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께 어릴 때부터 늘상 들어왔던 말이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그만큼 가정에서 이뤄지는 훈계를 굉장히 중요시하셨다. 그래서 어려서는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하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가정을 소홀히 하셨던 할아버지 탓에 아빠는 누군가 아빠에게 충고 하나 제대로 해준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시는 거라고 했다. 이때는 그냥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타지에 살면서 정말 내게 싫은 말 해주는 걸 새겨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불편할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만큼 말다툼을 감수하면서 진심으로 날 위해줄 사람은 이 세상엔 없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나도 모르게 아빠처럼 친구들을 감싸고 도와주기보단 지적을 많이 한다는 것에 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의 머리에 하얀색 부스러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어! 너 머리에 뭐 묻었다."라고 말을 했는데 옆에 있던 송미는 "떼어주면 되지." 하며 빼주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너무 지적 받는 거에 익숙해서 이랬을까? 아니면 성격이 조금 냉소적인가?' 지나간 세월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원인을 찾기보단 '앞으론 안 그래야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무적인 것은 예전에도 의협심이 많았는데 더욱 생겨 강약약강의 비열한 태도를 보면 일갈한다는 점이다. 높고 낮음은 비교할 수가 없는 건데 함부로 하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지성인이라면 나와 똑같이 반응할 것이다. 한번은 초록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택시가 우회전 하면서 내게 빵빵 거렸다. 어이가 없어 경찰청 민원실에 물어봤다. 누가 잘못한 건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시원찮았다. 이런 걸로 전화했냐는 뉘앙스였다. 그래서 단속을 좀 해주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끊고 나서는 나처럼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이티비씨에 전화했다. 택시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처럼 경찰관이 말했다고 했다. 그러곤 취재를 요청했다. 다행히 그 다음 날 방송사의 아침 뉴스를 봤는데 차량이 우회전을 하는 것은 초록불이 깜빡일 때는 괜찮다고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게시되어 있는데 이는 대법원 판결과는 달라 앞으론 수정해 놓겠다는 경찰청의 설명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내가 사고날 뻔했던 사거리에 경찰들이 사방으로 배치돼 '교통 신호를 잘 지킵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았다. 비록 일회성이긴 했지만 '누군가 나와 비슷한 피해를 받게 되었을 때 적어도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케이비에스뉴스를 보는데 한국인들은 빵을 먹어도 글루텐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내용을 보도해 전화를 걸어 여드름이 나고 한의사 선생님들도 소화를 못 시키는 사람도 있다고 했는데 이거는 제빵업체 로비를 받은 거 아니냐며 따졌다. 그러고 나서는 또 나오는지 예의주시했는데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편스토랑>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이 "바삭바삭한"이라는 우리말 대신 "크리스피"라는 외국어를 남발해 인스타그램을 찾아가 아이들 따라하니까 하지 말아달라고 적어 놓고 왔다. 그래서 지금은 플레이팅이라는 말도 담음새라는 표현으로 써주고 한국어 사용에 주의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세상에 순응만 하다보면 절대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빛과 소금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된다. 대학교 때의 일로 더욱 진취적으로 바껴서 비판적인 태도는 여전하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생각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떻게하냐며 늘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사는 게 좀 팍팍하다. 과연 내가 남을 지적할만한 자격이 될까. 아버지께서는 반면교사를 강조하셔서 부모의 안 좋은 점은 따라하지 말고 뛰어넘으라고 하셨다. 엄마께서는 내 자신에겐 관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늘 부족하겠지만 나날이 발전시켜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자기 자신을 성숙시키는 것만큼 가장 큰 봉사는 없는 것 같다.
첫댓글 네, 교수님. 글 검토할 때 모호한 표현들이 있진 않은지 의미적으로도 점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