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경 선교사(목사)-천국서 먹은 생명수 덕에 40일 뇌사상태서 깨어나
유럽 최대 한인기도원 설립.... 망가진 모든 신체 조직 깨끗이 회복
김화경 선교사(유럽 최대 기도원 ‘성령기도원’ 설립자, 독일 브레멘순복음성령교회)는 40일 동안 뇌사 상태로 있는 동안 이층천과 하나님이 계신 삼층천을 다녀왔다.
그 후 기적같이 살아났고, 철저하게 망가진 몸의 모든 기능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원인도 모른다는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12살 이전에 고열로 죽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2000년 2월 독일에서 나팔관에 피가 차 수술을 한 뒤 한 달 만에 한국 부흥집회를 가지 위해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내 배안의 핏줄이 터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이화여대 목동병원에 입원을 했다.
혈소판의 수치는 정상인의 경우 15만에서 40만/ul이다. 6만 이하 떨어지면 위험하고 2만 이하로 떨어지면 죽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의 혈소판 수치가 9천으로 떨어졌다.
의사는 “시신경이 다 터져 맹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뇌신경이 다 터져버렸고, 온몸의 핏줄이 다 터져버렸다고 했다.
40일 뇌사에 들어간 첫날이었다.
주치의는 “벌써 혈소판 수치가 500으로 다운되면서 온몸의 핏줄이 다 터져버렸으니 장례를 치르라”고 그랬단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온 가족이 병원에 모였다.
독일에서 막 도착한 남편에게 사인을 해야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남편 이 목사님이 거절했다.
“우리 김화경 선교사, 내 와이프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런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 나가세요. 장례 안 치르니까요. 다 돌아가세요.”
주치의에게도 부탁했다.
“이 산소 호흡기를 뽑지 말아 주세요.”
내가 죽어 이층천에 있었다.
이층천에서 죽어 있는 나의 모습을 봤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한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곳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제 옆에 누웠다.
기계에서 “띠-띠-띠-띠-”하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지옥의 사자가 이 청년의 이름을 부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지옥의 사자는 뿔 달린 무서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림에서 본 것과 똑 같았다. 아주 짙은 회색 망토를 입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음흉한 모습이었다.
지옥의 사자가 침대 옆에 서니 청년의 심장박동이 멈췄다. 청년이 죽었다.
청년의 엄마가 오열했다.
“아들아, 아들아”
울고불고 난리 났다.
내가 40일 만에 깨어났다.
남편에게 펜을 달라고 부탁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다.
“여보, 몇 월 며칠 몇 시에 동현이란 청년이 죽었다. 지옥 갔다.”
이 편지를 본 남편이 내 뺨을 때렸다.
“환청 들었나, 환시 봤나.”
나는 억울했다.
주치의가 왔다.
남편 목사님이 물었다.
“아내 김화경 목사가 그날 청년이 이렇게 죽었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이상한 소리가 아닌지요.”
“맞습니다”
주치의가 그렇게 대답했다.
천국 가는 사람들은 생명책에 기록돼야 한다. 생명책에 지워지는 사람도 있다.(계 3장 5절)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확실하게 구원을 받아야 될 줄 믿는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100% 완전한 구원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뛰어가야 한다.
이층천에 있을 때, 너무 많은 무서운 것들을 봤다.
삼층천에 하나님 보좌가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살아나든지, 천국에 가든지, 삼층천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까?”
그래서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하나님, 내가 어린 나이에 정치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 갔어요. 그 찬란하고 화려한 생활 다 그만두고 신학공부해서 주의 종이 됐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손해 봤습니다... 하나님!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이렇게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 뭐 그리고 힐링센터 짓고 어쩌고저쩌고” 말하려고 그랬다.
그런데 천사가 그 말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이런 마음을 주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하셨다.”
또 내가 그냥 하나님께 아뢰했려고 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리고 세계만방에 다니면서요. 진짜 기가 막힌 하나님의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암 환자들을 치료했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그런데 천사가 그 말도 못하게 했다.
내 마음에 이런 음성을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돈 주셔서 하셨고, 은사 주셔서 하셨고, 하나님이 하셨다. 네가 한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고민했다.
“그래, 내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잖아. 내가 사탕 먹으로 교회에 갔거든요. 세살 때, 네살 때 사탕 먹으러 갔거든요. 크리스마스 때부터 예수를 믿었어요.”
이 말을 하려는데 그 말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 가운데 이런 말씀을 던져 주셨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내가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녀에서 나신 예수님 이야기를 해봐요. 미쳤다고 해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 부활했다고 말해 보세요. 미쳤다고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그 일을 여러분과 나는 믿어요.
예수님 부활을 믿습니다. 천국을 믿습니다. 예수님 동정녀 역사를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고민을 했다.
내가 어떤 말, 어떤 얘기를 하나님께 들려 드릴까하던 중 어릴 때 기도한 게 기억났다.
“예수님이 밥 주신 것 감사합니다. 양식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예수님~”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랬더니 내가 삼층천 하나님 보좌 앞에 있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요엘 2:32, 행 2:21)
천국에 온 나는 13살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천국가면 남성, 여성이 없다.
아내와 남편은 알아보지만 알콩달콩한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 사랑으로~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보좌에 계셨다.
전부 빛이었다.
그분의 옷자락이 전 세계를 덮고 있었다.
제가 하나님 보좌 앞 생명수 강에 서 있었다.
그분께서 두 손으로 생명수라고 물을 떠서 나에게 주셨다.
“사랑하는 딸아, 이것은 생명수다. 마셔라.”
그러면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너,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전하여라. 천국이 있음을 전하여라. 지옥이 있음을 전하여라. 내 백성들에게 예수 잘 믿고 천국 오기를 내가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여라. 한 사람도 지옥 가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래서 생명수를 열심히 마셨다.
생명수를 마시던 중 코에서 병원냄새가 났다.
눈을 떴다.
주치의가 말했다.
“선교사님, 40일째에 일어났습니다.”
"남편 이 목사님이, 다 죽는다고 했지만, 혼자 산다고 그랬대요."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성령님이 내가 산다고 말씀하시더냐. 꿈으로 보여주시더냐.”
왜냐하면 내가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은 모습을 보고 기절한 사람이 많았다.
서울 부장판사 아내분도 나를 사랑하는 분인데 나를 보고 기절했다.
내 얼굴이 5배나 커졌다. 핏줄이 터져가지고.
남편이 말했다.
“잠언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장 21절)”
그래서 이 말씀을 붙들고 ‘산다 산다’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살려 주실까 봐 미친 사람처럼 산다고 했단다.
남편은 미친 사람, 광신자란 소리도 들어야 했단다.
남편은 중환자실 옆 대기실에서 40일을 보냈다.
병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기도하고, 자다가 또 기도하고. 그렇게 3일 정도 금식하니 팽 돌더란다.
40일째 되던날 내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남편의 기도는 늘 감사가 우선이었다.
아내가 영안실이 아닌 중환자살에 있게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한다.
감사를 하면 사자굴 속에 들어가더라도 그곳을 천사굴로 바꿔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감사기도를 했단다.
감사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깨어난 소식에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의 혈소판 정상수치는 15~40만이라고 한다.
혈소판 수치가 500까지 내려간 환자가 살아났던 것은 기적이었다.
의사는 내가 깨어나도 맹인이 된다, 고막이 터졌기 때문에 귀머거리가 된다, 식물인간이 된다, 사람구실을 못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국 삼층천에서 생명수를 마시게 하셨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예전보다 더 잘 보였다.
뇌의 기억력도 더 좋고, 귀는 너무너무 잘 들렸다.
목소리는 복음을 전하라고 더 좋게 만들어 주셨다.
할렐루야~
내가 퇴원하던 날에 지금은 장로님이신 온누리교회 안수집사님인 주치의가 내 폐 사진을 들고 오셨다.
“폐 하나는 터져 버려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위로했다.
그로부터 6년 뒤 2006년 독일병원에 입원했다.
그 때 폐 사진을 촬영했다.
폐가 하나 더 생겨 두개가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