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붉은 해가 떳다. 새하얀 종이처럼 맑기만한 아침. 안학궁에 왕이 도착해야할 시간이 훨씬 지나버렸음에도.
건무왕은 보이지 않았다. 부산스럽게 시비들과 환관들이 당황스러워 할때까지. 건무왕은 여전히 강비의 처소에서
나오려하지 않았다.
"건무-"
어젯밤. 내내 무엇인가 궁리하는듯 하다 결국 늦게 잠이든 모양이었다.
붉은 비단이불속에 누워있던 두 사람. 그 중, 강비가 이불을 개키고 일어났다. 이미 흥안왕자는 깨어나
놀아달라며 칭얼거리고 있는데. 나라에서 가장 바쁠 건무왕이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꿈나라를 해메고 있는것은 왠지 강비의 마음에 걸렸다.
"흥안아 이리오렴-"
하얀 삼배옷 품에 흥안이를 안은 강비는 흘러내린 긴머리를 귀뒤로 살짝 넘긴 후에 다시 건무왕을
쳐다보았다. 검은머리 살짝 흘러내린 우윳빛의 하얀 얼굴. 굳게 다물고있는 분홍입은 그가
지금 곤히 잘고있단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건무는 왕. 일어나서 아마도 산더미처럼 쌓였을 업무보고를 받아야하고 일을 해야한다.
"곤히 자는거 깨우는건 미안하지만.. 건무- 일어나야지."
그때, 건무왕은 뒤척였고. 감은 속눈썹이 살짝 떨려왔다.
".......아......피곤해......."
이제사, 잠에서 슬슬 깨는것인지. 건무왕은 신음하며 눈을 떳다. 부시시한 그의 모습. 이제 몇년 째 보는 모습이지만.
볼때마다 새로워 보인다. 평상시엔 항상 단정하게 차려입고 엄한 표정을 짓고있던 그.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것도 강비 앞에서만 이었고. 기꺼이 받아주는 것도 역시 강비 뿐이었다.
일어나려듯 앉으려다 다시 누워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건무왕. 평소같았으면 일어 났을 터인데.
괜스래 안쓰러워진 강비. 깃털처럼 곱고 가벼운 손으로 건무왕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다시 눈을감은 그의 모습..
흐트러졌으나, 아이처럼 귀엽고 고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녀의 낭군..
'난 사실 이런 당신이 좋아. 내 앞에서만 잠에서 깬 모습을 보이고. 내 앞에서만 잠투정을 부리는 당신이 좋아.'
"졸려? 하지만 대해국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걸-..."
솜처럼 부드러운 강비의 손이 그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 기단 속눈썹이 어여쁘게 뻗어있는 검은 눈도 스치고
오똑한 그의 하얀코도 스쳤다. 갸름한 그의 턱선도 만지어보고. 다시 적당히 넓은 하얀 그의 이마도 쓸어보았다.
낭군. 연화의 낭군.
"건무. 흥안이도 벌써 일어나서 칭얼 거리는걸.."
".....휴......알았어...일어날게..일어나.."
그제사 그의 감았던 검은 눈이 떠졌고. 영영 닫혀있을 것만 같던 분홍입이 열렸다.
얇게 미소짓는 강비는 기지개키는 건무왕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고. 여전히 어린 흥안이의 작은 몸을 안은채
가만히 낭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만 보면 마음이 쓰리는 강비. 그 만 보면 마음이 아련한 강비.
사랑이라 말 할 수 없는 이 감정. 이 두려움.
그녀의, 애처로운 눈길을 눈치챘는지. 하품하던 건무왕도 강비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울것처럼 눈이 그렁그렁해서
항상 지켜주면 안될 것 같은 그녀. 자신이 없으면 강비는 언제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작은 그의 비. 약한 그의 비.
"연화야."
건무가 그녀를 불렀다. 그의 큰 손은 강비의 작은머리를 쓰다듬었고. 곧 그의 가슴에 안았다.
갑작스러워 짐짓 당황하기도 했으나. 곧 들려온 그의 심장소리에 강비는 저도 모르게 얇은 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풀냄새처럼 상쾌한 향기. 그녀만이 맡을 수 있고.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
그녀의 꽃내음처럼 맑은 향기. 그만이 맡을 수 있고. 그 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
"이 주 내로. 비를 들일까해. 하지만 걱정할건 없어. 난 네것이니까."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 그녀를 감싸안은 두 팔. 부드럽게 등을 다독여주는 그의 손.
울면 안되었다. 울면 건무도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이 나왔다.
언제고 눈물이 흐를 것 처럼 그렁그렁했던 두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흐르고.. 그녀의 갸름한 턱선을 따라 흘렀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건무왕. 마음이 쓰려왔다.
"울지마.. 울면안돼. 새로 비가 들어오면 내 왕후노릇을 톡톡히 해야지. 내 왕후는 오직 너 밖에 없어.
그것을 너도 알지? 건무왕의 왕후는 오직 강씨왕후 뿐이야. 강비 뿐이야. 우리 연화 뿐이야.
단지 나는.. 새로 들어올 비는. 소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왜냐면 난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도 않을거니까. 왜냐하면 난 네 것이니까."
강비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굳건했고. 건무왕은 더 강하게 그녀를 끌어 안았다.
더 가까이 들려오는 심장소리. 더 마음에 와닿는 그의 진심. 하지만 떨려오는 이 마음을 무얼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지 않는다고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하지만 이기적인 이 마음은 -
건무밖에 모르는 그 마음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난 항상 너를 울리기만 하는구나. 나 때문에 예쁜얼굴에 눈물만 가득해.. '
그녀가 울면 마음이 쓰리는 건무왕.
강비의 큰눈에 주렁주렁달린 눈물을 훔쳐 주었지만. 그녀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속이 상해. 난 그 생각만하면 속이 상해서 견딜 수 없어. 건무는 왕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난 받아 들여야 하지만. 속상하고 눈물만 흐르는걸. 잃어버리면 난 어찌해? 건무를 뺏겨버리면
나는 어찌해? 너무도 불안하여 견딜 수 없는걸. 건무를 믿지만 .. 내 마음은 터질것만같아.'
또다시 흐르는 눈물 한방울. 흥안이를 꼬옥 껴안으며 참아보려 했지만 이미 터진 눈물샘은 멈추지 않았다.
허나, 자신이 울면 건무왕이 아파한다는 걸. 신경쓴다는 걸. 하루종일 마음에 걸린다는 걸
잘 알기에. 눈물을 거두려 애쓴다.
"믿어. 건무를…"
―애써 말해본다.
아니, 그녀는 그리 생각해야 했다. 허나, 쉬이 그럴 수 없는 마음.
그것을 아는것일까? 강비를 껴안은 건무왕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지켜주고자하는 그 힘 …
2
개경의 거리.
이른 오전부터 한무현은 바빳다. 소반을 들자마자 그는 바로 당쇠를 시켜 말을 내오게 했고.
급히 어디론가 홀로 향하고 있다.
흙먼지가 올라오고, 아직은 장터가 한산할 무렵. 그가 향하는곳은 초선의 기방.
그의 표정이 사뭇진지하다.
그다지 바깥출입이 싫어하는 그가. 아침부터 급히 말을 몰며 초선의 기방을 향하는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무촌강씨가 들고 일어섰다. 분명, 안학궁에는 국자감에서 보내어진 반대상소부터 시작하여
강씨가 우두머리인 국가기관에서도 엄청난양의 반대상소가 올라 왔을 것이다.
먼 옛날. 왕이 성동김씨를 제외한 다른 여인을 소후로 맞을 때 처럼.
'강씨세력을 잠재울 수 있는것은 그길 뿐이다…!'
무현은 급했다. 게다가 궁으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그 아이만을 생각하면 급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웃음만 짓게 해주고 싶은 그 아이…
곱게 빗은 그의 머리도 어느덧 헝클어지고. 흙먼지내며 얼마나 내달렸을까.
하얀 얼굴에 땀방울이 흐를 때. 아직 한적한 거리 귀퉁이에 화려하게 세워진 건물에 드디어 도착했다.
분홍벚꽃 서서히 져가는 꽃내음이 가득한 그 곳. 대해국의 꽃들이 모인 그곳.
"부탁한다 초선아."
무현이 표정이 사뭇비장했다. 각오를 하고 온듯 한 그. 말에서 내린 후에. 자신의 하곱고 고운 손으로
직접 말을 끌었다. 무현을 기다렸다는 듯 끼익- 문여는 소리가 들리고. 향긋한 꽃내음이 그를 감쌀때.
문앞에 있는것은 초선이었다.
그가올줄 알았다는 듯. 평상시처럼 너무도 화려하게 치장하고 서있는 그녀.
머리칼이 전보다 더 길었는지. 더 큰 비녀를 사용한 그녀는. 흡사 궁중의 여인처럼 기품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유난히 붉은색이 어울리는 그녀. 붉은 연지바른 입술로 요요하게 웃어보인 후 무현을 쳐다본다.
"....어째,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구나. 반가이 맞을 줄 알았더니."
"말을 끌어 올라나 오시지요"
자세를 낮춘 무현. 반가이 웃어보인 그를 보고, 초선은 무슨생각을 했을까.
저번처럼 푸른빛 겉옷과 꽃점무늬 상하를 입고온 그. 허나, 태도는 달랐다.
'암요. 알고 있었지요. 내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하늘하늘한 비단부채를 살짝 움직여 부쳐보는 그녀. 붉은 치마속에 숨어있던 금빛 꽃신이 나오고
한발한발 걷는 그녀의 뒤는 무현이 따랐다.
'장비의 말이 다 맞다. 후훗, 참으로 남자의 속내를 잘 아시는 분이야..'
초선의 미소가 간교하다. 그녀는 얼마전 장비, 즉 장발부인에게서 보내어진 서신을 받았고.
오늘의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무현이란 사내는 양녀를 궁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할 것이다.
필경 너를 찾을태지. 걱정치말라. 그는 너를 찾고, 나를 찾아온다.
초선아. 그가 너를 찾아와 부탁을 하거든. 쉬이 들어주어라 그 후에.....
이해를 잘 했으리라 믿는다. 그를 갖게 될것이야 너는―
장비 ]
'마마의 뜻, 이어 받겠나이다.'
슬쩍 뒤를 돌아 무현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그 말은 기방의 하인이 받아들어 마굿간으로 옮기는중이었고.
흙바닥 사박거리며 걸어오는 그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잘만하면 초선의 것이 되는 그.
절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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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이 좀 길것같군요 호호 아직 써두진 않았지만 -_-;
날이면 날마다 게으름; 이 더해갑니다.. 쩝;
19편 20편에 지향이 궁에 가요. 좀 늦어졌네요 예상보다 -_-
아마 궁으로 들어가면 건무왕의 소후가 될거고
지향이 -_- 왕후가 되기위해서 또 난리를 칠 예정입니다.
여튼 좀 지나야 나오는 이야기니 글쓴이는 여기서 쉿; 해야겠군요 후후
좋은하루되시구요♡
읽어주셔셔 감사해요 ^ ^
첫댓글 그럼 지향이가 나뿐짓 해요 ?ㅠㅠ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하는데........
아악,,,안돼,,,지향이가 좀 착해지면 좋겟네용,,,무현이 불쌍,ㅠㅠ
지향아씨, 예전 어린시절 처럼 선해지시지옵소서. 그래야 독자분들의 사랑 받습니다. 이러다가 강비가 사랑 다 차지합니다. 조심하시옵소서- (아하하, 장난이라죠- )
오타 지적 - ' 그만이 맏을 수 있고 ' 가 아닌 ' 그만이 맡을 수 있고 ' 인 것 같습니다만.. 다른 것도 찾아보려 했는데 시간 부족이네요-
지향이가 왕한테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_ㅠ 불쌍해요 사랑도 못받는 생활이라니..부모님 사랑도 못받았는데//ㅠ_ㅠ...나는 강비 자꼬 찔찔 울어서 싫던데..-_-;;
지향아 선해지거라 ! 마법을 걸고 있음 -_- (퍽 ! ) 우연님 쉿 안해도 되는데 ; 기밀을 캘수 있었는데 !! 나쁜짓 하지 말거라 지향아!
ㅜㅜ우연님소설,제가못본것다봣습니다!!컴퓨터를고쳐서요..ㅠㅠㅋㅋ역시재밋습니닽ㅌ
지향이가 진정한 사랑을 할수 있었으면...ㅠ0ㅠ
지향이랑 건무왕이랑 이어지게 해줘요~지향이 그럼 악녀예요/?ㅜ
초선이가 누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