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가장 큰 복음을 알라
11/20수(水) 롬 8:31-39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 8:31).
신앙생활 승리의 비결은 복음을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모르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당시 이단들의 미혹이 많아 이단을 경계하기 위함이고, 율법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주의는 자기중심의 삶입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율법주의는 문제가 됩니다. 대부분 오래된 신앙인들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은 내세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복음에 눈이 떠지면서 믿음이 생깁니다.
▣복음 중 가장 큰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31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복음은 항상 하나님이 주체이고, 율법은 내가 주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율법입니다. 내가 앞서 일을 하는 것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비춰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대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할 일이 없으므로 자유합니다. 성도는 날마다 은혜로 살아야 미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잘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가 불안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위하심의 증거는 그냥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미 와 있지만 깨달은 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31절). 자신이 아무것도 행한 것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복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인과응보적 사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율법적 사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 증거는 2가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32절) 객관적인 증거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3:16).
주관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내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 믿어지고, 작게 믿어지는 믿음의 정도 차이는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믿음은 각 사람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입니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롬 12:3). 객관적인 사실들이 주관적인 믿음으로 들어옵니다. 믿음이 커질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신다는 확신이 커집니다.
And.
복음에 눈을 뜬 자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모든 정죄함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해결하셨습니다. 정죄함에서 해방 받으면 죄책감이 사라집니다. 두려움과 질병에서 해방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한 자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미래의 죄까지 해방되었다면 미래에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죄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성경의 ‘죄’는 자신이 주인 된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가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복음은 나를 성화시킵니다. 우리를 구원시킬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시킵니다. ‘내가’가 나타날 때 경건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납니다.
복음에 눈뜬 자에게 하나님은 예수와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이 주님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Jesus + Nothing =Everything
주님과 끊임없는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에 혼자라는 것은 가장 큰 비극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나를 알고 계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혼자가 아님을 알 때 기도의 확신이 옵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입니다.
우리의 환란, 역경, 시련, 고난은 나를 사랑하시는 그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누릴 때 미래에 승리하게 됩니다.
세상은 참 공평합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긴 사람은 늘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그 마음은 늘 평안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인지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후자가 더 복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기독교 안에도 성공의 기준이 세상 가치관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높은 지위, 많은 재물, 사업 성공이 축복인 듯 간증합니다.
사라져 없어질 것은 축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사명으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영원세계와 연결할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적인 복을 구합니다. 영혼이 잘 될 때 세상의 복이 영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즉시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을 더 멀리하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응답의 때를 늦추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오직 주님께로 고정될 때 본 복은 물론 분 복까지 부어주십니다.
저는 결혼한 딸 부부와 함께 삽니다. 가끔 부엌에서 일할 때 딸의 방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이 저렇게 좋을까? 좁은 방에 달랑 침대 하나, 때로는 엄마의 눈에 안타깝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차, 여기저기 문제가 생겨 정비소에 들락거려도 불평하지 않고 그만한 것에 감사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제가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 조금은 넓은 방과 마음 놓고 탈 수 있는 차를 허락하소서.
보모의 마음이 이럴 때 부모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며 그들의 앞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 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만일 내가 교회가 아닌 세상에서 20년을 일했다면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거야. 그런데 교회는 경력이 인정이 안 되는 것 같아” 딸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세상 기준으로 보면 너는 분명 손해를 보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 기준으로 보면 네가 충실하게 지내온 그 시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세상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 눈으로는 보잘 것 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 손에 들려진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보는 손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작은 일에 충성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고맙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도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고맙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구나” 이 일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 일군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할 일은 주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실 수 있도록 날마다 나를 죽음의 자리에 넘기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아무것도 없는 빈손일지라도 지금 내 안에 예수께서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주님의 충만함이 가득 채워집니다.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가장 큰 복음은 위대하신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내 삶을 사신다는 것입니다. 늘 주님의 그릇으로 주님만 담기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결한 그릇
https://youtu.be/KHSfdDjETe8?si=AbhyBS2C2tkuw1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