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묘와 국립 4.19묘지엘 다녀오다(2)
연산군 묘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



묘비 - 燕山君之墓

묘비 - 居昌郡夫人 愼氏之墓↓
(묘비의 글짜가 마모되어 보이지 않음)

義貞宮主 趙氏之墓↓
(태종의 후궁)

全州李氏之墓(徽愼公主:연산군의 맏딸)↓

綾城具公之墓 - 연산군의 맏사위(具文景)↓




연산군묘 燕山君墓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88번지에 위치한 묘소. 조선왕조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배우자 거창군부인 신씨가 안장되어 있다. 사적 제362호.
1. 개요 및 역사
조선왕조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이 재위기간 동안의 실정으로 인해 관민의 원성과 반발을 사게 되면서 결국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축출되어 폐주가 되었고, 군(왕자)의 신분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귀양을 가서 2개월 후인 그 해 11월 사망하게 되면서 그곳에 묻혔다가 1513년 연산군의 아내 폐비 신씨의 청이 받아들여져 (당시)경기도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에 안장되었다.폐비 신씨는 1488년 왕세자이던 연산군과 혼인하여 왕세자빈이 되었고,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폐출당하면서 그녀도 거창군부인으로 강등되었고, 1537년에 사망하고 나서 연산군묘 옆에 안장되었다.
2. 형식
역대 임금과는 달리, 재위 도중 반정으로 폐위되었고 '군(君)'으로 강등됨에 따라 재위한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묘소 명칭을 '능(陵)'이 아닌 '묘(墓)'로 지정하였다.따라서 대군의 예우로 묘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통상적인 능침의 형태보다 소략한 것이 특징으로, 봉분과 담장, 묘비 각 1쌍, 혼유석과 망주석 각 1쌍, 장명등 1쌍, 향로석 1좌, 재실은 갖추어져 있으나, 능에 세우는 석호, 석양, 석마, 사초지, 무인석 등은 없다. 연산군의 묘비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무덤이 만들어진 연월인 '정덕팔년이월 이십일장(正德八年二月 二十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부인 신씨의 비석 앞면에는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가 새겨져 있다. 이 연산군묘 묘역에는 연산군묘와 폐비 신씨의 묘 외에도 그 앞에 총 세 기의 묘가 더 자리잡고 있는데, 가운데 줄에 있는 묘는 태종(조선)의 후궁인 의정궁주 조씨의 묘이며, 맨 앞 줄에서 왼쪽의 묘는 연산군의 사위인 능양위 구문경, 그리고 맨 앞 줄의 오른쪽의 묘는 연산군의 딸인 휘신공주(徽愼公主)의 묘이다.
3. 기타
역대 조선의 임금들이 안장된 조선왕릉 들과는 달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문화재에는 등록되지 않았다. 묘 앞에 작은 관리소가 있고 관람료는 무료. 또한 연산군묘 입구에서 좌측 골목길로 약간만 걷다 보면 연산군묘 재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