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파란만장’으로 단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은 박찬경 감독이 19일(현지시간) 시상식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형제는 용감했다. 20일 폐막한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단편 ‘파란만장’으로 영화감독 박찬욱(48),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46) 형제가 단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장·단편을 통틀어 한국 영화가 칸·베를린·베니스, 소위 세계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관계기사 24면>
박찬욱 감독은 월드스타 감독이 된 지 오래다. 세계 최고의 칸영화제에서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올드보이’로 2004년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선 2007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특별상(알프레드 바우어상)을 받았다. 그가 미국 체류 중인 이유로 이날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안고 활짝 웃는 ‘용감한 형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동생 박찬경 감독과 20일 전화인터뷰를 했다. 폐막파티가 끝난 직후였다.
박찬욱(左), 박찬경(右)
“형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로 수상소식을 알리자 ‘정말이냐’며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아요. 형제가 함께한 첫 작업으로 이렇게 좋은 결과를 안게 돼 저도 기쁨이 큽니다.” 지난달 ‘파란만장’ 시사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스마트폰 덕에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두 박찬욱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휴대전화와 밥값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생 박 감독은 서울대 미대(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칼아츠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미디어 아티스트다. 2005년 단편 ‘비행’이 세계 3대 단편영화제로 꼽히는 독일 오버하우젠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이후 ‘신도안’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등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조엘 코언(左), 이선 코언(右)
“형은 자유롭고 실험적인 영화를 늘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전 미술 분야에 있다 보니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적었어요. 둘의 욕구가 스마트폰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만난 겁니다. 역할분담이 명확하진 않았지만 구상은 제가,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 프로듀서 역할은 형이 했습니다.” 그는 “형은 워낙 명감독이고 전 신인감독이라 형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분야가 다르다 보니 오히려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발전시키는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다”며 웃었다.
세계 영화계에는 유명 형제감독이 적지 않다. 2008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받은 ‘영화천재’ 코언 형제를 비롯해 SF액션의 신기원을 연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 99년과 200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받은 벨기에 출신 다르덴 형제 등이다. 이제 ‘박씨 형제’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기선민 기자
◆코언(Coen) 형제=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형제 감독. 형 조엘(Joel·57)과 동생 이선(Ethan·54)이 각본과 연출·제작 등을 함께한다. 1984년 ‘분노의 저격자’로 데뷔 . 91년 ‘바톤 핑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96년 ‘파고’와 2001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는 등 평단과 관객의 열광적 지지를 받아왔다.
베를린 영화제서 떠오른 스마트폰 영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누구나 감독 될 수 있다
단편 황금곰상 박찬욱·찬경 형제
[중앙일보] 입력 2011.02.21 00:10 / 수정 2011.02.21 15:23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한 가수 이정현.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듯하다. ‘손 안의 세상’ 스마트폰 덕분이다. 20일 폐막한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파란만장’으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받은 영화감독 박찬욱, 설치미술가 박찬경 형제는 “스마트폰과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21일 시상식을 하는 ‘제1회 olleh·롯데 스마트폰 영화제’에는 첫 회인데도 통상 영화제의 두 배에 가까운 470편이 몰리는 열기를 띠었다. 14세 중학생부터 44세 광고인까지 일반인이 몰렸다. 스마트폰 2대를 활용한 3D 작품, 휴대전화 특성을 살려 세로로 긴 화면 비율을 살린 작품, 수영장을 빌려 찍은 수중 촬영작품 등 특이한 작품도 많다. 영화제 측은 “중·고생 참가자가 상당했고, 부부·부녀가 함께 찍는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영화제작 문턱이 한층 낮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찬욱·찬경 형제의 ‘파란만장’은 모두 8대의 아이폰4로 찍었다. 제작비는 1억5000만원이 들었다. 다음은 수상 직후 박찬경 감독과의 일문일답.
-스마트폰 영화는 기존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우리가 렌즈·크레인·홀더 등 다른 장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반칙 아니냐’고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아무 도움 없이 순수하게 아이폰만으로 찍은 분량도 상당히 많다.”
-‘파란만장’ 프로젝트는 아이폰 국내사업자인 KT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그전에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나.
“둘 다 아니었다. 나는 016(구형 휴대전화라는 의미)을 쓰고 있었다. (웃음)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주제다. 아이디어만 참신하면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영화 찍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파란만장’ 시사회에서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나왔을 때부터 이런 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형제의 역할분담은.
“서로의 강점을 살리려 했다. 캐스팅이나 대사 연습 등 현장 스태프와의 소통은 형이 했다. 아이디어 스케치와 디테일은 내가 맡았다. 영화적 재미를 주는 건 형의 몫이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면 소복 입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까지 상의하게 되더라. 구분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형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 미술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냥 도와달라고 해서 거든 거다. 주연배우 이승철 등에 용 문신 그린 것도 나다. (웃음) 영화는 2005년 단편 ‘비행’이 처음이다. 이후 무속을 소재로 한 ‘신도안’, 안양 개발을 다룬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등 다큐멘터리를 했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차원에서 해본 거다.”
-형제간 갈등도 있었겠다.
“형은 워낙 명감독이고 난 이 분야 신인인데 형이 하자고 하면 따라야지.(웃음) 서로의 차이가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오랜 세월 축적된 예술적 체험이 있다 보니 이제 서로 아, 하면 어 하고 착, 하면 척 알아차린다.”
-장편도 함께할 계획은.
“우리의 공동연출 브랜드가 ‘파킹 찬스(Parking Chance)’다. 주차할(작품을 만들)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것이다.”
기선민 기자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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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사회| 최보식기자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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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 영화를 잘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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