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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숟가락
저- 박문기
출- 정신세계사
독정-2018.2. 28. 수
ㆍ콩은 한 깍지 속에 세 개가 다 여물어야 잘 되었다 한다. 매 각지마다 터질 듯이 불룩해야 알찬 수확을 할 수 있다. 풍년이라는 풍자는 바로 콩이 매 깍지마마 터질 듯이 잘 여물어 산처럼 수확한다는 형상을 그려놓은 것이다.
ㆍ<콩파-초콜렛 전쟁과 연결하여 >
콩나물은 천 년 동안 전해오며 신께 바치며 먹어온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근래에 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 땅에서 건너간 어느 유학생이 전파했다. 왜정 시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어느 유학생이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콩나물을 길러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것을 보고 미국인디 웃으며 야유했다. 각 신문에서도 콩의 뿌리를 길러 먹는 미개 고려인의 식생활을 질타하여 보도. 한데 그곳의 저명한 식물학자가 이 콩나물을 분석해본 결과 깜짝 놀랄 만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다고 신문에 보도되자 그때부터 파란 미국인들이 눈을 더욱 새파랗게 뜨고 콩나물을 사먹겠다고 달려들어 유학생은 상당한 재산까지 모았다. 서울 모 사립대학을 설립한 분이 바로 콩나물 장사 유학생이었다. 대개 씨앗은 물에다 불려 싹을 틔워보면 싹이 먼저 나오거나 뿌리와 싹이 동시에 나온다. 그렇지만 콩이나 녹두 콩 과류에 속하는 씨앗은 뿌리가 먼저 나온다. 대체로 뿌리가 먼저 나오는 콩과류 씨앗은 거의 거름을 주지 않아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콩이나 팥 등은 잎이 퍼지면서 뿌리에 흙덩어리가 생기고 그 흙덩어리가 능히 공기 속의 질소를 빨아들이는 식물이다. 콩, 팥, 녹두 등의 농사를 짓고 나면 그 땅이 비옥해진다. 이미 비옥한 땅엔 콩을 듬성듬성 심어야 하고 때맞추어 웃자란 콩순을 집어주어야만 가을에 제대로 여문 콩을 수확할 수 있다. 이렇듯 재배하기 쉽고 재배하면 땅까지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콩이 사람 몸에도 좋다. 육류나 어패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 이 콩을 솔잎과 조화시키면 사람 몸을 가볍게 하고 늙지 않게 하는 선식이 괸다. 선식을 하며 신선이 되는 이들이 늘었다. 콩농사란 햇볕이 잘 들고 물 빠짐이 좋은 땅이라 제대로 짓는다. 그늘진 숲 속이나 표토가 유실되는 산 중턱에서는 지을 수 없다. 콩의 원산지로 알려진 러시아의 연해주는 1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발해 영토였다. 발해의 대당 최대수출품목이 바로 콩이었다. 발해는 그 많은 양의 콩을 수출하기 위해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콩 두 자는 바로 콩을 상징하는 두 자를 씀으로 비롯된다. 결코 남의 콩을 먹고서 우리 머리를 제대로 깨우쳐나가기란 어렵다.
<숟가락 서푼- >
스푼이란 월내 서양에 없었다. 한국에서 전래되었다. 어느 서양인이 표류하여 조선에 와서 조선 관리들이 그를 잘 보호했다. 그는 조선 음식을 숟가락으로 먹으며 편리함을 느꼈다. 밥상에 놓인 유기그릇이 다 금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자신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관리들을 따라 조선 시장을 구경하며 점심 무렵에 허름한 유기전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토록 허름한 점포에 황금으로 만든 각종 그릇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기가 가장 편리하게 음식을 먹었던 것도 번쩍거리며 다발로 묶여 있었다. 때마침 유기전 주인의 아내가 점심밥을 챙겨와 그 편리한 것으로써 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가 먹을 때보다 더 편리한 것이다. 국물 같은 음식류가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고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 그는 손으로 숟가락을 가리키며 서양말로 “이게 뭐냐?‘ 물었다. 유기전 주인은 가격을 묻는줄 알고 계속 숟가락질을 하면서 왼손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벼보였다. 우리말 ’스푼이다‘ 했다. 한 푼, 두 푼, 세 푼 이라는 뜻으로. 유기전 주인 생각엔 세상에 숟가락 없는 나라는 없을 터이고 가격을 묻는다 생각했다. 그 말을 외곡인은 저 편리한 것이 ’스푼‘이라는 거구나 여기고 ’너네 나라 세 가지로 돼 있는 포크처럼 이렇게 음식을 먹는 데 쓰는 것이다.”로 해석했다. 한국의 숟가락이 서양에서 스푼이라 했다. 선조 15년(1582)에 서양인 마리이가 조선에 포착되어 돌아간 일이 프랑스에서 숟가락을 쓰기 시작한 시기와 2년 차이만 난다. 숟가락을 존상하는 어른의 가르침
ㆍ굽힘에 이로운 것은 폄에는 이롭지 못하다. 벌레 잡는 법-물 한 말에 설탕 한 그릇 풀고 밀가루 한 그릇 고루 타 채소에 뿌려 벌레가 제 몸을 구부리지 못하게 코팅, 오후 4시경을 택한 것은 채소의 탄소동화작용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채소는 밤이 되면 뿌리로 수분을 빨아올려 밀가루 성분의 풀기와 설탕 성분의 끈끈함을 희석시키고 땅으로 흘려보낼 수 있지만 벌레는 이미 그로써 코팅 되어 몸을 구부리지 못하고 호흡도 못 하여 뻣뻣한 채로 있어야 할 것이다. 이튿날 벌레들은 채소를 먹지 못했고 햇볕을 피해 숨지도 못했고 몸을 구부리지 못한 채로 힘없이 있었다. 오후 4시 경에 다시 한 번 그렇게 했더니 벌레들이 완전히 박멸되었다. 그 해 채소농사도 다들 무난히 지었다.
ㆍ임능은 능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능한 것에 현능은 어질고 능하다는 뜻 지능은 지혜롭고 능하다. 재능은 재주 있고 능하다는 뜻
만약, 어질지 못하고 능하기만 하면 아랫사람을 부릴 수 없고 지혜롭지 못하고 능하기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재주가 없고 능하기만 하면 크게 떨치지 못하는 법. 옛날 단군은 삼능(현능. 지능, 재능)을 지극히 귀한 보배로 여겨 각 그 일을 맡겨 크게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었다. 홍익인간이란 이런 연유로 전해진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전쟁이란 남자들의 몫이다. 그것도 가장 미천한 신분의 남자들이 맨 앞에서 맞서 싸워야 했다. 농촌에서 품삯을 주고 부리는 일꾼을 놉이라 하는데 였적 노비를 한 소리로 줄여 놉이라 하고 있다.
ㆍ지금 우리는 반만 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말로는 그러면서 반만 년 동안 유구히써왔던 참글을 버리려 한다. 다들 한글만이 오직 우리의 글,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녕 그렇다면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이전의 역사와 문화는 어느 나라 것인가. 설사 이 문자가 중국 문자라 해도 반만 년 써왔기 때문에 감히 버릴 수 없다. 하물며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 비롯된 글자이고 우리 발음만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으면 우리만이 지금까지 매 글자마다 다 단음으로 발음 할 수 있는 문자이다. 이 음서 자체가 진퇴의 묘리가 있는 문자임을 모르고서 문장의 어순만 내세워 우리글 아니라면 바이 입은 여자를 남자로 여기는 격이다.
ㆍ기차란 끓는 물 기운으로 기관을 움직여간다는 증기기관차를 줄인 이름이다. 우리는 우리의 옛말이 찾아 들어왔는데도 무조건 외래어라 하여 소외시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왜정시대에 수레를 일컫는 ‘구루마’가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일본말이라 한다. 순수 우리말인 달구지, 손수레 등으로 일컬어야 한다는 거다. 사실 ‘구루’라는 말은 굴러간다. 구르다 등 우리 옛말인데도 . 중국 산동지방의 방언에도 바퀴를 구루하는데 중국 언어학자들은 그 어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자로나 성음으로나 전혀 해석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로근 그것이 둥글기에 구르다는 뜻으로 당장 알아들을 수 있는데.
ㆍ5.4 운동기의 언문일치 운동으로 일반 대중이 널리 쓰는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입말, 즉 백화로써 쓰고 읽게 되었다. 대략 그런 백화를 기초로 하여 중국 공통어인 국어, 보통어를 정하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 중국어는 우리가 쓰는 글말과 완전 다른 것이다. 문언문에 능통한 엣날 진사님이 지금 있다 해도 저들의 백화라는 입말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려면 문언문이 아닌 백화를 듣고 흉내내기가 가능하다. 문언문이란 이 문자를 쓰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라도 다 통할 수 있다. 그러기에 공자도 역의 건, 곤, 양괘를 풀이할 때 문언 왈 운운하였다. 즉 글말로 이르자면 이러이러하다는 뜻을 말씀한 거다. 이로 미루어보더라도 원래 중국인들이 우리 글말을 썼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샘골풀이>
태총 인류의 생활은 물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리라. 아마도 원시인이라는 인간의 조상들은 조개를 주워먹고 고기를 잡으며 짐승을 사냥하고 방복하는 그들의 유랑생활을 이어가면서 늘 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으리라. 물이 있는 곳에 터전을 잡아 샘터를 찾으면 산신과 용왕께 감사드리고 그 주위를 정결히 하고 그 샘물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잘 꾸며놓고서 야생의 곡류인 콩 등을 재배하며 살았으리라. 천연의 샘물에 인공인 우물을 파 마을을 형성하고 공동생활을 하며 부족장이 생기고 다른 마을과 교섭. 농경에 눈을 뜨게 되고 물건을 서로 바꾸어 쓰고, 그 장소가 바로 우물가였으리라 우물에는 늘 물을 길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적당한 흥정이 성사되기 때문 지금도 물건을 거래하느 곳을 이라 한다.
ㆍ디딜방아가 있는 헛간은 칸막이가 되어 있고 칸막이 한ㅉ족이 터져 있어 방앗간 구성에서 키질을 하며 왕겨가 헛간의 거름 쌓아두는 데로 다 날아가게 되어 있다. 헛간 구석에 항아리를 묻은 변소가 있고 변소를 들락거리는 문은 가마니를 터서 매달아 놓은 거적문이었다. 항아리에 모아진 똥오줌은 거의가 밖으로 낼 일이 없었다. 갂금 왕겨에 부려주면 좋은 거름이 되었다. 우리 집은 해마다 다른 집보다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다. 화학비료가 귀했던 시절엔 보리농사는 억지농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름이 많이 드는 농사였다. 우리 집에선 겨울에 서당방을 차리기도 했다. 서당방을 차리면 여러 아이들이 우리 집 헛간에 놓아둔 오줌통에 오줌을 쌌기 때문에 거름을 얻는 이익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놈은 오줌이 마려우면 꼭 제 집으로 달려가 싸고 오는 놈도 있었다. 그놈은 오줌이 그러할진대, 똥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놈이었다. 방아를 찧어도 제 어머니께 우리 거름무더기ㅉ족으로 키질을 못하게 하는 놈이었다. 따로 한쪽에 키질을 하게 하여 왕겨를 싹싹 쓸어갔다. 우리 집에선 변소엘 가려면 헛간 거적문 앞에 이르러 먼저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두 번 했다. 그 안에서 같은 헛기침의 답이 없으면 변소에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음이 확인되어 들어갔다. 그 헛기침이 바로 측신께 알리는 방법이란다. 그때는 대개 변소를 측간이라 불렀는데 측신은 측간을 지키는 신을 말함이다. 지금 생각하면 드나드는 데가 거적문이라서 안에서 잠글 수도 없거니와 두드리는 소리로 신호를 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