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16 이후로 서방측은 5.56×45mm 나토탄을 사용하는 소총을 새로운 주력화기로 채택했고 분대지원화기도 M249처럼 이를 사용하는 기관총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독일연방군 내에서도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어, 성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G3을 대체할 새로운 소총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1996년 탄생한 또 하나의 걸작 소총이 HK G36 돌격소총(Heckler & Koch G36)이다.
대세가 되어버린 새로운 규격의 탄
사실 독일연방군 내에서 G3의 대체 필요성은 꽤 오래 전부터 제기가 되었던 상태였다. 1970년대 들어 유사시 함께 작전을 벌일 동맹국들의 제식화기가 M16, FN FNC, AUG, FAMAS 처럼 5.56×45mm 나토탄을 사용하는 소총들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7.62mm 탄에 비해서 화력이 뒤지지만 실제 교전 결과,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만큼 커다란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서방의 돌격소총은 상대적으로 작은 총탄을 사용하므로 총의 크기와 무게를 줄일 수 있었는데 이는 총을 직접 들고 교전을 벌이는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장점이다. 가볍기 때문에 휴대가 편리하고 더불어 좀 더 많은 탄약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도 AK-47을 5.56mm 나토탄과 유사한 크기의 5.45×39mm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한 AK-74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당연히 독일 또한 이런 트렌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G3의 성능에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딜레마 또한 있었다. 이 점은 어쩌면 총기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StG44의 경우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 뛰어난 성능을 알면서도 히틀러가 StG44의 생산을 막았던 이유가 보급의 문제였다. 독일의 생산 능력과 전선 전체의 상황을 고려할 때 사용하는 탄이 총마다 달라서 이러 저리 나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 (좌) 7.62x51mm NATO탄과 5.56x45mm NATO탄. AA건전지와 크기 비교한 사진.
7.62mm 탄은 위력이 세고, 5.56mm 탄은 작고 가벼운 장점이 있다.
(우)G36의 반투명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탄창.
30발이 들어가며, 여러 탄창을 병렬로 붙여 놓고 신속히 교환하며 사격할 수도 있다.
<출처: (cc) derkamener1984 at Wikimedia.org>
새롭게 변한 환경
내가 만든 무기를 나만 사용한다면 G3처럼 훌륭한 총을 계속 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2차대전 후 군사 환경은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다. 여타 동맹국과의 연합작전을 원활히 펼치기 위해서 제정 된 공통규격에 모든 것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나토의 정책은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냉전시기에 공산권은 소련제 무기로 순식간 통일되었지만 서방은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이 전후 주도권을 행사하려 해도 소총 정도의 무기는 저마다 생산하려 했으므로, 자칫 동서 간에 장차전이 벌어진다면 이는 보급에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총은 다르더라도 차선책으로 같은 규격의 탄을 사용하는 식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군사정책을 통일했고, 이 때문에 ‘나토탄’이라고 정의한 새로운 규격에 맞추어 총을 제작한 것이다. 그래서 G3도 7.62mm 나토탄을 사용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세는 5.56mm 탄을 사용하는 돌격소총으로 기울고 있었다. 더구나 패전국이라는 원죄로 말미암아 독일연방군은 단독이 아닌 나토나 유럽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연합작전을 벌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G3의 사용이 더욱 제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던 총기 제작 업체들은 당국의 요구가 있기도 전에 이미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 다국적군단 10주년 창설 기념식 당시 G36을 들고 행진하는 독일군
<출처: (cc) by High Contrast at wikimedia.org>
최신 기술의 접합체
돌격소총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던 HK(Heckler & Koch, 헤클러 앤 코흐)는 1970년대에 5.56mm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G3을 개량한 G41도 만들고, 이와 별도로 혁신적인 무탄피 소총인 HK G11을 개발하기도 했다. 비록 이들 제안은 군 당국에서 거부당했고 이때 입은 경영상의 타격으로 말미암아 1991년에 영국의 방위산업체인 BAE에 회사가 팔리는 수모까지 당했지만 이때 얻은 기술은 새로운 돌격소총을 만드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HK는 HK50으로 명명한 새로운 돌격소총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후 G36이라는 제식명을 받게 될 소총의 탄생이었다. 이전의 롤러 로킹 방식을 버리고 쇼트 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과 회전노리쇠 방식을 사용했다. 업체의 명성답게 명중률이나 신뢰성은 문제가 없었고 특히 유사시 청소 없이 8,000발을 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대부분의 서방 소총과 달리 AK-47처럼 웬만한 오염지대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했다.

▲ HK G36. 몸통의 비롯한 대부분의 외장은 강화 폴리머 재질로 되어 있다.
<출처: (cc) DomoK at Wikimedia.org>
더불어 최대한 무게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그 결과 몸통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장은 강화 폴리머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러면서도 사격 시 반동을 대폭 줄이는데 성공하여 개머리판을 접고도 일부 사격이 가능할 정도다. 더불어 주요 부분을 모두 고정된 십자 핀으로 조립하여 놓았기 때문에 분해, 조립 시에 별도의 공구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당연히 야전에서의 정비도 수월하다.
이미 돌격소총의 개념이 정립된 이후에 탄생한 소총답게 G36은 이전에는 부가적이라 생각하던 여러 장비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곳곳에 숨어있다. 예를 들어 광학조준경 등이 대표적인데 당연히 명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무게가 증가했고 독일군이 사용하는 이중 스코프는 동절기에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단점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요철로 이루어진 연결구를 탄창 외부에 만들어 탄창을 병렬로 붙여 놓고 신속히 교환하며 사격할 수도 있는데, 탄입대에서 탄창을 꺼내 장착하는 속도보다는 이 방식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나중에 탄생한 돌격소총답게 당시의 시대적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였다. 하지만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도입한 이러한 여러 장치는 당연히 가격 상승을 불러왔는데, 이 때문에 G36은 약 500만 원에 이르러 보병용 제식 소총으로는 상당히 고가에 속한다.

▲ (좌)휴대가 편리하여 야전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우) 각종 부가장비를 장착하여 성능을 향상한 AG36
언제까지 대세가 될 것인지?
비록 비싸지만 성능에 충분히 만족한 독일 당국이 이를 채용한 것은 너무 당연했고 1995년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일선에 공급되어 사용되면서 일부 단점도 지적되었는데, 초기형의 경우 플라스틱을 사용한 부분이 부러지거나 열에 녹아 내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곧바로 개량되었고 사용자들에게 ‘M16 이후 최고의 돌격소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때까지 등장했던 모든 소총의 장점만을 골라서 만든 소총이라는 평판답게 G36은 단점을 거의 찾기 힘든 소총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덕분에 신형 돌격소총임에도 등장과 동시에 30여 개국에서 구매하여 사용 중이다. 더불어 미국이 연구 중인 차세대 소총 XM29 OICW와 XM8 소총의 베이스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영국으로 팔려갔던 HK는 독일의 투자자 그룹에게 인수되어 독일 기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 G36을 사용하는 라트비아군. 탄생 직후부터 대외 수출이 이루어져 현재 30여 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이후에도 개발된 소총은 많지만 G36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돌격소총은 아직까지 출현하지 못하였다. 처음 설명한 것처럼 훨씬 뛰어난 경쟁자가 없다면 아무리 오래 전에 개발되었어도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무기가 총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성능이 미흡하다면 나오자마자 사라질 수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탄생한 혁신적인 소총으로 알려진 G36 다음을 장식할 총은 과연 어떤 것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제원
탄약 5.56×45mm NATO / 급탄 30발 탄창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 전장 999mm / 중량 3.63kg / 발사속도 분당 750발 / 유효사거리 500m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출처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1/2013082103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