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싯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린다와 결혼해서 2남 2녀를 뒀습니다.
마냥 행복하게 살던 중 한 음주 운전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의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제럴드 싯처 가족이 타고 있던 미니벤을 들이받은 것입니다.
제럴드 싯처의 가족은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네 살 난 딸이 죽었습니다.
제럴드 싯처가 갈등에 빠집니다.
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런 사고가 난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잔인한 분이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도 불가항력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데 그런 사고가 왜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걸핏하면 ‘하나님의 뜻’을 얘기합니다만, 사실 하나님의 뜻은 참 조심스러운 말입니다.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포로수용소에 감금된 소피에게 독일군 장교가 잔인한 선택을 강요합니다.
아이 두 명 가운데 살아남을 한 명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이겠다고 합니다.
소피가 결국 선택을 합니다.
둘 다 죽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선택되지 못한 아이는 “엄마!”를 울부짖으며 독일군의 손에 끌려 나갑니다.
이런 경우에 소피한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설령 소피가 40일 금식기도를 한들, 별 뾰족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럴드 싯처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는 이유로 아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말자.”
그 사고로 아내를 잃은 제럴드 싯처에게 재혼을 권하는 친구도 있었고, 재혼을 반대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럴드 싯처는 재혼하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혹시 재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럴드 싯처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 문제에 집착하느라고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제럴드 싯처의 책임은 어쨌든 자기 삶의 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신실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일일이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순종할 수 있을 만큼은 압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별수 없습니다만 아는 것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밤에 운전할 때는 전조등을 켜고 운전합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해서 전조등이 부산까지 한꺼번에 다 비춰주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가는 앞길만 비춥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매 순간 순종하면 그것으로 족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