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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밀알감리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밀알방 류창원권사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남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Expect great thing from God , Attempt great thing for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영국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평범한 한 영혼이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확장
시키려는 하나님의 비전, 곧 전 세계적인 선교 운동의 중심에서 서도록 이끈 것은 바로
철저한 신본주의였다.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그러나 캐리는 소극적으로 신본주의에만 기대고 있지 않았다. 실질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지만, 그는 학식 있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는 아주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수백
만의 사람들을 부요함에 이르게 했다. 태생은 별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가장 위대한
선교사요 식물학자 및 언어학자요 인권 운동가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이루려는 철저한 인본주의 때문이었다.
이처럼 캐리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사이의 거룩한 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캐리의 선교 모델에는 치우침이 없다.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노력 사이의 아름다운
조화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 윌리엄 캐리(1761. 8. 17~
1. 윌리엄은 한번도 개인적인 명예를 얻고자 업적을 쌓은 적이 없었다. 그가 벌인 모든
활동의 중심을 차지한 지고한 사상은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였다.
자기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의 지도하심이라는 원칙에 맞춤으로써 윌리엄은 놀라운
영적인 열매를 거둘 수 밖에 없는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그의
성별된 삶과 완전한 순종의 결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2. 그는 끈기의 사나이였다. 무든 일을 시작하든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그는 어떤 성격의
일이든 철저히 마무리하기를 좋아했고, 한 번 착수한 연구는 끝까지 결말을 맺기를
원했다. 어떤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그의 이처럼 분명한 목표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은 그의 나머지 인생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는 언제나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세웠으며,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아무리 커다란 장애물이 있고, 아무리 고통스런 문제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목표 지점을 향해 똑바로 쟁기질을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3. 20대 초반에 이른 캐리는 복음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모난 성품이 다듬어져야 했으며, 꾸고 있는 꿈들에 생명의
불꽃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지만 그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있었으며 전능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4. 새로운 영적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말미암아 보다 인각적이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향한 그의 마음이 잠을 깨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그의 예리한 지성 또한 깊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영혼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 새롭게
발견된 머나먼 신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도록 돕고자 하는 열망이 끊임없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5.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가낭한 한 모든 시간을 활용해 스스로를 훈련하는
데 보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적합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단련할
뿐만 아니라, 아주 폭넓은 유용한 지식들을 통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의 수레바퀴가 그의 손에 어떤 일을 쥐어줄지 알 수 없었지만, 비천한 곳에든
근사한 곳이든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시는 땅에서 적합하도록 먼저 준비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감지하고 있었다. 필요한 지식을 섭렵하는 일과 자기의
선천적인 슨사를 발전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했던 그는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즉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잘 준비된 일꾼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을 드렸다.
6.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우리의 인생을 보내는 것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거룩한 일꾼으로 사용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숭고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바치고자 합니다. 현재 저는 동인도에 있는 뱅골의 힌두인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
습니다. 아내와 가족들은 뒤에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은 이
땅에서 모든 사람의 아들들이 따라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는 가장 힘들고 영광
스럽고 중요한 사역을 위해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저를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수많은 애정 어린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쟁기를 손에 잡기로 했습니다.
7. 1793년 6월 13일 목요일, 증기선 크론 프린세스 마리아 호는 마침내 도버 항을 떠났다.
윌리엄 캐리와 아내 도로시, 아들 펠릭스, 윌리엄, 피터와 아기 야베스 그리그고 키티와
토머스는 한 일생이 되어 인도로 향하게 되었다. 첫 번째 배로 계속해서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하나님의 뜻이 결국 이런 역사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야 선교사
들은 그 이유를 이햐하기 되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인간의 분노를 이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캐리는 그 날 저녁에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내 영혼에 커다란 기쁨이 찾아든 날이다. 나는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순종할 때 주어지는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있다. 바로 이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싶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8. 하나님은 모든 인간적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때 모든 도움의 손길을 끊겼을 때,
창고에 식량이 전혀 남아 있지 않고 금고에 돈이 하나도 없을 때, 오직 도움은 하나님의
하늘 보좌로 가까이 다가가야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캐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캐리는 인도에서 평생을 보내는 동안 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비록 때때로
인간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다는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과 위에 있는 것들을 향해 마음을
고정시킨 윌리엄 캐리는 불굴의 용기로 인도에서의 내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9. 그는 그의 가는 길에서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자기 인생의 목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의 눈은 하늘나라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 폭풍우가 몰아쳐
때때로 그를 에워쌀지언정 여전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눈부신 성공의 무지개라는
푯대를 향해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캐리로 하여금 성공적인 선교사가 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비전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이런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 그는 차근차근 언어 공부와 성경 번역을 계속하면서 그는 말씀을 전하러 다녔다.
또한 어두움의 세력을 타파하고 물리치기 위해 그는 학교를 시작했으며, 12명의
젊은이들을 훈련하기 위해 대학을 계획했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들어나는 열매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곳에서 6년째를 맞이하면서 곁으로는 관심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잇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를 못했다.
캐리는 이처럼 겉으로 들어나는 성공에 목도할 수 없어서 침체에 빠지곤 했으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런 곤경에 빠져 있는
공안에 그는 자주 겸손하게 기도하곤 했다. 그러면서 더욱 더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게 되었다.
11."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심지어 그런 시점에
처했어도 흔쾌하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는 무드나부티에서 시작햇던 것을
스스로 단념하게 되었다. 지독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서야 우리는 겨우
고통스럽게 거기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바로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있었음을 깨닫고서 이 곳이 바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장소이며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장소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2. 1800년 11월 25일 화요일에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하는 침례를 받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13. 1801년 3월 5일 최초의 벵골어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다.
14. 1801년 4월 8일 캐리는 포트윌리엄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15. 1807년 12월 7일 아내의 죽음.
16. 캐리가 아들 펠릭스에게 보내는 편지.
"버마어를 정복하는 일에 너의 가장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너의 가장 커다란 관심을
두기를 바란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결과에 만족하지 말거라. 그 모든 것을
뿌리에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네 것으로 소화하라.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말하는 형태나 구성이나 억양을 경청하라. 그리고 네가 습득한 것을 수시로 활용하지
않으면 너에게 별로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엄격한 원칙을 적용해라. 선교 기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것이란다. 형제애를 키우도록 해라. 결코 변하지 않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라. 한 사람의 버마인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라. 네가 관찰한 모든 것을 일지에 적도록 해라. 사람들
사이에서 온화하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라. 네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지극한
정성을 보여주어라. 랭군의 선교 본부에서 유럽인이라는 자긍심이나 우월감을 절대로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17. 1808년 5월 새로운 동역자 샬롯과의 결혼.
18. "우리 인쇄소는 화재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재산 피해 규모는 모두 합쳐
적어도 6~7만 루피는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오랜 기간 성경을 인쇄하는 일을 중단
해야 할 만큼 이것은 아주 심한 타격입니다. 재산상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이,
원 상태로 복원하는 데에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도 1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복구에 대한 의욕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잠잠히 있으
면서 우리의 주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이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 분은 틀림없이 이런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실 것이며 그 분의 일을 성취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 분의 섭리하심이 우리에게 칠흑 같이 어둠을 맛보게 하고
있습니다.
19. 1820년 캐리의 두 번째 아내 샬롯의 죽음.
1822년 장남 펠릭스의 죽음.
1823년 워드의 사망.
1823년 10월 8일 캘커타에서 돌아오는 도중 항구의 부두에서 미끄러여 심하게
부상당함.
20.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공급원 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다.
그는 이런 냉철한 극단주의를 통달하게 되었다. 그는 의로운 반석 위에 굳게 기초를
세운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만으
로도 만족했다. 그것이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그는 실망이라는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도 않았고, 비난이라는 폭풍우에 뿌리가 뽑히지도 않았으며, 고달픈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으며 머리 위에
하늘이 맑게 개어 있는 한 그는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미래를 맞이 할 수 있었다.
21. 그는 인도 선교 사역을 펼치는 데에 있어서 세 가지 기본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첫째, 그 민족 고유의 언어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주 특별한 두번재
원칙은, 인도어와 인도 주변국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토착민을 위한 학교에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청년
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사역을 수행하는 가운데 첫 번째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두번째로 수많은 성경이 번역되어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세 번째로 캐리에 읳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세람포르대학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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