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만화를 그리는 것이 꿈이었다. 왜 중학교 때 그런 녀석들 있지 않은가. 교과서 귀퉁이마다 샤프로 만화 주인공 따위를 흉내내곤 하는...... 내가 그런 녀석 중에 하나였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손오공 그림을 습자지를 대고 따라 그린 걸 철제 필통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이고 다니곤 했다. 물론 종이 대고 따라 그리는 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왠지 그게 자랑스럽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같이 만화 좀 그린다고 어울렸던 녀석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대성을 해서 지금 홍대 미대에 입학했다. 상 탔다고 지 홈페이지에 올린 걸 보니 홍대 갈만하구나 싶었지만, 왠지 나는 그때 이까지 것, 하고 콧방귀를 뀌어버렸다. 나는 물론 지금 만화를 그리지는 않는다. 가끔 강의시간에 심심해지면 유인물 귀퉁이에 역시나 예전과 똑같이 손오공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전부이다. 약간 각진 얼굴에 턱 끝은 뾰족하고 머리카락은 고슴도치마냥 삐죽삐죽 튀어나온 손오공을 나는 벌써 수 년째 그려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초사이어인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초 사이언이 무엇이냐? 초사이어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지금 당장 만화 대여점에 가서 드래곤볼 시리즈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극도로 분노했을 때 머릿털이 노란 색으로 변하면서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데, 일단 변신을 하고 나면 힘과 스피드가 몇 배로 증가하고, 평소의 차분했던 인격 대신 상대를 깨부셔야 겠다는 파괴본능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을 가지고 놀던 적들이 단번에 풍비박산,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상황이 반전된다. 그렇다면 내가 내 인생에 있어서 손오공처럼 분노해야만 했던 일들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분노가 딱 한 번 있었다. 그 때가 언제였냐하면 바로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땐 또 꼴에 꿈이 바뀌어 힙합을 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힙합도 하나의 문화라서 랩, 춤, 그래피티, 스크래치, 믹싱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래피티를 한답시고 깝쭉거렸던 것 같다. 수업시간이면 교과서 밑에 연습장을 펼쳐두고 알파벳이 어지럽게 겹쳐져 있는 로고나 머리에 빵모자를 뒤집어 쓴 흑인 랩퍼가 MIC하나 들고 랩을 지껄이는 것 따위를 스케치했다. 그러다 선생한테 걸리면 연습장 압수당하고 교편으로 두들겨 맞곤 했지만 뭐 그런다고 해서 나의 작업이 거기서 끝날 거라곤 선생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고향집에 돌아가면 책꽃이에 낡은 연습장이 열 권쯤 빽빽이 꽂혀있는데, 잘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미세하게 샤프심을 그어갔던 자국이 아직도 마모되지 않고 남아있다. 그 중에 잘 된 것을 뽑아 들고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를 걸치고 시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며 그래피티 하기에 좋은 담벼락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우리나라 건물들은 그래피티를 할 만한 벽이 드물기 때문에 디자인을 완성하더라도 어떻게 작품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결국 찾은 것이 머리 위로 기차가 덜컹덜컹 지나가는 변두리 굴다리 밑이었는데, 낮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 작업을 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찾아와 붉으스래한 조명등 아래서 딸깍딸깍 에어스프레이를 뿌려댔다. 그때 그렸던 작품이 뭐였냐면 쿠바 해방의 영웅 체 게바라가 가운데 손가락을 삐죽 내밀고서 랩을 하는 것이었다. 멋있지 않은가! 그 근엄하고 용감해 보이는 얼굴로 Fuck You라니.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이다. 토요일이면 수업을 마친 친구들이 교복바람으로 나의 작업장을 찾아와 이 검고 붉은 양반이 누구냐는 둥, 얼굴과 손의 연결이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냐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그래도 대단하다며 칭찬 한마디를 남겨놓고 횅하니 학원을 향해 자전거 패달을 밟곤 했다. 그 인간들이 뭐라고 한들 상관 없었지만 그래도 누가 내 작품을 보고 가면 왠지 모를 에너지가 내 가슴속에서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세심하게 스프레이를 뿌려댔고,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내 옷에는 알록달록한 얼룩들이 늘어만 갔고 몇 번이고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스프레이 자국이 팔뚝 여기저기에 문신처럼 돋아났다. 그땐 정말이지 거기에 미쳐 살 수 있어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 작품을 완성시키지는 것을 예술의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왠 똘마니 같은 놈이 시청에다 누군가 도시 환경을 더럽히고 있다고 민원을 넣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작업도구를 챙겨들고 작업장에 가보니 만지지 마시오 라는 팻말과 함께 정말 보기에도 촌스러운 하늘색 페인트가 굴다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뒷통수를 가격당한 주인공처럼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분노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불타오르게 했다. 모르긴 해도 그 정도로 화가 날법한 일은 내 삶의 이전에도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순간 초 사이어인이라도 된 것처럼.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 흰색 할 것 없이 남아 있는 모든 에어스프레이를 그 놈의 하늘색 벽면 페인트 위에다 마구마구 뿌려댔다. 치익, 치익, 하고 뿜어져 나오는 끈적한 액체들이 내 얼굴에 핏물처럼 흘러 내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예술과 힙합정신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없이 납작 브러시로 무식하게 도배해버린 그 누군가를 떠올리자니 손에 든 에어브러시에 저절로 불끈 힘이 솟구쳤다. 결국 들고 온 모든 스프레이가 바닥날 때까지 그 굴다리를 개판 오분 전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아마 그 때 내 얼굴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악귀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후로 몇 일 간 얼굴에 빨갛게 물든 자국이 지워지지 않아 학교에도 가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내 생에 첫 그래피티는 실패했고, 그 날 이후 다시는 에어 스프레이를 손에 잡지 않았다. 그래피티의 그자라도 떠오르게 하는 단어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차마 그래피티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들이 가득 담긴 그 연습장 한 장, 한 장들은 어찌하질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란 녀석은 사이어인의 피를 이어받은 손오공이 아니라 평생 손오공의 뒤치다꺼리만 해야 했던 크리링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크리링. 작은 체구의 코믹 캐릭터로서 매번 손오공이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약한 자의 대명사. 나중에야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자로 성장하긴 했지만 결국 종족의 벽을 넘지 못하고 B급 전사에 머무르고 마는. 어쩌면 내 인생도 그 크리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지금도 강의시간에 몰래 손오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손오공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고, 또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90년대 처음 아이큐 점프에 연재되던 그 모습 그대로 커다란 이빨을 드러낸 채 씨익 웃고 있다. 그게 아니면 외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적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던가. 우리가 사는 지구, 아니 전 우주를 당당히 구한 영웅답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