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 ⓒ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
스물여덟살 왼손잡이 박창수씨. LG 트윈스 전력분석팀 직원이다. 경기전 상대 선발이 왼손으로 발표되면 박창 수씨가 바빠진다. 특히 한화전서 좌완 류현진이 나선다면 옆 동료들이 말 걸기 힘들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LG 타자들의 베팅 케이지 타격 훈련을 위한 배팅 볼 투수로 나서야 하기 때문. 어떤 동료 프런트는 "오늘은 창수가 에이스 대접 받는 날"이라고 추켜 세운다.
지난 2005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이순철 LG 감독이 현장직원 박창수씨가 꽤 솔쏠하게 배팅볼을 던지자 "2군에 내려가서 왼손 투수로 본격적인 수업을 쌓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정도. 덕수정보고 좌완 투수 출신 이었으니 다시 한번 주전으로 도약해볼 꿈을 갖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행크 애런(전 밀워키)의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신기록(755홈런) 갱신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배리 본즈에게는 전용 배팅볼 투수가 있다. 43세 본즈보다 10살 많은 존 얀들(John Yandle). 기록 달성이 가까워지자 본즈의 주변 인물,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미디어의 특집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 23일 자(이하 한국시간) 뉴욕 타임스에 본즈의 배팅 볼을 무려 15년 넘게 던진 그의 기사가 실렸다.
본즈는 공식 기록으로 700개를 훨씬 넘겼지만 실제로 배팅볼 투수 존 얀들에게는 아마도 셀 수 없는 홈런을 때려낸 셈이다. 공식 기록에 나와있지 않은 본즈 홈런포의 희생양, 아니 본즈의 홈런포를 만들어준 도우미임에 틀림없다. 얀들은 지난 주말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서 테드 릴리와 윌 오만, 두 왼손 투수에게 1경기 2홈런을 때려낸 본즈를 두고 "아마도 자기가 잘 때렸다고 말하겠죠"라고 웃어 넘기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본즈가 그의 피칭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깨가 상한 코치들이 던져주는 60마일대의 공보다 훨씬 더 빠르고, 본즈가 집중적으로 점검하고자 하는 몸쪽 패스트볼을 잘 던져준다. 배팅볼은 대개 그라운드 훼손을 막기 위해 깔개를 깐뒤 투수판 훨씬 앞쪽에서 던지니 구속도 상당하다.
얀들의 패스트볼은 약 80마일 정도라고 하니 배팅볼에서 느끼는 체감 스피드는 90마일(145㎞) 정도. 이 수준이라면 더 이상 바랄 나위 없는 배팅볼 투수 아닌가. 실제로 본즈 전용 배팅볼 투수 얀들에겐 본즈의 홈런 신기록 을 만드는데 공헌했다고 할만큼 자부심을 느낄만한 비밀(물론 스테로이드 제공은 아니다)이 있다. 매년 배팅볼을 던질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다가가 스스로 나이가 먹음에 따라 떨어질 스피드 감소를 극복했다고 한다.
트리플A 투수를 마지막으로 야구를 접었던 얀들은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샌프란시스코 내야수 출신의 리키 애덤스와의 인연 덕에 배팅볼 투수를 부업으로 삼게 됐다. 애덤스로부터 코치들이 배팅볼을 던지는데 너무 피로를 느낀다는 말을 듣고 자원해서 마운드에 올랐는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종사하는 업무에서 홍보 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배팅볼 투수로 받는 급여를 자선단체에 납부한다고 한다. 오프시즌에는 본즈의 롱토스 캐치볼 파트너이기도 하다.
박창수씨는 이순철 감독의 제안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지금 다시 시작하느니 LG 프런트로 성공하는 것도 괜찮은 계획"이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박창수씨를 비롯한 모든 프로야구단의 현장 직원은 타자들에게 수 백 개의 공을 던지고 난뒤 탈진하거나 화장실로 가서 토한다(진짜다). 무더운 7월 말이다. 새카 맣게 넘어가는 본즈의 홈런, LG 조인성이 그려내는 아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첫댓글 아... 프런트들이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다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든분들 화이팅~!!!
역시 기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얘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