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39동창의 삶과 저택
주차장에서 한눈에 잡힌 차박사 저택, 우측끝에 한라산과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자
제주도는 아직 자연이
살아있는 한국의 관광랜드마크로 코로나 전에는 관광객 대부분이 외국인들이었다. 그곳에 사는 39친구는 본인 못지않게 부인이 유명한 탈렌트 고 여운계님의 남편 차상훈 박사. 경북
중-사대부고 출신으로 우리와 3~6년 동안 함께 수학했다.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양철학에 심취해서 성철스님 산하에서 2년간 수학하기도 했다. 본래 카톨릭 신자로 부인과 성당에서 만나
카톨릭과 개신교와 불교, 유교를 두루 섭렵하면서 종교와 더불어 철학적인 관념으로 정신 문화적인 세계를
두루 섭렵한 기인(畸人)이다. 거기서 만족을 얻지 못한 그는 프랑스 국비장학금으로 파리 솔본느 대학(Solbonne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득한후 경기대학에서 대학원장으로 후학들을 기르며 어깨너머로 정계도 좀 치어다 본 보기
드문 귀재(鬼才)이다.
개인적으로 권리와 명예와
이재가 따르지 않은 분야에서 진솔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분들을 좋아한다. 39동기중에도 몇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이
친구도 그런 면에서 정신문화세계를 깊이 파 해친 친구라서 그와 교분을 갖고 있다.
폐를 끼칠정도로 저녁대접을
받고 요즈음 유행병처럼 번지는 ‘제주 한달 생활하기’가 해외생활보다 더 인기여서 그의 삶이 보고 싶어 이튿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의 집을 방문했다.
입구부터 100m쯤 정원을 지나 나타난 그의 자택은 야자수 그늘에 정자까지 있어 한폭의 그림 같았다. 2,000평 대지위에 한라산을 등지고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어서 거실이나 베란다에서 이어져 있는 정자에서 고개만 돌리면 한라산도 태평양도 한눈에 들어왔다.
차 한잔을 하고 그가 가꾸어 놓은 정원을 둘러보며 희귀수목을 알려주었지만 기억을 못해 아쉽다. 집 앞 자그마한 연못에는 관상어가 노닐고 집 뒤로 450여평에는
귤나무가 자라고 있다. 묘목이라 귤을 수확하려면 5년 있어야
한단다.
그와 정원에 앉자 코로나
때문에 어느 신문에 난 까십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종교가 신에 의지하지만 불교만은 자각을 일깨우는 것으로 이번 코로나는 어느 신도 해결하지
못해 신에 대한 의심은 앞으로 종교는 자각을 구하는 불교만이 남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다. 나도 학생때 기독교에서 어머님의 원에 의해 불교식 장례식을 치루면서 어머님을 포항죽림사에 모시고 49제동안 아침 저녁으로 빈소를 다닌적이 있다 그때 불국사 총무원장, 포항죽림사 주지께서 주신 몇권의 불교서적을 보고 불교에 눈을 뜨며 송광사 승가대학에서 구입한 책이 일본어 번역본이라 일본에서 원본을 찾아 읽었으며 아직도 작은 책자지만 책장에 꽂혀있어 그와 불교에 대해 두서너 시간 흥미 진진하게 환담을 나누었다.
그는 현재 건강을 위해 정원수를 가꾸고
롯데호텔에서 수영을 하며 가끔 친구생각도 한다고 했다. 한라산 같았던 웅장했던 젊은 시절의 마음을 지금은 태평양 같은 넓은 마음으로
새겨 나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제주에서 만난 옛 제자의 보살핌을 받아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했다.
자택 출입문, 100여m 들어가서 주차장이 있고 주택이 있다.
베란다에서 눈앞이 태평양, 태풍이 불때는 모진바람때문에 창문을 특수하게 만들었다.
우측 정자에서는 한라산도 태평양도 한눈에 보이고 연못에는 관상어가 놀고 있다.
정자에서 촬영한 한라산
줌으로 당겨본 한라산
정자에서 바라본 태평양
두서너시간을 종교를 화두로 삶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정원에는 여름귤(낫스 미깡)이 달려있다.
동백꽃도 아직 피어있다.
비자림으로 기억이 난다.
무화과 나무
탐스러운 여름귤 나무 사이로 자택이 보인다.
석류나무
야자수 나무, 동남아 열대지방에서 본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 몇그루가 있어 정취를 돋운다.
집뒤 400평에는 귤나무를 심었다. 아직 묘목이라 5년후에야 수확을 한단다.
정원의 바위틈에 기생하는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용머리 해안, 옛날 하멜이 표류했던 곳이다.
산방산(후좌)과 용머리(후우)를 배경으로, 용머리쪽에 하멜표류선을 재생해 두었다.
제주도 다금바리회로 저녁을 함께
첫댓글 차상훈 교수는 아시다시피 불문학, 국제정치, 동양철학, 국제통상 등을 공부하고 국회의원 등 출마경력도 있는 경기대교수 출신의 경중, 사대부고 출신의 동문입니다. 저는 30대 초반에 같이 테니스도 치고 파리 출장중에 만나 같이 어울리기도 했지요.여운계 씨는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평생 뒷바라지를 했을 것입니다.노후마저 그렇게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니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다양한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