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등록 :2021-07-17 08:59수정 :2021-07-17 21:56
조선일보 출신 이동훈, ‘국사범’ 자처하기 전에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안녕하십니까. 한겨레 ‘논썰’의 안영춘입니다. 오늘은 수산업자 김아무개씨 사건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명함에 찍힌 직업은 ‘부림물산’이라는 수산업체 대표지만, 본업은 ‘사기꾼’이라고 봐야겠죠. 부림물산도 유령업체고요.이미 여러 매체에서 김씨의 실명을 밝히고 있지만, 저는 삼가겠습니다.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지만, 현재 그 사건은 외려 곁가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대신, 김씨를 둘러싼 ‘김영란법’ 위반 사건이 본령이 됐지만, 이건 아직 관련자 조사도 초기 단계입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익명으로 말씀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거미줄 인맥? 솜사탕 인맥, 굴비 인맥, 사이클링 히트 인맥!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 개요부터 압축적으로 짚어보죠.김씨는 이미 사기죄로 한차례 복역했습니다. 201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고요. 그러고는 2019년 부림물산을 차리고 재력가 행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불과 2년 전이죠. ‘선동오징어’라는 말을 저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습니다만, 배 위에서 급랭시킨 오징어라고 하는데요. 이 사업에 투자하면 큰돈 벌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일곱명한테서 116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재력가 행세를 하면서 사기를 치려면 인맥을 과시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나 봅니다. 잘나가는 정치인, 검사, 경찰, 언론인…. 인맥은 흔히 네트워크, 즉 거미줄 같은 것에 비유하는데요. 김씨가 인맥을 키운 과정은 거미줄보다는 솜사탕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설탕 한 숟가락 부어서 실처럼 뽑아내고 둘둘 말아 수십배로 키우는 게 솜사탕이잖습니까. 굴비에 비유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 검사, 경찰, 언론인들을 굴비 엮듯이 한 두름에 엮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가 하면 야구의 사이클링 히트 같기도 합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까지 치는 것 말입니다. 짧은 시간에 정치인, 검사, 경찰, 언론인을 동지로 끌어 들였습니다.그러기 위해 동원한 수단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식사 대접, 그리고 온갖 금품 공세였습니다. 금품을 제공받은 이들이 그의 사기행각에 직접적으로 간여한 단서는 아직 잡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들 김씨가 호가호위하도록 방조한 정도로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속된 말로 ‘병풍선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겠죠.
정치공작인가, 셀프공작인가
그런데 며칠 전 돌출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동훈이라고, 얼마 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변인 노릇을 정말 짧게 했고, 딱 열흘입니다, 그 직전에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이입니다. 그 이동훈이라는 사람이 이 사건, 그러니까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여권, 정권 사람이라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Y(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죠) 그 Y를 치고 우리를 도우면 (경찰 수사를) 없던 일로 만들어주겠다고 (회유)했다.”“(그 인사가) 경찰과도 조율이 됐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저는 ‘안 하겠다, 못 하겠다’고 했다.”사건을 돌연 현 정권의 ‘공작정치’로 몰고 가는 발언입니다. 사기꾼 김씨가 특별사면을 받은 걸 두고도 야권에서 현 정권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거의 힘을 받지 못했죠. 그것에 비하면 이동훈씨 주장은 몇단계 점프를 한 대단한 수위의 ‘음모론’입니다.민주당에선 이동훈의 ‘셀프 공작’ 같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는데요.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동훈을 상대로 무슨 공작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동훈이 그 정도 급이 되는지 알기 어려운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의 중량감과 민주당이 생각하는 중량감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같은 언론인으로서 살짝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여권, 정권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라
윤석열 전 총장 캠프는 “사실이라면 헌법 가치를 무너뜨리는 공작정치”라고 비난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권을 도우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를 했다니 충격적인 사안”이라며 당 차원의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그러시길 바랍니다. 만약 여권의 회유가 있었다면, 그런 공작정치는 뿌리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공작정치’를 참칭하는 ‘정치공작’은 정치 불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갈 겁니다. 골프채 때문에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면 한국 사회 전체에 너무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경찰은 이동훈씨의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16일 이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나섰는데요, 골프채와 휴대폰 등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고 합니다.일단 예단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고 두고 추이를 지켜봐야겠습니다만, 이동훈씨가 그 ‘여권, 정권 사람’이 누군지 먼저 밝히는 게 순서이겠습니다. 얼른 입을 열기 바랍니다.
‘게이트’라 부르기엔 과분하고 민망한 내용
사건 개요 정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지금부터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진짜 메시지가 뭔지 짚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의 본질이 뭐라고 보십니까? 딱 들어맞는 익숙한 범주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개 대형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에 이름이 붙기 마련인데, 이 사건에는 아직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름이 없습니다.제가 생각해도 어떤 이름을 붙이는 게 적절할지 고민스럽습니다. 화려한 등장인물들만 놓고 보면 ‘게이트’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죄질이 고만고만한 사건 내용으로 보면 과분하고 민망한 표현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뭐라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이 성격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입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저렴함’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등장인물들을 그룹별로 짚어가 보겠습니다.먼저 정치인입니다.홍준표, 박지원, 김무성 세 사람이 등장했죠. ‘거물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긴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 김씨와 한두번 식사한 것 말고는 없다고 해명합니다.홍준표 의원은 “2년 전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하는 말들이 하도 황당해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습니다.박지원 국정원장의 경우는, 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고급 수산물을 선물로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 원장은 국정원장 취임 뒤라면 자택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통상 선물이 오면 구두 보고만 받고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모른다고 해명했습니다.김무성 전 의원은 심지어 딱할 지경입니다. 친형이 김씨에게 속아 86억원의 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까요.해명이 사실이라면 정치인이 사람 만나 식사한 걸 문제 삼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사기꾼인지 아닌지 미리 면밀히 살피고 만나라고 주문하기도 쉽지 않죠.만남이 지속되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병풍을 섰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이들이 능동적으로 김씨를 만난 게 아니라면, 도대체 김씨가 어떤 경로를 타고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느냐를 중시하는 게 오히려 맞을 겁니다. 박지원 원장은 전직 국회의원이 인터넷 언론을 하고 스포츠계에서도 활동한다며 김씨를 소개해줬다고 해명했습니다. 홍 의원과 김 전 의원은 각각 다른 언론인한테서 소개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언론인이 개입돼 있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얘기해 보겠습니다.
박영수 특검도 비켜가지 못한 ‘스폰서 문화’
앞에서 말한 세 정치인 못지않은 위상을 가진 인물은 박영수 전 특검입니다. 상징성이나, 그의 능동적 행태는 위 세 사람보다 더 무겁고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박영수 특검이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수사를 책임진 사람입니다. 역사 한가운데 섰던 인물인 거죠.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그런 사람이 김씨한테서 고급 외제차를 빌려 타고, 여러 차례 고급 수산물을 제공 받고, 스스로 후배 검찰 간부를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본인도 특검에서 물러나고, 후배 검찰 간부도 강등되는 결과를 맞았습니다만, 참 이상합니다. 사기꾼을 처벌하는 직업에 오래 종사했으면 사기꾼을 식별하는 데도 호가 나 있을 것 같은 이들이 왜 이토록 쉽게 사기꾼과 돈독한 금품 관계를 맺었을까요.저는 검찰의 고질적인 ‘스폰서 문화’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검찰의 스폰서 문화는 최근 라임 사건에서도 적나라하게 확인됐죠. 라임 사건이나 이번 사건이나, 특검과 부장검사가 스폰서를 양질의 후원자일 거라고 믿어서 접대 받고 금품 받는 건 절대 아닐 겁니다. 정반대로, 상대가 구린 데가 있으니까 이를 역이용하는 겁니다. 적과 동지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합니다.그런데 여기서도 언론인이 등장하죠. 사기꾼 김씨를 박 전 특검에게 소개한 이도 역시 언론인이었던 겁니다. 앞서 정치인들을 소개해준 이 가운데 한 명과 동일인기도 합니다.
소속사와 출입처로 엮인 언론인들
이제 언론인들을 살펴보겠습니다.실명이 널리 공개된 언론인은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엄성섭 TV조선 앵커입니다. 둘 다 조선일보 본사나 관계사 소속입니다. 이들보다 뒤늦게 알려진 언론인은 중앙일보의 이아무개 논설위원과 TV조선의 정아무개 기자입니다. 일부 실명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사기꾼 김씨에 대한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제 입으로는 실명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세 명이 사실상 같은 회사 소속입니다. 소속사가 같거나 같은 계열사인 경우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을 겁니다.그런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소속사가 다른데요. 이동훈씨나 엄성섭씨와 전에 국회를 함께 출입하며 대단히 가깝게 지냈다고 알려졌습니다. 기자 사회에서는 소속사 못지않게 출입처로 끈끈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기꾼 김씨가 한 사람만 뚫었으면, 소속사를 통하든 출입처를 통하든 그 다음 연결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아무튼 이 언론인들은 김씨를 소개받기도 하고 소개하기도 하면서, 골프채니 외제차니 심지어 학비까지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동훈씨는 취재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골프채 세트가 아니라 아이언이었고, 선물받은 게 아니라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엄성섭씨는 아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떤 입장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감방 동기’ 언론인에서 시작된 ‘품앗이’
그런데 이들 말고 언론인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사실 훨씬 결정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로 월간조선 취재부장 출신 송아무개씨입니다. 역시 일부 실명 보도가 있었으나, 저는 송아무개씨로 부르겠습니다.대단하기로는 앞의 네 사람은 송씨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부산 지역 일간지 기자로 시작해서, 월간조선으로 적을 옮긴 뒤 취재부장을 지냈고, 퇴사 뒤에는 어느 대학 겸임교수며 시사 토크 프로그램 패널 같은 걸 하다가, 몇 차례 총선 출마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예비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면서 사기꾼 김씨를 감방 동기로 알게 되죠.결과적으로 천재일우였습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이 구차하고 남루한 대서사가 시작됩니다. 송씨는 사기꾼 김씨를 김무성 전 의원, 박영수 전 특검에게 소개한 장본인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에게도 김씨를 소개해줬습니다. 주 의원은 이번에 경질된 포항남부경찰서장에게 김씨를 소개해줬고요. 김무성 전 의원은 김씨를 이동훈 전 논설위원에게 소개했습니다.새끼치기가 대단하죠. 그런데 도움이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성이 있을 때 ‘품앗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걸로 정리하자면, 이 사건에 등장하는 정치인-검찰-언론인은 하나같이 품앗이 관계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점, 다른 점
사기꾼 김씨의 부림물산은 주소지가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이라는 한적한 도농지역입니다. 실체도 없는 유령업체입니다. 그런 그가 전국구 인맥, 중앙 인맥, 야구의 사이클링 히트 같은 인맥을 짧은 시간 안에 형성했습니다.지역 토착 사기꾼 한 사람의 경이로운 행적을 보노라니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희대의 사기꾼은 실존인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기꾼 김씨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디캐프리오의 사기 행각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기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주인공이 가짜로 행세했던 항공기 기장에 대한 미국 사회의 선망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또한 그의 천재성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사기꾼의 천재성이죠.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반면, 우리의 사기꾼 김씨는 대단한 개인기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위조한 걸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대신 김씨에게는 결정적인 ‘귀인’이 있었습니다. 월간조선 출신 송아무개씨입니다. 감방에서 송씨를 조우함으로써 김씨는 일사천리의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우리 사회 권력집단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적 네트워크가 경부고속도로보다 훨씬 뻥 뚫린 고속도로가 된 겁니다. 송씨는 고속도로의 첫 톨게이트였을 뿐 아니라, 여러 구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외부에 쉽게 뚫린 ‘카르텔’
그런데 재밌는 게 있습니다.이번 사건은 대단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 내부뿐 아니라 외부와의 경계, 즉 탄탄해 보이는 울타리가 정작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면서도 희화적으로 폭로했습니다. 그 출발은 사기꾼에 대한 ‘인우보증’이었습니다. 카르텔 내부의 인우보증은 사기꾼 김씨가 인맥을 넓혀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끼리끼리 얼마나 서로를 믿었으면 그랬겠습니까.더구나 사기꾼이 대단한 유력 인사들에게 들인 비용이 막대했다거나, 거대한 이권을 두고 서로 짬짜미를 했다면 그나마 덜 민망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관찰 결과입니다. 고급 수산물 선물 받기, 고급 외제차 얻어타기…, 이런 걸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요.
‘김영란법’과 마주한 ‘국사범’
김영란법의 정식 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데요. 이 법 제정에 앞장섰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스스로 이 법을 ‘더치페이법’이라 불렀습니다. 당신 밥과 당신 술은 당신 돈 내고 먹어라, 이게 이 법 취지라는 거였습니다.물론 이 대단한 유력 인사들이 더치 페이가 싫어서 사기꾼의 병풍을 선 건 아닐 겁니다. 권력은 대접 받기를 원하는 속성이 있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김씨가 제공한 선물, 보기에 따라 소박할 수도 있지만, 대접 받기 원하는 그들의 욕망을 물에 적시듯 살짝 충족시켜 줬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게 있죠. 사기꾼 김씨가 거짓으로 한껏 과시한 재력에 빨려든 거겠지요.이동훈 전 논설위원의 주장은 의미심장합니다. 세트도 아니고 아이언만, 그것도 선물받은 게 아니고 빌린 거지만, 나는 권력의 암투에 의해 국사범이 되었다! 이 부조리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이 바로 우리 사회 권력집단 여러 부문과 층위를 관통하고 있는 민낯이 아닐까요.
언론인, ‘군계일학’인가 ‘어릿광대’인가
그런데 정치인, 검찰, 경찰, 언론인 가운데서도 가장 눈부신 집단은 언론인 혹은 언론인 출신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숫자로도 언론인이 가장 많고요. 사기꾼 김씨가 카르텔 내부로 들어올 수 있도록 첫번째 문을 연 것도 바로 언론인 출신입니다. 일단 문이 열리자 인맥의 고속도로가 펼쳐졌습니다. 언론인들이 김씨와 관계를 맺고 금품을 받는 능동성도 정치인, 검찰, 경찰 같은 다른 집단을 능가합니다. 금품의 성격은 참으로 실용적이기까지 합니다.
[논썰] ‘오징어 사기꾼’에 낚인 한국 권력층의 민낯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업자 돈으로 유럽에서 호화 요트를 즐기고, 같은 조선일보 간부들이 고급 스카프 따위를 선물받아 물의를 일으킨 게 그리 오래 전이지 않습니다. 면면한 계보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이 권력 카르텔의 핵심이 아니라 어릿광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바쁘게 품앗이를 하고, 유난히 실용성 있는 금품을 받는 게 아닐까요. 이걸 생계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저 딱 자기 수준에서 대접을 받은 겁니다.같은 언론인으로서 더없이 부끄럽습니다. 대대적인 자정운동이 필요해 보입니다. 언론인 직능단체들은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기획·출연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연출·편집 조소영 PD azuri@hani.co.kr도움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관련기사
연재논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