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14시간 전
URL 복사 이웃추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강론>(2026. 7. 10. 금)(마태 10,16-23)
<박해를 각오하여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16-23).”
1)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은,
선교활동을 하면서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고난을 겪을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간에
‘예수님의 양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예수님의 양답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이리 떼’ 라는 말은,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박해자들을 가리킵니다.
겉으로만 보면, 또 인간의 눈으로만 보면,
‘사탄의 이리 떼’가 ‘예수님의 양들’보다 훨씬 더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양들’이 ‘사탄의 이리 떼’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이길 수 없고, 예수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또 모든 신앙인들은 박해에 굴복하지 말고,
승리자로서 당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뱀처럼 슬기롭고’는 “성령의 지혜를 청해서 받아라.”로
해석할 수 있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는
“예수님의 온유함을 본받아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와 ‘예수님의 온유함’은
이리 떼의 물리적인 폭력과 박해를 무력화시키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에페 6,10-18).”
이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승리자는 주님이시다.
그러니 신앙인답게 살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그 승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입니다.
3) 23절의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라는 말씀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숨어라.”가 아니라,
“박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신앙생활을 계속하여라.”입니다.
순교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닙니다.
박해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순교는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스테파노 순교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큰 박해를 받았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1ㄴㄷ.4).”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신자들은 숨어 있지 않고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이 널리 전해졌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박해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악한 일을 역이용해서
좋은 결과를 만드십니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인간 세상의 박해는
지나가는 일이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박해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종말, 재림, 심판을 막지 못한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전에 죽는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부활해서 예수님의 재림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1테살 4,15-18).>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