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해외 원조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해 오던 미얀마 여성 난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제개발처(USAID) 폐쇄 조치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 이웃나라 태국에 세워진 유민 캠프에서 살던 페 카 라우(71)가 입원 치료를 받던 병원의 산소호흡 장치를 돌릴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간 뒤 나흘째인 지난 2일 호흡 곤란으로 숨졌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1일 보도했다. 그녀는 90일 동안 원조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자금 지원을 동결한다는 미국 정부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사망한 첫 번째 사례로 생각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도주의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는 USAID로부터 지원 받은 자금으로 이 병원을 비롯한 여러 난민촌 병원을 운영해 왔다. IRC에 따르면 미얀마 국경 근처 아홉 군데 난민촌에 수용된 약 8만명을 돌보기 위해 병원들을 운영해왔는데 미국의 결정으로 일곱 군데 병원을 폐쇄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라우는 지난 3년 동안 이 병원에 입원해 산소 공급에 의지해 살아 왔는데 지난 1일 집에서 증세가 나빠지자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라우의 딸 인 인 아예(50)은 로이터 통신에 "난 어머니에게 병원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였다. 라우의 사위 틴 윈은 "장모가 숨이 가빠질 때마다 그를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러면 괜찮아졌다"면서 "난 하루 벌어먹고 산다. 우리는 몹시 가난해서 집에서 산소를 살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다른 난민 여러 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페 카 라우가 지내던 움피엄 마이 난민촌에는 미얀마 내전을 피해 피란한 1만명 이상이살고 있는데 한 주민과 보건 종사자는 ABC 방송에 산소로 연명하던 여러 환자가 숨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사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이 캠프에 사는 술라이만 마울라위는 "의료 종사자는 장비를 챙기지도 않고 떠났으며 환자들은 일부는 가져갔지만 집으로 그냥 돌아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태국 보건 당국자는 이 병원이 폐쇄될 때 일부 환자에게 산소 탱크를 배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이 폐쇄되자 전에 학교로 쓰이던 건물에서 아이를 낳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IRC 대변인은 "이번 사망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페 카 라우의 유족과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쇄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하는 등 여러 대외 원조를 대대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USAID 전체 직원 1만여명 중 보건 부문과 인도적 지원 분야의 핵심 인력 290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은 지난 7일 USAID 구조조정 방안 중 일부 실행계획에 대해 일시 중단 명령을 내린 상태다. 칼 니컬스 판사는 USAID 직원 중 2200명을 먼저 유급 행정휴가로 처리한다는 방침과 해외 파견 직원 대부분을 한 달 안에 국내로 소환하는 계획을 오는 14일까지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4년 전 군부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벌어진 내전 결과 총 인구의 3분의 1이 인도주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다. 2021년 2월 이후 적어도 350만명이 살던 집을 떠나 유민 신세가 됐다.
미국의 해외 원조 규모는 600억 달러인데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39억 달러,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21억 달러가 쓰인다. 동결 조치로 미얀마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은 한 해 미얀마에 2억 달러를 지출해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 중 4000만 달러정도가 보건 분야에 쓰인다.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한 의사는 장차 펀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부탁한 자신의 그룹이 매년 USAID로부터 150만 달러의 지원을 받아왔다며 갑작스러운 중단 조치가 “아픈 사람들과 목숨에 대한 존중이 총체적으로 결여된 것"이라면서 "어떤 것을 중단할지, 어떤 것을 계속할지 계획을 세워 결정하는 대신 중단하고 나중에 재개하는 일은 물론 수많은 피할 수 있던 죽음을 낳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나아가 일곱 비정부기구(NGO)들이 일부 활동을 중단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를 다시 살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방콕 주재 미국 대사관에 코멘트 요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