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에 마음까지 물드는 것 같다. 산책길 양쪽에 서 있는 나무들은 어느새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숲 터널을 만들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폐 깊숙하게 들어 마시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다람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이리 저리 움직인다.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행인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제서야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청아하고 아름답게 들린다. 요즘 집 가까이 있는 너릿재 옛길에서 아침마다 누리는 행복이다.
입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2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산책로가 넓고 잘 정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즐겨 찾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사람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은 바쁘게 나설 출근 시간, 평일이니까 이 즈음에 걷는 이는 대부분 퇴직자나 전업주부일 것이다.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한 여성이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혹시 오다가 길에서 핸드폰 못 보셨나요?”라고 묻는다. “잃어버렸어요?”라고 물으니 그렇다면서 서둘러 뛰어 내려갔다. 길에 떨어져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돌아서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좀 수월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했던 지점까지 거의 왔는데 정상에서 핸드폰의 행방을 찾던 여자가 다가왔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쩌다 잃어버리셨어요?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지면 모를 리가 없는데.” 자신의 주머니에서 쉽게 빠지게 되어 있어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올라갈 때 한 남자 밖에 지나가지 않아 그를 만나려고 급히 왔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내 것을 선뜻 내주며 그분이 받을지도 모르니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신호가 가는데도 받지 않았다. 그럼 사용하고 있는 통신사로 연락해서 위치 추적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참 만에 연결이 되었다.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었는데도 신분증을 보내라고 한단다.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아파트 15층에 산다고 했다. “같은 동네 분을 만났네요?”라면서 멋쩍게 웃는다. 헤어지기 전에 한 번 더 전화해 보라고 했다. 신호음이 두세 번 울리자마자 받았다. 뜻밖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상 근처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는 곳이 몇 호인지 다시 한 번 묻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려고 했다. 서로 몰라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막 뛰어갔다.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기 전에 궁금해서 전화했다. 상대편 목소리가 들리기에 아까 전화를 빌려 준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직 찾아가지 않았단다. 얼마 뒤에 문자가 왔다. ‘덕분에 찾았습니다. 선뜻 핸드폰을 빌려주어서 감사했습니다.’ ‘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잊을 일이 없겠네요.’라고 답을 보냈다.
나도 휴대폰을 잃어버린 줄 알고 당황스러웠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개인정보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연락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녀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기에 마음 놓고 전화하고 위치 추적을 해보라며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그녀는 새소리를 듣고 바람결을 느끼며 초록의 향연을 보는 즐거운 산책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난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뜨거운 맛을 보았을 것이다. 당분간 핸드폰 간수를 누구보다 잘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첫댓글 좋은 일 하셨네요. 하하.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 해결되면 천국이 임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뜨거운 맛을 본 그 분이 선생님께 많이 고마워 하셨을 것 같습니다.
ㅇ
스마트폰은 잃어 버린다는 생각은 하기도 싫습니다. 좋우 일 하셨습니다.
요즘 제 핸드폰이 맛이 갈랑말랑해서
잃어버리고 싶어요.
새것 사게.
휴대폰을 잃으셨던 그분은 선생님을 만나는 천국을 경험하셨네요. 좋은 일로 시작한 아침이 종일 기쁜 일을 만들었겠지요?
그분, 선생님 만나 다행이었겠네요.
좋은 일 하셨네요.
당황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데, 선비처럼 생기신 선생님이 휴대폰 빌려주고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 줘서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너릿재 길이 좋다고 소문났는데 몇 번 못 가봤어요. 곁에 그런 길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선생님의 섬세한 배려, 잘 느끼며 읽었습니다. 그 분은 따뜻한 이웃을 두셨네요.
아마 교장 선생님의 인상이 사나웠더라면 친절도 색안경 끼고 봤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