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시초로 김치공정, 한복공정에 이순신, 윤동주, 손흥민 선수까지
중국인이라고 왜곡하는 중국에 반감은 크지만, 딱히 비유가 마땅치 않아 중국 역사의 일부를 인용한다.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중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한족(漢族)'이니 '한문화(漢文化)'니 하는 것들은 내세울만한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漢)나라는 약 2,200년 전 한고조 유방(乳房이 아니고 劉邦)이 건국했다! 한나라는 전한 후한 합쳐서 약 400년 정도 유지
되었으며 이후 여러 나라로 분할, 통합 등 여러 번의 이합집산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전한과 후한 사이에는 신라, 통일신라와 달리 연속성이 없이 중간에 단절기가 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는 중국 역사에 비하여
외워야 할 나라가 많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 여겼다!-
결정적으로 몽골의 원나라에 통합되어 약 100년간 지배를 당하였으며, 불과 100여년 전까지 그들 스스로 업신여겨 오랑캐라
일컫던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의 지배를 270년 정도 받아왔다!
그들은 오래 전의 한나라 후예 '한족(漢族)'이 아니라 근래 청나라의 '만주족(滿洲族)'이나 '청민족(淸民族)'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도합 몽골, 청 두나라의 치욕스런 지배를 받던 시기를 합쳐 400년 가까운 동안은 모든 공문서를 '몽골어+한자', '만주어+한자'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는 것까지야(엄격히 따지면 아니지만) 당연한 일이니 누가 뭐라 하랴?
그런데 감히 우리 민족이 세운 우리말을 사용하던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네 나라의 역사라고 왜곡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편이라고 확실하게 믿어지는 자기네 조상 중 현명한(?) 두 사람은 스스로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과감하게 소각
말살하는 훌륭한(?) 일을 저질렀다!
첫 번째는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그렇고, 두 번째는 마오쩌뚱(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그렇다! 그 두 가지 사건을 간략히 살펴본다!
1. 분서갱유(焚書坑儒)
'분서갱유'의 글자풀이는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한 행위를 일컫는다. 어학사전적 입장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중국의 진시황이 학자들의 자신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하여 의약, 점복, 농업에 관한 것을 제외한 민간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이듬해 유생(儒生)들을 생매장한 일'이다!
중국 역사이래 최초로 중국대륙을 통일하여 최고의 권력을 지녔던 진시황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아는 것 많은
학자들이 나서서 옛 역사를 들먹이며 공자, 맹자를 대표로 하는 유학에 관한 서적의 구절을 들먹이며 이러니 저러니 따지는
지식인들과 그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책들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당연히 면면이 이어져 오던 지식의 단절이 이루어졌고, 여러 풍습, 역사서가 사라졌으며, 두려워서 황제의 시책에 다른
의견내기가 어려워 졌다!
훌륭한 중국의 고대문화는 첫 번째 단절을 맞이하여 요즘 말로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이
사라짐으로 여러 많은 학문의 단절, 문화의 단절을 자초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 내고 보존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으므로 여러 차례의 외침(外侵)으로 많은
서적들을 빼앗기고 불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남은 서적이 많았던 것이다.
2.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역사에 한번이면 족할 일은 불과 얼마 전에 또 한번 저질렀다.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뚱(모택동)이 1966에서 1976년까지 추진한 문화대격변이다.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에 새로운 문화혁명의 길로 들어섬으로 중국을 혼란상태로 몰아 넣었다.
학교를 폐쇄하고 젊은이들로 군대 아닌 군대 홍위병을 조직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적인 것'을 공격하게 했다.
이로써 수많은 노인들과 지식인들이 학대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수많은 고대의 건축물, 예술품, 서적, 묘 등이 불태워지고
파괴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제2의 분서갱유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뚱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다가
사망 후 종결되었다.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대혁명은 결국 큰 혼란을 겪으며 중국에 이어져 오던 문화의 대단절을 또 한번 가져왔다!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문화대말살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구한 역사, 방대한 역사에 있었을 수 많은 문화유산이 황폐화되어 내세울 만한 중국 고유의 문화가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여
남아 있지 않으니 우리의 문화를 탐내는 것이라고 본다.
3. 시황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22년 10월 23일 중국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 등 구성원을 뽑는 당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 선출 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기존의 선례를 깨고 3선을
이룬 것이다.
2018년 3월 1982년부터 시행되어 온 주석의 임기를 2번으로 제한하는 헌법 규칙을 변경하도록 의회에 요청하여 성공한 이후
이번에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의 나이가 만 67세 이하인 경우 유임하고 만 68세를 넘으면 은퇴한다는 불문율로
내려오던 관행 '7상8하'의 원칙을 스스로 깸으로서 앞으로의 장기집권을 막을 방법을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시진핑을 가리켜 진시황제에 빗대어 '시황제'로 부르는 것이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전세계에 중국의 힘을 내 세우는 이른바 '중국굴기'는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만들려는 의도이다.
이를 위하여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는 '일대일로'를 획책하고, 우리나라에 대하여는 '동북공정'을 시작하여 우리문화의 모든
것은 중국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한국의 문화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연변의 조선족과 같으니 중국문화라는 논리로 역사, 한복,
김치, 음악, 무용 등등의 풍속 뿐 아니라 과거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만주에서 태어난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이순신, 윤동주, 손흥민 등 과거와 현재의 우리 민족조차 중국인이라고 널리 홍보하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하다못해 만주에서 태어난 빌미라도 있지, 중국하고는 개미 눈꼽 만큼도 관계가 없는 이순신 장군과 손흥민
선수조차 중국인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무슨 수작인지?
-일설에는 중국에 손씨가 있으니 손흥민도 중국인이라 했다 한다.-
현재 시진핑이 방향을 잡은 이런 중국의 행보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국의 소요 사태에 대하여 중국이 속히 민주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생각을 달리 한다.
시진핑이 독재체재를 확립하고 장기집권의 기반을 튼튼히 한 것을 나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이론에 비추어 중국이
망하는 길로 제대로 들어선 것으로 본다!
4. 우리나라 역사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250년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적게는 몇 십 년부터 길어봐야 300년 이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600년, 그 이전의 고려왕조 500년, 더 먼저의
신라는 통일신라를 합쳐 8년이 모자라는 1,000년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들어왔으므로 신기할 것도 없고 뭐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 생각들을 하는데 이런 사실을 처음
들은 외국인들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라고 한다.
이웃 중국이라는 나라도 평균 250년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 옆의 작은 소국이(외국사람들은 먼 옛날 우리 민족이 만주,
연해주, 중국의 일부, 바이칼호에 이르는 넓은 땅을 경영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떻게 그런 유구한 역사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인지?
혹시 우리 민족이 권력에 순종적이고 무기력하여 권력유지에 유리해서일까?
나도 이점에 대하여는 무비판 적으로 생각을 해 보지 않아 잘 몰랐는데, 요즘 들어서 외국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많겠지만 내가 받아들이기로 크게는 2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첫째는 우리의 정치체제가 훌륭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민족정신이 투철하여 외침이나 잘못된 권력의 행사가 있을 시는
일치단결하여 목숨을 내 놓아가며 투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의 지배 계급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힘으로 권력을 잡은 무리가 힘의 논리로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학문을 바탕으로 한 문민정치를 해 온 전통이 있다. 방법이 옳지 않으면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왔다. 순박한 농민,
천민들 조차 목숨 돌보지 않고 여러 차례 들고 일어난 역사가 있다.
먼 옛날 신라시대에도 화백제도라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비슷한 제도가 있었고, 그 이후에도 무신정치가 얼마간 유지된 적은
있으나 오래가지 못한 이유다.
그 역사는 현대에도 반복되어 군사독재는 오래 가지 못하고 문민정부로 되돌아 왔다. 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장했고, 지식인들도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고 책에 기록을 남겼다!
내 생각에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제도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을 앞서는 것 같다!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대립이 문제가 있지만 문제 없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조선왕조실록’을 생각해보면 임금이라 할지라도 사관들이 기록하는 내용을 볼 수 없도록 제도가 확립되어, 자신이 한
정치행위가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임금의 행동을 제약하는 족쇄가 된다. 왕이라 해서 무엇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한일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는지 궁금하지 않은 왕이 어디 있겠는가? 사관들은 사명을 다하여 이를 지키고
혹시 이를 어긴 임금이 있을 시는 그 내용조차 기록에 남겼다고 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제도인가?
그래도 조선은 망했다는 아이러니가 있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때나 몽골의 침략 때 침략군들이 볼 때 우리 민족의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중 하나가 피지배계급과 하층 천민들
조차 목숨을 걸고 악착같이 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일본 내전에서는 남이야 싸우거나 말거나 농민, 천민들은 들에 나가 일을 했다고 한다. 지배 계급이 바뀌거나 말거나 하층민의
삶은 먹고 살며 세금만 내면 되는 것이지 크게 바뀌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
조선에선 하층민이 지배를 당하며 설움도 많이 겪었을 텐데 왜 목숨을 내 던져 가며까지 지배계급을 위해서 악착같이
싸우는지가 이해불가인 것이다.
구한말의 의병장 이규홍은 ‘왜적은 힘(무기)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의(義)로써 싸운다. 의는 힘을 이긴다’고 외쳤다한다.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왜 다른 나라에 망명을 해 가며까지 싸우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잡히면 사형이나
고문을 당할 것이 뻔한데도 싸우는 것인지?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행사 때 식장에
폭탄을 던져 행사에 참석했던 일본 고위층들이 많이 죽고 다쳤다!
이 거사 후 당시 중국의 국민당 총통 장개석(장제즈)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칭송을 하고 이를 계기로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한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 많이 듣던 얘기가 ‘한국사람은 모래알 같아서 한 개 한 개는 단단하지만 뭉쳐지지 않는다’거나
‘한국 사람은 팽이 같아서 채로 쳐야 돌아간다’, ‘일본이 50년 동안 잠만 자고 있어도 우리나라가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었는데
이것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비하하기 위하여 퍼뜨린 말이라고 한다.
나의 국민학교 때 선생님들은 해방 이전부터 교사이었거나, 일제의 교사로부터 교육 받은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일본이 50년 동안 잠만 자고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60여년 정도가 지난 요즘 전체적으로는
아직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일본을 앞선 부분이 많으며, 앞으로 몇 년 안에 국력 순위가 뒤바뀔 것 같은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 기분이 좋다. 60여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 첫 자전거를 장만하실 때 새 국산 자전거를 젖혀두고 더 비싼 헌 중고 일제
자전거를 사오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전거 하나, 가위 하나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던 나라에서 세상에...!
* 미국 전 하와이대 교수 '에드워드 슐츠' 박사의 한국 역사강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hvvRAJp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