외에 준비할 건 없었다.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나니 할 일도 없고 해서 교통 앱으로 불광동행 마을버스 운행 상황을 보니 7분 45초 후에 동명탕 정류장에 도착한다고 해 원래 불광역까지 걸어갈 걸 전제로 집에서 나서기로 한 시각보다 3분 정도 빠른 5시 47분경 집을 나섰다. 그리고 5시 52분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이른 시각이라 승객은 많지 않아 여유롭게 앉아 청량리역까지 갈 수 있었다. 사실 애초 계획은 불광역까지 걸어가 6시 7분 차를 타고 열차가 떠나기 10분 전에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거였는데, 마을버스를 타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7분 정도 당겨져 6시 33분에 도착했다.
지하역사를 나와 단양행 열차를 타기 위해 지상 승차장으로 가니 이미 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야 단양이 목표나 열차의 최종 목적지는 부전이었다. 안동까지 가는 거라 알고 있었는데. 바로 열차에 타 배낭을 옆자리에 두고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와중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역시 열차가 좋다. 과거처럼 홍익회 요원이 카트를 밀고 다니며 술까지 판매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조용한 가운데 책을 읽다 보니 열차가 익숙한 곳을 지나고 있었다. 단양이다. 기차로 단양역에 온 건 2019년 8월 제비봉 산행[산행기] 후 2년 만이다. 당시만 해도 KTX 신설로 역사 및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공사가 완료된 현재는 잘 정비된 느낌이다.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승객이 열차에서 내렸다. 그중 나를 포함 등산객도 예닐곱 정도 된다. 지하 통로를 지나 역사 밖으로 나오려는데, 입구에 버스 시간 안내가 서 있었다. 이미 시간표는 가지고 있으나, 아무래도 이 시간표가 최근 거라 정확할 거라는 판단에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내가 타야 할 방곡행 버스 시각을 보니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9시 10분 차였는데, 안내판에는 9시 5분이다. 물론 단양역 기준! 현재 시각이 8시 50분이니 5분이라도 빨라졌다면 환영할 바다. 시각을 다시 확인하고 역사 밖으로 나가니 내리쬐는 햇볕 아래 십여 대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저 건너 버스 승차장은 햇볕을 가릴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그렇다고 역사 내가 아니면 햇볕을 피할만한 곳도 없어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버스 승차장으로 갔다. 이유는 시골 버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기점과 종점 출발 시각만 있을 뿐 각 정류장 시각은 경험과 산술적으로 계산해 산정하는 수밖에 없어서다. 다시 말해 각 정류장 도착 시각은 교통상황과 기사의 기분에 달렸다는 거라, 여차하면 놓치고 다음 차를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그럼 당연히 택시를 타야 하고.
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가 다만 정시에 기점을 출발했기를 빌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2019년에는 못 보던 게 보였다. 바닥이 유리인 전망대까지 다니는 모노레일 같은데, 당시에도 있었나? 해서 구글링해 보니 올 5월에 개통했단다. 어쨌든 호수와 주변을 구경하고 사진으로도 남기며 버스를 기다렸는데, 9시 3분경 버스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깜짝 놀라 뛰어가 목적지를 보니 내가 가야 할 방곡리가 아니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아닐 보내고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차를 기다리는데 9시 5분이 지났건만 보이지 않고, 6분에 반대편으로 버스가 올라왔다. 분명 단양으로 들어가는 버스임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50여 미터 떨어진 반대편 정류장으로 뛰어가 버스의 종점을 보니 예상대로 단양이다.
단양역 입구에 있던 버스 시간표에 의하면 9시 5분에 방곡리행 버스가 단양역을 출발한다는데 9시 10분이 다 되어감에도 버스는 보이지도 않는다. 우려했던 바다. 역시 9시 10분이 맞다. 그런데 9시 10분이 지났음에도 아직이다. 물론 최소 5분은 기다려 보고 Plan B를 가동해야 한다. 당연히 9시 15분까지 안 나타나면, 대기 중인 10여 대의 택시 중 가장 앞에 있는 택시를 타며 단양의 버스 시스템에 관해 한바탕 욕을 퍼붓는다. 단양을 위해 다행인 게 9시 11분경 단양 쪽 도로에서 달려오는 버스가 보였다. 이래서 시골 버스는 경험치 또는 산술적 계산에 의한 도착 시각, 최소 10분 전에 도착해 10분 후까지 기다려봐야 한다.
대략 5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버스에 타자마자 창가에 앉아 호수와 주변의 산을 구경하며 가고 있는데, 언젠가 본 암벽이 보였다. 사인암이다. 분명 여기를 왔었는데, 어느 산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달리는 버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방곡리가 가까워지자 정류장을 지나오며 하나둘 내린 승객 중 마지막 승객이 내리고, 인간이라곤 기사와 나만 남았다. 당연히 버스는 거리낌 없이 달리고 그런데 목적지인 방곡리가 가까워지자 도예마을? 이 비슷한 이정표가 도로 곳곳에 보였고, 뭔가 고인돌 같아 보이는 이 동네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돌집도 보였다. 도예 어쩌고 하는 장인이 만든 건물 같은데, 나처럼 예술에 문외한에게는 불협화음의 극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서 문외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달린 버스는 예상보다 12분 정도 빠른 9시 38분에 방곡리 종점에 도착했다. 물론 등산객에는 들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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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과거 까만 소 100 산에 속했을 때의 유물로 보이는 등산 지도와 수리봉을 소개한 안내판이 서 있었다. 산행 전 확인한 산행기 및 지도에 따르면 버스의 종점이 방곡리 오목내마을일 뿐이지 진정한 산행 들머리는 윗점마을에 있다. 오목내마을에서 윗점마을까지의 1.2km는 소위 얘기하는 접속 구간이다. 그런데 이 접속구간의 도로는 생각 이상으로 왕복 2차선의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였다. 그 도로를 보는 순간 내리쬐는 햇볕 속에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의 경사 1.2km를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그나마 위안을 얻을까 해서 등산 앱으로 현재 고도를 확인했다. 산행기를 보면 들머리의 해발고도가 600여 미터라고 했는데 그 차이를 계산하면 도로의 경사 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10시에 출발할 거로 보이는 버스가 주차해 있는 방곡리 종점의 해발 고도가 대략 500m 정도! 고로 100여 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힘이 더 빠지는 순간이다.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주차해 있는 버스를 뒤로하고 수리봉 들머리가 있는 윗점마을을 향해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가운데 "저기 주차해 둘 바에야 위에까지 태워주면 얼마나 좋아?"라는 별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들머리를 향해 가는데 왼쪽으로 쌍둥이 봉이 보인다. "혹시 저게 수리봉? 해발 1,000m가 넘는 산치고는 너무 낮은데!" 해서 수리봉은 저 쌍둥이 봉 뒤에 숨어 있을 거라고 결론짓고 가끔 야생화를 사진으로 찍기도 하며 계속 올라갔다. '포도인지 머루인지 아니 오미자?'도 찍고.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각임에도 살인적 불볕더위 속에 밭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김을 매고 있는 농부 서너 명도 보였다. 아마 더 뜨겁기 전에 일을 시작한 거 같은데, 어쨌든 이 산골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저 농부들과 나다!
위를 향해 올라가며 보니 왼쪽으로 사방공사를 한 물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계곡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 동네는 비가 오지 않았나? 그럼, 하산 시 계곡 적당한 소에서 알탕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올라 10시 정각에 수리봉 들머리에 도착했다. 버스 종점에 서 있던 안내판의 소요 시간 30분보다 10분 빠른 20분이 걸렸다. 하긴 아무리 오르막이지만, 잘 포장된 도로 1.2km에 30분씩 걸린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들머리에 서 있는 등산 지도를 보니 올라오면서 왼쪽으로 보였던 쌍둥이 봉의 오른쪽이 수리봉, 왼쪽이 신선봉이 맞았다. 그리고 수리봉까지의 소요 시간은 1시간 10분! 버스 종점에 있던 지도에는 1시간 30분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종점에서 들머리까지 소요 시간을 고려해보면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지도가 맞을 거로 생각하며 마침내 수리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과거 까만 소 100 산의 유산이지 등산로는 좋았다. 그 좋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갑자기 "왜, 까만 소가 황정산을 100 산에서 제외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2017년까지만 해도 100중 68위에 있었는데. 물론 가나다순이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암릉, 암벽 구간이 많아 위험해서가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나, 그거야 까만 소 마음이라. 역시 데크 계단도 있고, 위험한 암릉을 오르기 위해 릿지에 철봉을 박은 안전시설도 있었다. 까만 소에게 버림받은 후 인증꾼에게도 버림받아 관리가 되지 않아 철봉을 잇는 밧줄은 사라졌지만.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해 주변을 산세를 잠깐 조망하고 낙엽 쌓인 등산로를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헉헉대고 오르는데, 뭐가 팔짝하고 뛰어 앞으로 왔다. 개구리다. 그런데 색깔이 완전히 낙엽이다! 이런 색의 개구리는 처음 본 거 같다. 그런데 펄펄 날아다니는 그놈을 보자 갑자기 뱀이 떠올랐다. 이렇게 위장을 해야 한다면 포식자가 많다는 얘기고... 그럼, 뱀! 이런 논리 절차 없이 바로 뱀이 떠오른 스스로 감탄했다.
개구리를 지나쳐 올라가자 왼쪽으로 바위가 나타났고, 그 아래 나뭇가지에 산악회의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으나, 길은 직진하고 있었다. 그걸 보자 수리봉 산행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슬랩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진하는 길은 당연히 슬랩을 우회하고 있을 거고. 당연히 바위로 올라 위로 가니 예상대로 경고문이 있었다. 드디어 산행기에서만 봤던 수리봉 대슬랩을 오른다는 기대에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그리고 릿지에 한 발을 디디고 고개를 들어 전체를 보고 낙담하고 말았다. 북한산 기준 숨은벽에도 미치지 못하는 슬랩이다. 물론 숨은벽 대슬랩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어쨌든 슬랩으로 올라갔는데, 경사가 심하거나 미끄럽지 않았다. 옆으로 보이는 안전시설이 무색할 정도다.
릿지의 중간 지점에서 뒤로 돌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익숙한 또는 유명한 산이 보이는 거 같은데,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비록 별거 아닌 슬랩이나 그걸 오르는 건 역시 숨이 차 조망을 겸해 잠깐의 휴식 후 다시 릿지를 올라 10시 35분경 평평한 끝에 도착했다. 31분에 오르기 시작했으니, 비록 중간에 잠깐 쉬었으나 그래도 4분 정도는 오르는 릿지다. 그 릿지 끝 평지에 도착해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물통을 꺼냈다. 이번 산행에는 폭염주의보에 따라 1ℓ, 0.5ℓ 두 개의 물병에 얼음을 얼려왔다. 보온, 보랭 성능이 좋지 않은 500㎖ 물병은 이미 다 녹은 상태나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어 그 물을 먼저 마셨다. 그리고 한국 산이 거의 다 그렇듯이 비록 능선 길을 감에도 울창한 숲이 햇볕을 가려줘 굳이 모자가 필요 없어 그것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기 전 등산 앱으로 수리봉 정상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사실 들머리에 있는 지도에 있는 수리봉과 신선봉이 내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들머리로 향할 때 왼쪽에 있던 쌍둥이 봉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는데, 지도가 믿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길은 너덜로 바뀌었다. 역시 너덜은 등산객이 계속 다니지 않으면, 인적이 사라져 길을 잃기 쉬운데 수리봉 너덜 길도 마찬가지였다. 그 너덜에서 길을 찾으며 18분가량 올라가자 갈림길 능선에 도착했다. 내가 가진 두 개의 등산 앱 '트랭글', 'e-산경표' 그 어디에도 없는 갈림길이다. 물론 '수학봉'도 없다. 수학봉이야 어떻든 수리봉이 180m 남았다는 게 중요하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과거 기도처로 보이는 작은 암굴도 있었다. 그 작은 암굴을 지나 20여 미터를 가자 숲사이로 평지에 비석 같은 게 보였다. 정상이다! 현재 시각이 11시 5분이고 들머리에서 10시에 출발했으니 1시간 5분 만에 도착했다. 버스 종점 안내판에 따르면 들머리에서 수리봉까지 1.9km, 수학봉 갈림길 이정표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1.4km인데, 직접 올라보니 1.4km가 근사치에 가깝다. 1.4km에 1시간 5분이라는 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깔딱 산행 중에는 양호하다. 물론 땀으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지만.
122번째 방문한 해발 1,000m가 넘는 산 수리봉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게 까만 소 100 산에 선정되면서 세운 거 같은데, 버림받았으니, 세상사 모르는 거다. 늘 그렇듯이 정상석 두 개를 각각 사진으로 남긴 후 배낭을 벗어 바닥에 두고 그 위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이후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아래서 봤던 쌍둥이 봉의 다른 하나인 신선봉을 향해 출발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수리봉에서 400m 거리! 신선봉에 오르기 위해 수리봉 정상에서 내려가는데 숲사이로 저 멀리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소백산이다. 천문대를 중심으로 소백산을 사진으로 남기고 더 내려가니 철계단이 나타났다. 그 철계단 옆 전망대에서 왼쪽 봉우리 사이에 월악산 정상이 보인다. 거리상으로 봤을 때 소백산이 월악산보다 가까웠다. 내가 지도를 보고 알고 있었던 거와는 다르다. 그리고 왜 이 동네 암자나 펜션이 월악산이 아닌 소백산을 언급하는지 알 거 같았다.
철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보니 오른쪽으로 철계단이 없던 시절의 안정 시설이 보였다. 철계단보다 저게 더 나은데, 이 역시 까만 소의 농락이 아닐까? 계단을 다 내려가자 전망대가 나와 거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아래로 개미새끼 하나 움직임이 없는 버스 종점이 보이고 그 외에는 전부 산이다. 물론 뒤에는 수리봉이 앞에는 신선봉이 있다. 그런데 전망대 바로 아래에 대리석이 있어 내려가 보니 추모석이다. 2005년이면 안전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된 산꾼에게 인사 후 급경사의 철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앞에 보이는 신선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보니 암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능선 좌우는 낭떠러지다. 물론 그 능선 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바위가 튀어 올라, 안 그래도 위험한 암릉이 오도 가지도 못하는 함정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중에 하나가 암릉에서 처음 만나 바위다. 당연히 까만 소에 속아서 그 바위 중간에 쇠봉을 박고 쇠줄을 잡고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으나, 그걸 보는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났다. 날것 그대로의 암벽을 빼앗아가서. 까만 소를 싫어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뭐든 까만 소는 까만 소고 내 갈 길은 가야 해 가능하면 쇠줄을 무시하고 건너가려 했으나, 쇠줄이 아주 애매한 위치에 있어 손을 안 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위를 건넌 후 날카로운 바위 정상으로 계속 가다 미끈해서 굴러떨어졌다. 뛰어난 순발력 덕에 다행히 절벽 아래까지 떨어지지 않아 큰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손과 발에는 자잘한 기스가 많이 났다.
암릉을 지나자 다시 관목지대를 뚫고 가는 흙산의 등산로로 변했다. 아기자기한 암릉이 끝난 걸 아쉬워하며 아무 생각 없이 관목을 헤치며 신선봉 정상을 향해 가는 데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갈색? 누런색의 굵고 긴 게 보였다. 뱀이다! 정말 지난 운문산행[산행기] 때도 그랬지만, 정확히 앞일을 예측하는 자신에 다시 놀랐고, 그보다는 최근 10여 년의 산행 중 많은 뱀을 봤으나 이렇게 굵고 긴 놈은 처음이라 기겁했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놈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주 어려 경험이 없는 놈을 빼고는 대부분 길을 가로질러 제 갈 길을 가던가 아니면 인간 흉기를 피해 도망가니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인간 흉기도 갈 길을 가면, 피차 아쉬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어서다. 그런데 이놈은 아니다. 느긋하게 관목으로 올라가 아주 유연하게 관목 가지를 타고 전진한다. 그리고 계속 위로 올라가 머리의 방향을 등산로 쪽으로 향한다. 아무리 내가 간덩이가 커도 이런 상황에서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변을 두리번거려 나무작대기를 하나 주웠다. 그리고 관목을 헤쳐 그놈의 모습을 다시 자세히 관찰한 후 막대기로 툭툭 쳐 등산로에서 벗어나게 한 후 재빨리 지나간 후 다시 그놈의 전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뱀? 아니 구렁이와 대략 3분가량 밀당한 후 앞에 보이는 신선봉을 향해 가는데, 가는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나뭇가지를 잡고 바닥을 짚었던 모습에서 나뭇가지와 땅을 짚기 전에 움직이는 건 없는지 살펴본다. 특히 관목 지대를 지날 때는 이놈을 보기 전에는 앞을 가리는 관목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으나. 본 후에는 지나기 전에 혹시 뱀이 있나 확인 후 조심스럽게 관목을 헤치고 갔다. 그러니 과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조금 전보다 속도가 많이 떨어졌다. 이 와중에도 뒤로 보이는 수리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3분 정도 조심조심 관목을 헤치고 위로 올라가니 갑자기 앞이 뻥 뚫린다. 신선봉이다. 이 봉도 의외다. 평평한 평지에 돌무더기 쌓고 그걸 기단으로 돌탑을 세우고 옥개석에 '신선봉'이라 새긴 목판을 놓았다. 물론 정상에 도착하기 50여 미터 전에 등산 앱이 도착했다고 음성으로 알려줬으나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수리봉에서 신선봉까지 400m에 불과한 거리를 24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역시 신선봉에서도 수리봉과 같이 배낭을 눕혀 놓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그리고 차가운 물 한 모금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이번 산행의 주봉인 황정산 정상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갈림길을 지나 11시 41분경 전망대에 도착해 앞을 보니 마치 중식 칼처럼 생긴 봉우리가 보인다. 그 아래에도 사찰인 거 같은 건물도 있고. 당연히 그 봉우리가 지금 목표로 가고 있는 황정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정산 주변에는 대흥사가 있는데, 앞에 보이는 건물은 사찰이라고 보기에는 달랑 건물 하나뿐이라 대흥사는 아니고 그럼 뭐지? 그 건물의 정체를 추측하며 계속 갔다. 그리고 그 앞에 또 쌍둥이 봉이 보였다. 황정산 직전에 있는 왼쪽에 있는 게 남봉이고, 오른쪽 뒤에 있는 건 지도에 이름은 없으나 북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시 59분에 '석화봉' 갈림길을 지나 거의 100여 미터마다 있는 사유지라 입산 금지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남봉을 향해 가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행 후 하산주를 제대로 마시려면 점심을 일찍 먹는 게 좋을 거 같아 적당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12시 30분경 등산로보다 1m가량 높은 언덕이 비록 바위는 아니나 라면을 끓이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보여 등산로에서 벗어나 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모든 게 든 디팩과 라면을 꺼냈다. 오랜만에 산에서 끓이는 라면이다. 12시 44분경 라면이 다 끓어 라면에는 김치라는 공식에 따라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산에서 라면다운 라면을 맛있게 먹고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1시 6분에 언덕 식당을 떠나 다시 등산로로 들어갔다.
식당을 떠나 깔딱을 헉헉대고 10분가량 오르자 빗재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기둥에 누군가 "남봉"이라고 써놓았다. 등산 앱의 지도에도 빗재 갈림길에 남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거로 봐서 남봉이 맞으나 정상석 따위는 없었다. 멀리서 쌍둥이 봉을 보고 남봉이라고 생각했던 봉우리가 정확했다. 그런데 이정표에 의하면 남봉에서 황정산까지 500m에 불과했다. 고로 쌍둥이 봉 중 내가 북봉이라고 멋대로 이름 지은 봉우리가 황정산이다. 그럼 중식 칼은? 해서 등산 앱의 지도로 황정산 주변의 산을 확인했다. "도락산"이다! 2018년 7월 7일 친구들과 같이 올랐던 도락산! 버스로 들머리로 오며 봤던 사인암을 날머리로 했던, 도락산[산행기]! 자기가 있는 산에서야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나 바로 옆 황정산에서 보는 모습은 중식 칼! 울창한 숲 사이로 쌍둥이 봉 중 황정산을 구경하며 계속 전진해 1시 31분에 철봉과 철심으로 안전시설을 설치한 기차바위를 지났다.
기차바위 전망대에서 다시 도락산을 자세히 보고 100여 미터를 가 황정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1시 39분이다. 다른 봉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다음 봉우리인 영인봉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적힌 찢어진 플래카드가 있었다. 경고문의 주 내용은 '황정산~영인봉~원통암' 구간은 암릉과 직벽으로 위험하니 대흥사골이나, 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라는 거다. 해서 주변에 갈림길이 있나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았고 등산 앱의 지도에도 그런 길은 없었다. 물론 위험하다니 영인봉으로 갈 거고, 그러려고 온 황정산이나, 갈림길이 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어쨌든 이번 산행 최고의 기대 구간이 시작된다는 거다! 황정산을 떠나 영인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부처 입상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보였다. 구조물의 크기로 봐서 암자는 아니고 절이다. 그럼 대흥사다.
대흥사를 따라 위로 올라오는 능선, 전망대에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영인봉이다. 위치상, 거리상! 아주 당연히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하는데, 그게 암벽이라는 거다. 다시 기차바위 같은 안전시설이 된 열차바위? 암릉을 따라 내려가니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밧줄이 설치된 암벽을 만났다. 그런데 왜 여기에 밧줄을 설치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뭐 그러려니 하고 계속 가니 이번에는 그래도 왜 설치했는지 이해가 되는 암벽이다. 그런데 밧줄을 잡고 직벽을 내려가기보다는 그 끝에 있는 바위의 갈라진 팀을 잡고 내려가는 게 더 쉽다. 물론 그렇게 내려왔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정규 등산로가 아니 암릉을 따라가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코스에서 가장 긴 줄이 설치된 곳에 도착했는데 ‘밧줄을 설치한 이유는 알겠으나, 꼭 있어야 했느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황정산 정상에서 내려와 앞을 보니 바윗덩어리 영인봉이 우뚝 솟아 있다. 그런데 그 바윗덩어리를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아 2시 27분에 이정표에 누군가 급조해 붙여 놓은 "영인봉"이라는 표지를 보고 정상에 도착한 걸 알았다. 이제부터는 이 구간 최고의 난 코스라는 원통사까지의 암릉 및 암벽 하산 구간이다.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해 영인봉 다음 암봉을 우회하자 원통암 갈림길이 나타났다. 원통암까지의 거리 500m! 그런데 이정표의 방향이 아주 애매하고 마침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에 길이 있었다. 해서 뭔가 꺼림칙했으나 일단 가리키는 방향으로 올라가자 "입산 금지" 경고판이 나타났다. 무시하고 경고판을 돌아 올라가는데, 경고판 기둥 한쪽 면에 '노고지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산꾼이 쓴 "자일 없이는 가지 마세요. 위험 절벽(노고지리)"이라는 글이 보인다. 그렇다고 안 갈 인간이 아니라 무시하고 올라가 아래를 보니 정확했다. 애당초 길도 없었다. 해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내가 생각한 원통암 방향으로 하산했다.
원통암으로 향하는 길에는 거의 50m 단위로 알림판을 나무에 달아놓았는데, 굳이 갈림길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달아놓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정작 갈림길에 있는 안내판은 망가져 방향을 알려주지 못했다. 해서 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로 원통암의 방향을 확인하고 그걸 등산 앱의 지도에 표시했다. 갈림길에서 왼쪽의 급경사로 하산하는 게 원통암으로 가는 길이라 급경사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사가 심해 밧줄까지 설치해 놓았으나 굳이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렇게 내려가 100여 미터의 숲을 지나자 숲 사이로 산행기에서 많이 봤던 바위가 보였다. '손가락바위'로 원통암에 도착했다.
일명 '손가락바위' 혹자는 부처의 합장한 손 모습이라고도 한다. 나는 부처의 손으로 보인다. 부처의 손 하면 떠오르는 건 서유기지만. 그 합장한 손을 제대로 찍기 위해 원통암에서도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개가 요란하게 짖는다. 물론 소리를 듣자마자 얼음! 어떻게 최근 산행에선 멍멍이에게 시달리는 중이다. 가장 최근은 지리산 묘향암[산행기]! 개는 짖고, 짖지 말라고 달래는 인간의 음성, 아니 원통암 승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어쨌든 개와 친해져야 하는 입장이라 꼼짝 않고 고개만 들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니, 백구와 승려가 위치 좋은 전망대에서 내려온다. 내가 두 생명의 불도를 방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뛰어내려온 백구가 요란히 내 주위를 돌며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 짖는다. 물론 이놈이 물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 뭘 하든 놔두고, 뒤따라온 승려에게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니,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등산객이고, 이 더위에 여길 왜 왔냐고 묻는다.
산이 더 시원해 피서 산행 중이라고 얘기하고, 합장한 손을 가리키며 '위로 올라가면 더 잘 볼 수 있나요?'하고 물었다.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에 승려와 백구가 암자로 가는 동안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이후 원통암 약수가 유명하다는 말에 약수로 가 배가 터지게 물을 마시고, 물통에 가득 담은 후 물값을 복전함에 넣었다. 그 사이 백구와는 친해져 둘이 조금 노닥거린 후 본존불을 모신 전각으로 각 합장으로 본존불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하산을 시작하려는데 오랜만에 외부인을 만나서인지 승려가 차 한잔하고 가라는 걸 차 시간 때문에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기약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데 문제가 푸르미(백구의 이름이 '푸름'이다)가 앞장서 가는 거다. 마치 하산길을 안내하듯이! 암자에서는 돌아오라고 부르고, 나는 이제 됐으니 집으로 가라고 소리쳐도 지 할 짓 하며 계속 앞장서서 갔다.
앞장서 달라는 푸르미는 특히 길을 벗어나 바싹 마른 계곡 위주로 다녔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으나 그나마 물이 조금 고여 있는 소에서의 행동을 보고 나와 같이 알탕할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는 걸을 알았다. 물에서 나온 모든 생명체는 더우면 물을 찾게 마련인가 보다. 푸르미가 세수와 세족으로 땀을 식힌 곳에 가 보니 흙탕물이다. 부러운 놈! 이미 알탕은 포기했고, 세수와 세족을 할 수 있을 만한 물을 찾고 있는 처지에서 정말 부러웠다. 그런데 이미 많이 내려왔건만, 이놈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걱정은 되나, 돌려보낼 방법이 없어, 그냥 내 할 일만 하기로 하고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3시 44분경 대흥사 뒷마당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승용차가 한 대, 서 있고 그 기사와 푸르미가 아주 잘 아는 사이였는지 둘이 노는 소리가 들리더니 같이 사라졌다. 내 생각으론 승용차 주인은 대흥사의 승려고 푸르미는 대흥사와 원통암을 오가며 노닥거리는 팔자 좋은 놈이라는 거다.
푸르미는 제집을 찾아갔으니 이제 내가 문제다. 이미 대흥사에 도착했으니, 더 내려가 봐야 씻을 만한 곳이 있을 거 같지 않아, 푸르미가 세수와 세족을 했던 계곡에서 그나마 씻을 만한 곳을 찾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에 계곡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푸르미와 헤어진 곳에서 20여 미터를 올라가자 그나마 발이라도 담글 수 있을 만한 소가 나왔다. 내려오면서 계속 관찰해서 알지만, 더 가봐야 이 이상 가는 곳이 없다는 걸 아니, 바로 배낭을 벗어 바위에 두고 윗도리 벗어 땀이 마를 수 있도록 바위에 펼쳐 널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물로 들어갔다. 대략 5분 정도 씻은 후 복장을 재정비하고 간식으로 들고 간 사과를 씻어 손에 들고 계곡을 나와 대흥사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흥사 뒷마당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대흥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곳으로 가다 보니 도로가 좌로 꺾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여기 도로가 있는데 앞에 또 도로가 있을 거 같지 않으니 당연히 절의 일주문을 비롯한 전면이 도로를 향해 있어야 하는 데 아니었다. 대단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빠른 하산이 목표라면 절로 들어갈 거 없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절이 도로를 기준으로 뒷면을 보여주고 있으니 앞에 더 빠른 길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부처 입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단양역에서 5시 12분 KTX를 탈 예정이라 서둘러야 했다. 사과를 베어 먹으며 절로 갔으나 내가 생각한 절이 아니라 미륵불전었다. 대개 진신사리를 보관한 탑이 있는... 고로 본사는 저 아래에 있었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절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다시 돌아 나와 처음 봤던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이 글을 쓰며 등산 앱의 지도를 확대해 길을 찾아보니 푸르미와 승려가 만났던 장소, 즉 차가 주차해 있던 곳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도로가 다 그렇듯이 갈지자를 쓰고 있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 4시 15분에 정규도로와 만났다. 예상대로 대흥사는 도로를 따라 위로 더 올라가야 하고, 이번 산행의 날머리로 생각한 황정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해서 물소리가 요란한 계곡을 따라 난 아스팔트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땡볕 아래 걸어가며 바짝 마른 계곡에서 씻은 걸 후회했다. 이런 계곡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지체하지 않고 내려와 다 벗고 뛰어들었을 거다. 드론 실기 교육장을 지나 계속 내려가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계획은 사인암까지 내려가 버스를 이용해 단양역으로 가는 건데, 사인암까지의 거리가 만만찮고, 이미 5시 12분 KTX를 탈 수 있는 버스는 떠난 후였다. 해서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단양 콜택시로 전화했다.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택시 기사의 전화를 받고 더 내려가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늘로 들어가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황정산, 수리봉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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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30분경 도착한 택시를 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기사에게 기차 시각에 맞출 수 있는지 물었다. 충분하다는 답에 '코레일 톡'을 이용해 5시 12분 단양역발 청량리역행 ‘KTX-이음’의 여유 있는 한 자리를 예약했다. 불볕더위 속 산행에 관해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단양역이다. 4시 51분, 택시 요금 17,700원! 양호하다. 일단 편의점이 있나 역사 내 승객 대기장으로 갔으나 예상대로 없었다. 다행히 음료 자판기가 있어 녹차를 하나 뽑아 들고 열차 승차장으로 갔다. 먼저 녹차를 원샷한 후 승차장 내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대기실로 들어가 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5시 10분경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5시 11분이라는 거의 정각에 도착한 처음 보는 KTX-이음을 사진으로 남긴 후 탔다.
열차는 쾌적했으나 몸 상태가 책을 볼 상황이 아니라 패드로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청하기도 하며 청량리역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멍한 상태로 있었으나, 원주에서 탄 승객이 빈자리도 많은데 하필 내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펼쳐 놓았던 모든 짐을 들고 두 자리가 빈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촌극이 있었다. 굳이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겠다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야 없지! 6시 32분 청량리역에 도착해 경의·중앙선을 이용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7시 40분경 집에 도착해 입었던 모든 옷을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리는 동안 소나기로 온몸의 땀을 씻은 후 삼겹살과 문어숙회, 밥으로 무사 산행을 기념한 하산주를 마셨다.
애초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에 따라 ‘오목내마을 →(접속 1.2km)→ 윗점마을 → 무덤 → 슬랩 → 수리봉 → 신선봉 → 석화봉 갈림길 → 남봉 → 기차바위 → 황정산 → 황정리 갈림길 → 원통암 갈림길 → 원통암 → 미륵불전 → 미륵불전 갈림길 → 드론 실기 교육장’의 11.16km(트랭글 기준), 6시간 52분의 황정산, 수리봉 오지 산행이었다. 이동 6시간, 휴식 52분!
가볍게 암릉과 암벽을 즐길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 산행이 가능한 황정산이란 아주 훌륭한 산을 발견했다.
하도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바로 옆이나 앞산을 이미 다녀갔다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으나, 산행 기록을 확인하던 중 알았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 산악회 대비 비용은 많이 드나 역시 조용하고 여유 있는 산행에는 적격이다. 문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산이 드물다는 건데 남은 28개의 산은 가능하면 대중교통으로 다녀볼 생각이다.
첫댓글 아슬아슬하구만
?
인생이 그렇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