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후의 삶을 위한 새로운 이미지 가설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4) 행복한 노후의 삶을 위한 새로운 가설로서의 이미지 제안
미국 코넬 대학교의 칼 필레머 교수는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인간 생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다.
칼 필레머 교수가 천 명의 노인을 만나 노인이 하는
후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나 자신으로 살아야 했다” 라는
후회였다고 한다.
이는 한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노인이 ‘나 자신으로 살아야 했다’라는
후회로 인생을 마무리 하기 이전에,
남은 삶이라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쟁사회 시스템 안이 삶이 아닌, 그 밖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와
노인세대가 함께 만들어 가는 노인 사회화 시스템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활동적이고, 성공적이며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시험해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기 전까지는 사회가 제시한 프레임 안에서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성장했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회시스템 밖에서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단순노동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 노인들의 이미지가 아직 뿌리 박혀 있어서일까
아니면 여기저기 아프다는 노인들의 입버릇 같은 말 때문일까?
단순노동을 하는 노인들은 이거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지만 다수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은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선택의 폭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환경이 노인들에게 점점 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만드는 악순환 을 만든다.
여기서 스티브잡스의 병상일기를 소개해 본다.
스티브잡스의 병상일기
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비즈니스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에 즐거움 은 많지 않았다.
결국 부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 일 뿐이다. 지금 병들어 누워서 과거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을…
어둠 속의 나는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가지 못한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 야 말로 자신을 따라다니고,
자신과 함께 하고 자신에게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이다.
스티브잡스 하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죽어가며 병상에서 남긴 이야기이다.
사회와 가족을 위해 내 삶을 버리고 사회체계에 순응했던
그간의 사고 와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 이제는 순수한 ‘나’ 스스로의 욕구에 답을 해야 할 때이다.
스티브잡스의 말처럼 죽음 앞에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노년의 삶을 사는 노인세대는 이제 그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세대로 ‘나(Na) 세대’라는
새로운 노년 사회화 시스템의 모델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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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하는 3가지 후회(칼필레머 교수)
앞서 잠시 언급한 칼 필레머 교수는 천명의 노인들을 만나서
설문한 결과를 ‘노인이 하는 3가지 후회’에 대해 정리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① 나 자신으로 살아야 했다
② 인간 관계에 대한 후회
③ 걱정을 줄이고 좀 더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 중 나 자신으로 살아야 했다는 내용을 좀 더
소개해 볼까 한다.
남 돌보느라 나 자신을 살피지 못한 후회 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생을 살아왔다고 고백,
태어나서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고,
젊어서는 광고에 등장하는 멋진 삶을 위해 살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았고,
그러다 보니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놓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자신 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공동체를 위해 살았던
인생을 후회 한 사람도 있었다.
내 삶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저 내게 주어진 책임만 다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냐 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다 내 책임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위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지금 내 인생을 평가한다면,
내가 군인이 되어서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한 평생을 군 생활만 했다는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좀 더 다양 한 삶을 살수 있었을 텐데 오직 규율에만
얽매이지 않고, 나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서
살아온 삶이 후 회스러웠다고 대답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인질로 잡아서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래의 대학 진학을 위해 살았고,
대학생 때는 취직 하고 나서 누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많은 것들을 희생했다.
취업에 성공해서 신입사원일 때는 나중에 승진하고
돈을 많이 모으면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미래의 나를 위해 회사에 충성하며 휴가도 반납하고
매일 잔업을 하며 미친 듯이 살았다. 항상 미래의 나를 생각했다.
현재의 나는 언제나 희생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한국 사회는 특유의 경쟁 문화 때문에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단계별 인생 목표가 있다.
그래서 이를 따라가 기에도 벅찬 경우가 많다.
목표를 바라볼 때 ‘나’ 라는 존재는 항상 뒷전으로 두어서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게 반드시 달성되 어야 하는 목표가 있는 상황에서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이 길이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못 한다.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인생 후반기에는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경쟁 사회에 놓여있는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으로 등산, 여행, 운동, 봉사, 공부 등 나이 먹어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들을 시도해 보지만
정작 내가 이것을 좋아하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것 저것 욕심 내어 보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 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고 하지만, 평생을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갑자기 찾기는 쉽지 않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나에게 해 주는 것만큼 삶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위의 글처럼 우리는 사회가 제공한 사회 시스템 안의
부속품 처럼 그렇게 살아오며,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감에 살고 있다.
이는 비단 노인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이제 보호적 관점의 노년의 사회에서 생산적 주체로서의
노년의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바로 “나”를 찾는 데서 시작함이 올바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년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이미지 가설로서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 나(Na)세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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