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
"생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
늙은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도 한다. 사실 그렇다.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에서는 인생을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의 네 단계(asrama)로 나누었다.
이런 네 단계를 거치면서 다르마(dharma, 법), 아르타(artha, 이익),
까마(kama, 욕망), 목샤(moksa, 해탈)라는 네 가지 인생의
목표(purusartha)를 모두 성취하는 것을 바람직한 삶이라고 보았다.
어린 시절의 학습기에는 바라문교의
종교성전인 베다(Veda)를 축적하는 가주기에 들어간다.
그 후 자식들이 가업을 계승할 시기가 되면
숲속에 들어가서 청정한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임서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죽음이 멀지 않은 노년기에 이르면 발우와 지팡이와
물병을 갖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걸식으로 생활하는 유행기에 들어간다.
이 세상과는 작별, 즉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서 '지식과 부와 욕망과 해탈'이라는 네 가지 목표를
모두 성취하고자 하는 바라문교도들의 삶은 참으로 이상적인 것 같아 보인다.
동녘에 뜬 태양이 중천을 거쳐 서산에 지듯이 생로병사의
단계가 차근차근 이어진다면 그럴 것이다.
서산 하늘에 노을빛이 번지면서 뉘엿뉘엿
해가 지듯이 내가 죽는 시점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생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고 하듯이
우리에게 언제 죽음이 닥칠지 알 수 없다. 바라문교에서
제시하는 네 단계의 삶이 보편적 지침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날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그날 아침에는 자신이 죽을 줄 몰랐을 것이다.
나에게 죽음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내가 죽은 날은 내가 살던 온 세상 역시 무너지는 날이다.
아니 온 우주가 폭발하는 날이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죽으며, 그 날이 오늘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살아갈 때 매 순간이 참으로 소종하게 느껴지고,
말이든 행동이든 매사에 조심하게 된다.
독실한 불자였던 고(故) 스티브 잡스는 열일곱 살 때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의인의 길에 서 있게 될 것이다."라는
경구를 읽고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매일 거울 앞에 서면 "혹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었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하려는 일을 하려고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물었다고 한다.
세속에서 엄청난 부와 명예을 성취했지만,
그 원동력은 매일매일 떠올렸던 죽음에 대한 자각에 있었다.
티벳불교 겔룩파의 수행지침서인 《보리차도차제론》에서는 본격적인 불교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염사(念死)'의 명상이 완성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염사란 문자 그대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은 예기치 않게 갑자기 찾아온다.
죽을 때에는 재물이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몸과도 이별한다.
매일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갈때 욕심과 분노가 사라지고,
보시와 지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막상 죽음이 닥칠 때 두렵지 않다. '염사'의 명상이다.
젊을때 완성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감도 떨어질 수 잇기 때문이다.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