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관료주의·늑장 조달 문화에 발목 잡힐 것"
야당 "창의적 회계장부로 숫자 맞추기 게임 될 수도"
마크 카니 정부의 '90억 달러 국방비 증액' 약속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나토 동맹국들의 압박, 특히 '트럼프 리스크'에 등 떠밀려 내년 4월까지 GDP 2% 목표 달성을 공언했지만, 마감 시한이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온 현재,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늑장 조달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공수표'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내놓은 계획은 국방부 예산 87억 달러, 통신보안국 예산 3억7천만 달러를 추가 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야당은 정부의 실제 집행 능력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캐나다 국방 조달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 즉 위험을 회피하는 복지부동 문화와 결정을 끊임없이 미루는 관행 때문에 매년 수십억 달러의 예산이 쓰이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야당은 "예산안이 통과될 때쯤이면 시한이 반년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실제 장비 구매 대신 서류상 숫자만 맞추는 '창의적 회계'로 나토를 속이려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물론 정부와 방산업계는 '비상수단'이 있다고 항변한다. 기존에 체결된 상시 공급 계약이나 사전 자격을 통과한 업체 목록을 활용하고, 미국의 대외군사판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절차를 단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국가 안보 예외' 조항을 발동해 경쟁입찰을 건너뛰는 방법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런 '지름길'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야당은 "국가 안보 예외 조항이 군 장비 도입의 상습적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졸속 계약과 예산 낭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방산업계 역시 '신중한 긴급성'을 강조하며, 무작정 돈을 쓰기보다 캐나다 경제와 주권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북극 감시 및 방어 역량과 관련된 장비는 반드시 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카니 총리가 내놓은 투자 계획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총리는 지난 6월 병력 처우 개선, 신규 장비 도입, 해안경비대 강화 등 일반적인 방향만 제시했을 뿐, 90억 달러를 어떤 사업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존에 계약된 장갑차나 함정 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손쉽게 예산을 집행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려면 현재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조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정치적 약속과 행정적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대규모 국방 예산은 통상 수년에 걸쳐 집행되는 것이 상식이며, 정부 고위 관계자조차 이번 계획을 '확정'이 아닌 '목표'라고 표현하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나토의 압박에 못 이겨 던진 90억 달러 증액 약속이, 결국 캐나다 국방 시스템의 민낯만 드러낸 채 빈 약속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