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두부 / 정선례
읍에 있는 두부집이 문을 닫았다. 광주에 사는 주인이 1주일에 두 번 내려와서 가게 문을 열더니 타산이 맞지 않았나 보다. 콩을 불려 가면 두부를 만들어 줘서 나는 그 집의 단골이었다. 삯은 비쌌지만, 어릴 적 엄마가 해 주시던 맛이어서 두부 해 오는 날은 마냥 행복했었다. 먹거리가 풍부한 시절이지만 나는 밥보다 담백하고 구수한 두부를 더 좋아한다. 두부집이 문을 닫고부터 한동안 전통 손두부 맛집을 찾아다니다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집에서 해 봤다. 믹서기로 콩을 곱게 갈아 소금 가마니에서 흘러내린 간수로 만들어 봤는데 굳는 게 잘 안되어 그 뒤로는 두부 만드는 걸 그만뒀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밭이 많아 콩과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보리 수확을 끝낸 밭에 콩을 심었다. 너무 빨리 심으면 웃자라 꼬투리가 많이 달리지 않아 적기를 맞춰야 한다. 그 시기가 6월 중순이었다. 뙤약볕을 가려 주는 챙 있는 모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수건을 머리에 쓰고 콩밭을 맸다. 콩밭이 얼마나 넓은지 여름내 밭에서 살다시피 했다. 머릿수건을 벗어 자꾸만 눈으로 들어오는 땀을 닦아 내며 밭을 매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고라니나 토끼가 산에서 내려와 애써 가꾼 어린 콩 순을 뜯어먹어 그물을 밭가에 쳐 놓기도 했다. 콩대가 갈색으로 변하고 잎이 노란 낙엽으로 떨어지면 수확할 시기다. 낫으로 베어 깍지로 모아 그 자리에서 말렸다. 볕 좋은 날 소달구지에 실어와 마당에 줄잡아 펼쳐 놓고 하루나 이틀 말린다. 바짝 마른 콩깍지를 도리깨로 내리치면 콩알이 튀어 마루 밑이나 담 아래 쌓아 놓은 나뭇단, 까만 고무신 속으로도 튕겨 들어갔다. 엄마는 우리에게 박 바가지를 디밀며 전부 주워 담으라고 했다. 갓 거둔 노르스름한 햇콩을 살짝 불려서 밥에 넣으면 달착지근하다.
엄마는 늦가을부터 첫눈 내릴 무렵까지 대청마루에 쌓아놓은 콩가마니를 풀어 네모난 상이나 쟁반에 콩을 펼쳐놓고 흔들었다. 동그랗고 여물이 잘 든 콩은 굴러 내려오고 돌이나 이물질, 쭉정이는 그대로 남았다. 벽에 허리를 기대고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콩을 골라내는 일을 여러 날 반복했다.
우리 집 대청마루 한쪽에는 언제나 맷돌이 놓여 있었다. 12시간 통통하게 불은 콩에 물을 곁들여 맷돌 위짝 구멍에 조금씩 떠 넣고 엄마는 칡으로 감은 손잡이에 맷손을 돌려 간다. 맷돌 가운데 중쇠가 끼워져 있다. 중쇠는 맷돌의 위짝과 아래짝 한가운데 박는 쇠다. 위짝은 암쇠라 하여 구멍이 뚫리고, 아래짝은 수쇠라 하여 뾰족한데, 두 짝을 맞추면 위짝을 돌려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집 맷돌은 수쇠가 암쇠보다 넓어서 쓱쓱 갈려 내용물이 둘레로 흘러내려 삐죽 달린 주둥이로 모아져 흐르는 콩물을 받았다.
부뚜막에는 들기름 칠해서 반들반들한 가마솥과 국 끓이는 백 솥이 놓여 있었다. 맷돌에 갈린 콩물을 면보에 부어 쳇다리에 올려놓고 바락바락 치대어 물을 뺐다. 가마솥에 미리 물을 끓여 걸러낸 콩물을 붓고 눋지 않게 저으며 센불로 끓인다. 찬물을 미리 떠 놓아야 한다. 팔팔 끓으면 순식간에 넘쳐 버리므로 솥 주변을 떠나지 말고 지키고 있다가 물을 조금 뿌려 거품을 가라앉힌다. 이때는 아궁이 불을 그만 지피고 간수를 조금씩 부어 가며 살살 저어 굳기 시작하면 뚜껑을 덮는다. 몽글몽글 엉긴 순두부를 네모난 나무틀 면보에 퍼 담아 수분이 빠지도록 무겁게 눌러야 한다고 엄마가 알려 주셨다.
올 겨울에는 인근 지역의 손두부 맛집 찾아다니지 말고 밤새 불린 콩을 방앗간에서 갈아와 다시 한 번 만들어 볼까? 내일 엄마에게 안부 전화 넣어서 딸네 집에 한 번 다녀가시는 게 어떠시냐고 넌지시 여쭤 봐야지. 영양 듬뿍 고소한 손두부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첫댓글 선생님 글을 볼 때마다 어릴 적 고향,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분들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이리 세세하고 다정하게 쓰시는지.
아유^^ 웬걸요
이 글 일주일 내내 썼는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메주콩 타작했는데 수확이 변변치 않았어요. 선생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두부가 먹고 싶네요.
선생님께서는 못 하시는 음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리의 고수! 직접 만드는 두부는 더 맛있을 터이지요?
요즘도 두부집이란 게 있군요. 어렸을 때 제가 살던 동네에도 있었거든요. 선생님은 늘 과거와 현재를 맛깔나게 잘 버무리세요.
암쇠 수쇠 중쇠 세롭습니다. 앞으로 맷돌이 달리 보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